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배양 코코아로 만들어진 초콜릿 완제품.ⓒ취리히응용과학대학 제공

얼마 전 스위스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초콜릿을, 정확히 말하면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를 인공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과연 ‘초콜릿의 나라’다운 성과라며 웃었다. 고기도, 밀이나 옥수수도 아니고 코코아 인공 배양이라니. 기후 위기로 인해 식량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고기와 빵은 못 먹더라도 초콜릿만은 먹어야 한다는 건가.

인공 배양된 코코아로 만든 초콜릿을 ‘실험실 초콜릿’이라 부르기로 하자. 취리히 응용과학대학(ZHAW)의 생물공학자들과 식품공학자들의 합작품이다. 이 대학 세포배양 기술팀에서 일하던 한 연구원이 코코아 빈으로 실험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고기나 우유에 비해 코코아 배양이 간단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콜릿 품질의 핵심이 맛과 향에 있는 만큼, 이를 결정짓는 성분인 폴리페놀이 제대로 만들어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배양은 다음과 같이 이뤄졌다. 코코아 열매를 세척한 뒤 무균 상태에서 코코아 빈을 꺼낸다. 의료용 메스를 이용해 빈을 4등분하고, 그것을 완전한 어둠, 섭씨 29℃로 유지되는 배양 도구에 넣는다. 3주쯤 지나면 잘린 빈 표면에서 딱지 같은 것(callus)이 자란다. 이를 실험용 플라스크 안에 집어넣고 현탁 배양(공기 중 산소가 배양액으로 쉽게 스며들게 하려는 목적으로, 배양세포를 계속 흔들면서 배양하는 방법)을 한다. 그다음 바이오리액터로 옮긴다. 바이오리액터는 와인을 발효하는 오크통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반응이 인공적으로 일어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셈이다. 여기까지 문제없이 진행되면 성공이다.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코코아를 기를 수 있다.

실험실 초콜릿은 모양이나 식감이 기존의 초콜릿과 똑같은 것은 물론이고 향은 오히려 더 강하다고 한다. 코코아를 수입하지 않고도 스위스 내에서 초콜릿을 생산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다. 현재 실험실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00g에 약 20스위스프랑(약 2만5000원)으로, 기존 초콜릿 가격의 6배쯤 된다. 앞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값은 낮아질 것이다. 연구진은 2년쯤 뒤엔 실험실 초콜릿을 상업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바이오리액터 안에서 증식된 뒤 섞이고 있는 코코아 세포 배양 조직.ⓒ취리히응용과학대학 제공

연구진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실험실 초콜릿의 장점을 강조했다. 먼 아프리카에서 스위스까지 코코아를 수입해오지 않아도 되니 탄소발자국(상품을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줄어든다. 코코아 재배 시 필요한 화학 살충제를 안 쓰게 되므로 토양오염을 막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코코아 재배 농가가 불법으로 아동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실험실 초콜릿은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기존 초콜릿의 훌륭한 대체품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연히 따르는 의문이 있다. 아프리카의 그 많은 코코아 농가는 이제 어쩌나. 수입 대부분을 코코아 재배와 수출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인공 배양 기술로 스위스 실험실에서 탄생한 건 좋은 초콜릿이고, 아동노동을 이용하고 살충제를 뿌려가며 아프리카에서 재배된 코코아로 만들어진 건 나쁜 초콜릿이라고 결론짓기 전에, 초콜릿 산업 현황을 제대로 살펴보자.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이윤배분 구조가 기울어져 있다. 전 세계 초콜릿 시장의 규모는 1000억 달러 이상이다. 원료인 코코아의 약 40%는 코트디부아르에서, 20%는 가나에서 생산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코코아 농장의 하루 평균임금은 코트디부아르에선 0.34달러, 가나에선 0.45달러다. 아동까지 투입돼 온 가족이 코코아 농장에서 일해도 하루 3달러 이상을 벌기 어렵다. 부분적으로는 초콜릿 판매 이윤을 분배하는 구조가 문제다. 판매가의 5% 정도만 농가에 돌아간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코코아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해 손잡고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선진국들로 이뤄진 초콜릿 가공·유통 업계의 반발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았다.

둘째, 아동노동 착취 문제의 책임을 현지 코코아 농가에만 돌릴 수는 없다. 아동노동 착취는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6월 유니세프와 국제노동기구가 함께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세계적으로 총 1억6000만명의 아동이 불법 노동을 한다. 특히 5~11세 아동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이들 중 약 30%는 학교에 전혀 다니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이를 부채질한 면도 있다. 학교가 문을 닫으니 대신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코코아 농장에서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할까. 코코아에 살충제를 뿌리고, 마체테(날이 넓고 무거운 칼)를 이용해 코코아 껍질을 벗기고, 껍질 벗긴 코코아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장시간 말린 뒤 자루에 담고, 그렇게 담은 코코아 수십 킬로그램을 머리에 이고 산길을 이동한다. 학교에 안 가고 이런 일을 한다.

제3세계 숲은 사라지고 부유한 나라 숲은 늘고

스위스 같은 선진국은 제3세계의 아동노동 착취를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한다. 아프리카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착취에 스위스 초콜릿 기업의 책임도 있다는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지난해 11월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스위스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스위스 기업이 스위스 밖에 있는 자회사나 협력사 등 공급망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실사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스위스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네슬레가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이 불법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몰랐던 일이라고 발뺌하지 말고 이를 막기 위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 법안은 부결됐다. 반대자들은 기업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논리를 댔다.

아프리카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착취에는 선진국 소비자와 초콜릿 기업의 책임도 있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Unicef

셋째, 숲을 베어내는 건 현지 농부들이지만 그걸 부추기는 건 역시 선진국 소비자들이다. 세계산림감시(Global Forest Watch)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열대 지역에서 숲 1200만㏊ 이상이 사라졌다. 2019년에 비해 12% 증가한 수치다. 사라진 숲의 3분의 1 정도는 이산화탄소 흡수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더 의미가 큰 노숙림이었다. 국가별로 보면 브라질·콩고민주공화국·볼리비아·인도네시아 등에서 노숙림이 가장 많이 사라졌다. 주로 제3세계의 숲이 파괴되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상업적 농경 때문이다. 이 나라들에도 노숙림을 함부로 벌채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있지만 이윤 앞에서 규정은 곧잘 무시된다.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가. 생산물 판매에서 나온다. 숲을 파괴한 자리에서 재배한 작물은 주로 선진국에 수출된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는 주요 상품 6가지는 콩(31%), 팜유(24%), 소고기(10%), 목재(8%), 코코아(6%), 커피(5%)다.

베어낸 자가 아니라 베어내도록 한 자에게 책임을 물어보자. 사라진 숲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주로 수입해 먹는 이들은 누구인가. WWF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가장 책임이 큰 건 중국이다. 그해 사라진 세계 숲의 24%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농작물 때문이었다. 그다음이 유럽연합(EU)으로 16%, 즉 20만3000㏊의 숲을 파괴했다. EU 내에서도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다. 국민 1인당 파괴시키는 숲 면적이 가장 큰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인 1명이 매년 18㎡의 숲을 파괴한다. 그 뒤를 벨기에(14㎡), 덴마크(11㎡)가 잇는다. 팜유로 요리하는 네덜란드인, 디저트로 초콜릿을 즐기는 벨기에인, 매일 아침 브라질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덴마크인에게는 이 정도 규모의 숲이 자신 때문에 사라진다는 것이 와닿지 않겠지만 말이다.

부유한 나라 국민의 소비행태가 제3세계의 숲을 없애지만, 정작 부유한 나라에선 숲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위스 연방 환경부에 따르면 1850년 이후 스위스의 숲 면적은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지난 30년 동안 숲이 매년 4000㏊씩 늘어났다. 주로 방치된 목초지가 숲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방 산림법에 따라 숲을 파괴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기도 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원료를 수출하는 제3세계 농가와 이 원료를 가공하고 판매해 돈을 버는 선진국 다국적기업 간의 관계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물론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원료를 가공해 초콜릿을 생산, 유통시키는 기술의 중요성도 크다. 그러나 환경이나 노동의 측면에서 제3세계가 잃는 것이 너무 많고, 그렇게 잃은 것에 정당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원료를 저가에 수출하는 대신 스스로 가공해 판매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 그런 시도가 있다. 2020년 2월에 가나의 나나 아쿠포아도 대통령이 스위스를 방문했다.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가 스위스를 국빈 방문한 것은 60년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쿠포아도 대통령이 폭탄선언을 했다. 가나가 스위스에 코코아 수출하는 것을 조만간 중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발언은 이랬다. “가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스위스의 최대 무역 파트너입니다. 우리는 스위스에 주로 금과 코코아를 수출하고, 반대로 화학물질과 의약품을 수입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코코아 같은 원료 생산과 수출에 나라 경제를 의존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가공산업에 더 투자해, 가나 내에서 직접 더 많은 초콜릿을 생산하고자 합니다.”

2009년 9월, 방화로 인해 불타고 있는 아마존 삼림.ⓒAP Photo

초콜릿의 나라에 더 이상 코코아가 공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은 당시 꽤 화제가 됐다. 그동안 스위스가 가나에서 수입하는 코코아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지, 스위스 기업이 오래 쌓아온 초콜릿 가공 기술을 이제 와서 가나가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 등을 놓고 여러 말이 오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의미 없는 논쟁이 됐다. 가나 대통령의 위 발언이 나온 지 약 1년 뒤 스위스 대학 실험실에서 코코아를 인공 배양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게임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스위스는 가나에 원료를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나에서 파괴되는 숲이나 아동노동 착취에 대해 그동안은 스위스인이 일부 책임의식을 느꼈겠지만 이제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환경을 지키고 아동인권을 보호하는 선진 국민으로서 가나의 환경파괴와 노동착취를 맘껏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가나에 어떤 짐을 떠넘겼는지는 잊은 채 말이다.

지속가능성은 중요하다. 실험실 초콜릿은 어느 면에서나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환경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신기술이 모든 나라에 고루 주어진 건 아니다. 기술은 권력이다. 자국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커피나 초콜릿을 즐길 수 있었던 게 권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지속가능성의 기준에 파괴되는 숲의 면적 외에도 코코아 재배가 아니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농부들의 미래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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