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사진은 인천 서구에 있는 신인천복합화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지구환경의 심각성을 표현하는 용어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거쳐 최근엔 ‘기후위기’로 정착되었다. 기후위기는 2019년 전후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한 용어다. ‘지금 당장(!)’ 유의미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지구와 인류가 기후위기로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강조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2018년 한국의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유엔 산하기구)’ 제48차 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국제사회의 목표가 제시되었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Pre-industrial:1850~1900) 대비 1.5℃로 제한한다.” IPCC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약 1.09℃ 오른 상태다. 현재 속도라면 2021년에서 2040년 사이에 1.5℃에 도달하게 된다.

IPCC는 이에 대해 ‘신속하고 광범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여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늦어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의 45%까지 줄여야 한다.

한국 정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지난해 10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올해 5월29일엔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 대통령 직속 기관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로부터 2개월여 지난 8월5일에는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 민간위원장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세 가지를 발표했다.

유감스럽게도 1안과 2안은 사실상 탄소중립 방안이 아니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각각 2450만t(1안)과 870만t(2안)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1안은 석탄발전소 7기를 2050년까지 가동하자고 한다. 3안만이 탄소배출량 0t을 목표로 삼고 있다.

탄소중립과 관련된 주요 산업은 전력·수송·건축 등이다. 가장 중요한 부문은 전력이다. 전력 생산에서 석탄·가스·석유 같은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시급한 임무가 ‘탈석탄’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 원인은 화석연료, 특히 석탄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8월 발표된 ‘2020 OECD 한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원 가운데 화석연료 비중이 80%이며 그 가운데 31%가 석탄이다. 국제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에 대해 과감한 중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신규 석탄발전소 7기가 계속 건설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충남 신서천 석탄화력발전소는 지난 7월1일 완공되어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나머지 6기 가운데는 경남 고성 하이화력 1·2호기가 오는 10월, 강원 강릉 안인화력 1·2호기와 삼척화력 1·2호기가 각각 2023년 3월과 2024년 4월에 준공 예정이다. 이 7개 석탄발전소가 모두 완공되어 가동되면 연간 약 4200만t의 온실가스(2030년 목표 배출량인 5억3600만t의 약 8%)가 배출될 것으로 추산된다.

7개 석탄발전소는 2013년부터 계획·추진되었다. 2011년 9월 발생한 정전 사태에 놀란 당시 정부가 이 석탄발전소 프로젝트를 입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계획을 중단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 이미 계약이 완료되었고 수년간 공사가 진행되어왔다는 것은 건설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공사나 가동을 중단시키면 이에 따른 반발과 보상 문제도 클 것이다. 그러나 평균수명 30년인 7개 신규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에도 정면 배치된다. 정부 스스로 제시한 방향과 거꾸로 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감 조성은 물론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역시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그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공사·가동의 중단이어야 한다.

‘2050 탄소중립’은 쉬운 목표가 아니다. 한국의 산업 패러다임은 물론 국가경제의 틀과 개인 삶의 방식까지 획기적으로 바꿔야 성취 가능하다. 이와 관련된 ‘국가 어젠다’를 기획하고 실행할 정부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 컨트롤타워는 2050년까지 어떻게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인지 명확한 전략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대통령 직속위원회로는 부족하다. 예산과 정책 집행권을 가진 ‘에너지부’의 신설이 필요하다.

‘뉴딜정책’의 성공 요인은 강력한 집행기구

컨트롤타워는 기업과 노동자, 정부 각 부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정하면서 최종 결론을 도출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위원회의 권한은 ‘제안’이나 ‘권고’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이런 문제를 의식한 듯, 문재인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내에 ‘에너지 차관’을 신설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우선순위는 ‘산업’과 ‘통상’이지 ‘자원’이 아니다. ‘에너지 차관’을 새로 임명한다고 해도 산업 및 통상의 논리와 탄소중립이 충돌하는 경우, 에너지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에너지정책을 주관할 독립된 행정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린뉴딜의 롤모델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다. 그 성공 요인을 살펴봐도 에너지부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뉴딜의 세부 정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부흥청(NRA)’ ‘공공사업진흥국(WPA)’ ‘테네시계곡개발청(TVA)’ 같은 강력한 집행기구들 덕분이다.

한국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진지한 의도를 가졌다면, 에너지부 장관은 부총리급으로 여러 부처들 간의 이해충돌이 발생할 때 이를 실제로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녀야 한다. 탄소중립 정책의 실현엔 충분한 예산과 집행이 필요한 만큼 에너지부 장관을 ‘수석’부총리로 임명해서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상위에 둘 필요도 있다. 혹은 에너지부 장관이 경제부총리가 되어 그린뉴딜 등 전체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기획재정부의 역할을 ‘예산부’로 한정하는 방안도 있다. ‘2050 탄소중립’과 ‘그린뉴딜’을 달성하려면 산업과 사회의 틀을 혁신해야 하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앞으로 경제정책을 기획할 필요도 있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이를 책임질 집행력 있는 부처와 구체적인 로드맵부터 준비하자. 로드맵은 탄소중립과 그린뉴딜을 위한 핵심 전략을 명확히 하고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의 스케줄과 세부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IPCC의 권고대로 신속하고 광범위한(Rapid and Far-reaching) 대책이 필요하다.

기자명 허정훈 (경영 컨설턴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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