2013년 예술가 페트라 콜린스는 비키니를 입고 찍은 ‘셀피(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계정은 삭제되었다. 매일 엄청난 양의 비키니 셀피가 업로드되는 인스타그램인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느 셀피와 다른 점이 있다면 비키니 라인 옆으로 털이 보인다는 것이다.
2014년 열아홉 살의 샘 뉴먼은 속옷 차림으로 찍은 셀피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의 계정도 곧 삭제되었다. 거울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찍은 뉴먼의 셀피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흔한 유형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뉴먼은 다른 셀피 속의 여인들처럼 날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 때문에 차별 대우를 당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인스타그램은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털이 없고 날씬하며 생리도 없는’ 여성?
2015년 시인 루피 카우르는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며칠 후 사진이 삭제된 것을 발견한 카우르는 그 사진을 다시 올렸지만, 또 삭제되었다. 바지에 동전 크기의 생리혈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벌거벗은 신체를 노출한 사진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면서 여성이라면 당연히 경험하는 생리 사진은 왜 삭제되어야 하는가?” 카우르의 항의는 공론화되었고, 결국 인스타그램은 사과했다.
책 〈인스타그램에서 금지된 이미지들〉에는 인스타그램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삭제된 사진들이 모여 있다.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또는 차별적이거나 불법적인 내용의 사진을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유독 여성에게 오작동할 때가 많다. 같은 털이라도 남성은 괜찮지만 여성은 안 되고, 같은 속옷 차림이라도 뚱뚱하면 안 되고, 같은 피라도 생리혈은 불가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털이 없고 날씬하며 생리도 없는’ 여성의 이미지란 과연 누구의 환상과 편견에 부합하는 것일까.
부당한 환상과 편견은 때로 현실에서 당당한 추궁과 협박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에 셀피를 올리던 리 필립스는 어느 날 한 소년에게서 문자를 받는다. “너는 왜 다리 면도를 하지 않니?” 그런가 하면, 모델이자 이 책의 기획자 아르비다 비스트룀은 광고에 출연한 후 위협을 받았다. 다리털을 밀지 않으면 성폭행하겠다는 협박이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털이 무성한 다리를 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슨 다리털 때문에 그런 협박을 할까 황당하지만, 곧 머리털 길이 때문에 메달 박탈 운운하던 일이 떠오르자 ‘아, 이것은 21세기의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는다. 이 현실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기준에서) 여성스럽지 않을 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는 여전히 집요하고 흉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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