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덥다. 여름이니까 당연하지 하고 넘기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들다. 자다 깨어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시원한 바람 대신 이웃집 에어컨 소리와 열기만 가득하다. 한밤에도 이렇게들 에어컨을 돌려대니 대기가 식을 틈이 있나, 부아가 난다. 갈수록 나빠지는 지구 환경은 아랑곳 않고 대체 어쩔 셈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불이야!” 외치고 싶다. 불이야, 불났어요! 정신 차려요.

과장이 아니라 실제 지구는 불타고 있다. 금광 개발과 목초지 확보를 위해 매일 수백 군데에 불을 지르는 아마존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심지어 시베리아에서도 해마다 초대형 산불이 일어난다.

지구를 찍은 위성사진은 사방이 시뻘겋다. 그러니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집이 불타고 있다(on fire)’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것도 이해가 간다. 그게 사실이니까. 한국어판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인데, 수백 명의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모여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했고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조직됐던 1988년이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선 좀 한가한 느낌이다. 불탈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책은 기후위기의 급박함만이 아니라 해결 방법도 얘기하므로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맞춤한 제목이기도 하다.

나오미 클라인은 글로벌 기업들의 이면을 파헤친 〈노 로고〉를 시작으로, 재난을 이용해 부익부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기후 운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등을 펴낸,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후 행동가, 요즘 보기 드문 비판적 지식인이다. 2019년에 출간된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그가 지난 10년간 써온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와 논평, 강연 원고를 모은 것인데,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기후위기의 원인과 실상, 결과는 물론 그린 뉴딜이라는 대응책까지 제시한 책이다.

〈미래가 불타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는 삶

처음엔 그린 뉴딜이란 말이 걸려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린 뉴딜을 내세운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제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대신 뉴딜 펀드 운운하며 (IPCC가 정한 최종 기한인) 2050년까지 감축하겠다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토대를 바꾸는 데 30년은 결코 길지 않다 하겠지만, 일반적으론 그 말이 맞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며 그래서 뉴딜이란 말이 나온 것이니 정부의 그린 뉴딜은 과거의 ‘녹색성장’과 똑같은 수사일 뿐이다. 아무튼 나는 이 책에 선입견을 갖고 흰 눈으로 프롤로그를 훑어봤는데 그러다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감동적이고 일목요연하고 명쾌한 프롤로그라니!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 프롤로그만이라도 꼭 읽기를.

시작은 그레타 툰베리다. 여덟 살 때 기후변화에 대해 공부한 툰베리는 열한 살 무렵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지구의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와 절망을 느꼈던 탓이다. 다행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함께 육식과 비행기 타기를 포기한 부모의 지지 덕분에 그는 우울증 환자로 머물지 않고 기후 행동가로 나섰다. 2018년 그는 홀로 등교 거부 시위를 시작했다. 누구는 철없다 했고 누구는 자폐아의 병증이라 했다. 그는 “자폐증을 앓는 우리가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이라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다보스 포럼에 모인 부자와 권력자들이 ‘희망을 주었다’고 하자, “제가 원하는 건 여러분의 희망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극한 공포에 빠지길 원합니다. 제가 날마다 느끼는 공포감을 여러분도 느끼길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처럼 행동하길 원합니다”라고 일갈했다. 그의 분노에 전 세계 청소년이 함께했고, 유럽연합(EU)이 온실가스 제로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은 툰베리만 기억하진 않는다. 그는 툰베리 이전에 필리핀, 마셜제도, 남수단의 유색인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음을 상기시킨다. 기후위기에서도 인종과 계급, 빈국과 부국의 차별은 유지되며 오히려 심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2011년 노르웨이 여름캠프를 공격한 총기 난사범, 2019년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학살범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환경 파시스트’를 자임하며 혐오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생태위기는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탈탄소 정책을 넘어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일이며 모든 차별적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극히 보수적인 IPCC가 보고서 들머리에 “사회 모든 측면에서의 신속하고 광범위하고 전례 없는 변화”를 촉구한 것이며, 클라인이 일시적 경기부양책이 아닌 근본적 변혁으로서 그린 뉴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그린 뉴딜은 재생에너지 사용, 녹색산업 투자, 돌봄노동을 포함한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강화, 기업 규제, 부유세 신설 같은 세제 개혁, 참여민주주의, 무상의료·무상보육 등 사회 전 부문을 포괄한다.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고 시장도 한몫하지만 ‘주역은 민중이다’.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고 행동하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끄는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빈곤층과 개도국을 지원하고, 난민과 이민자의 권리를 자선이 아닌 의무로써 옹호한다. 역사를 바꾸고 미래를 여는 비전을 제안하며 클라인은 간곡히 당부한다.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장벽은 너무 늦었다는 식의 무력감이다. 빈주먹으로 시작해야 한다면 이 생각이 옳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수십 년간 그린 뉴딜 같은 돌파구를 준비해온 수만 명의 사람과 조직이 있다. 비전은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사회구조를 이룬다고 선언한다. 생명의 미래가 경각에 달린 이때,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수정 인용).”

기자명 김이경(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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