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7일 이탈리아 로마 포폴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코로나19 백신접종 증명서인 ‘그린 패스’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PHOTO

얼마 전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겨울에 할 예정이었던 여행이었으나 당시 유럽의 코로나19 2차 유행으로 내가 사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국경이 통제되었다. 호텔 예약을 취소하지 않고 올여름으로 바꿨다. 인적 드문 알프스에서 절경을 만끽하며 하이킹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혹시라도 호텔이나 식당에서 마주치는 누군가가 코로나19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불안함은 일관성 없는 방역 지침 탓이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호텔에서는 방문객에게 백신접종 여부를 묻지 않았다.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다. 산 곳곳에 있는 식당들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곳은 입구에서 백신접종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더니 2차 접종 여부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했다. 또 어떤 곳에선 접종을 받았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고 증명서를 보여주려고 하자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했다. 가게 안에서와 대중교통 탑승 시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를 오가는 기차 안 승객 3분의 1 정도는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코와 입을 내놓고 턱에 걸친 상태였다.

8월 중순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32%가 코로나19 백신을 최소 1회 이상 접종받았다. 오스트리아에선 이 비율이 약 60%다.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긴 하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볼 건 못 된다. 남은 40% 중 앞으로 얼마나 더 접종을 받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국가 상당수는 백신 보유량이 충분해 전 연령대가 원할 경우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접종받지 않은 사람들은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접종을 원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12세 이상 청소년부터 누구든 원하면 접종이 가능하지만 2차 접종까지 완료한 비율은 현재 55%이고 신청자는 계속 줄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각국 정부가 꺼내 들고 있는 카드가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다. 자율에만 맡겨서는 현재의 접종 속도를 유지하기도, 목표로 하는 접종 비율에 도달하기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의무화 조치가 등장하자 백신 반대론자들이 저항하는 것은 물론이고 백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일부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백신을 의무화하는 게 반드시 필요할까. 반대자들의 근거는 뭘까.

여기서 ‘강제 접종’과 ‘의무 접종’의 차이를 짚을 필요가 있다. 강제 접종(com-pulsory vaccination)이란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물리력 등 강제적 수단을 이용해서 접종하는 것으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유럽 등에서 논의 중인 건 강제 접종이 아니라 의무 접종(vaccination obligation)이다. 이것은 법적으로 접종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벌금 등 처벌을 하거나 각종 불이익을 주는 것을 뜻한다. 국민 전체에 접종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고, 보건산업 종사자 등 특정 직군에 한해 한시적으로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다.

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최근 의무 접종을 선언했다. 특히 프랑스는 8월부터 식당·병원 같은 다중이용시설이나 기차·비행기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백신접종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했고, 8월 말부터는 의무 대상에 12세 이상 청소년도 포함된다. 스위스는 칸톤(州)별로 방침이 다른데, 프랑스어권인 칸톤 제네바에서 8월23일부터 간호사들에게 코로나 패스를 제출하도록 했다. 코로나 패스란 백신을 맞았는지, 걸렸다 회복된 적이 있는지, 48시간 이내 테스트 결과가 음성인지를 보여주는 문서다. 이를 제시하지 않고 간호사 업무를 하는 것은 형법 위반이다. 이유 없이 백신을 거부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백신 자체에 대한 찬반과는 좀 다른 문제다. 백신을 신뢰하고 접종을 받았더라도 그 사실을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 신체에 관련된 정보라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엔 교사들의 접종 여부도 사생활에 포함되는지가 논란이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에게 백신을 맞았는지 물어보는 건 프라이버시 침해일까. 스위스 공영방송 SRF가 설문조사를 했다. 8448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동보호기관이나 교육기관 종사자들이 백신접종 여부를 밝혀야 하나?’ 8월 초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2%는 ‘그렇다, 부모는 교사들의 접종 여부를 알 권한이 있다’고 답했고, 58%는 ‘아니다,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스위스 교사연합은 “접종 여부는 데이터보호법에 의해 보호되는 가장 사적인 정보이므로 교사에게 이를 묻는 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8월9일 프랑스 파리 리옹역에서 승객들의 백신접종 증명서를 확인하는 역무원. ⓒEPA

교사의 접종 여부 밝혀야 할까?

법적 기준을 유럽 전체로 확대해보자. 현재 서로 부딪치는 것은 유럽 인권협약(ECHR) 제2조와 제8조다. 우선 제2조는 ‘생명권’이다. ‘누구나 법에 의해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법원의 판결을 집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고의로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정당한 법 절차를 생략한 임의적 처형 등을 막으려는 조항이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이것은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접종 의무를 부과할 근거로 쓰인다.

제8조는 ‘사생활 보호권’이라고 불린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국가적 안보나 공공의 안전, 범죄 예방, 보건 등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만 제외하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여기에 ‘보건(protection of health)’이라는 단어가 분명 들어가 있지만,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공보건의 위기가 사생활 침해를 감수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이 조항은 여러 나라에 발을 걸친 국제기업의 방역 지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7월 말 백신 접종자만 재택근무를 끝내고 구글 사무실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구글 유럽 지사 근무자들이 반발했다. 미국에선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유럽에선 유럽 인권협약 제8조 때문에 접종 여부를 직원에게 묻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구글이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다른 지침을 적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 논란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참고로 삼을 만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우선 올해 4월8일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내려진 판결로, 아동의 백신 의무 접종을 합법이라고 결론냈다. 사건은 체코에서 시작됐다. 일부 아이들이 B형간염, 파상풍, 홍역 등 전염성이 높은 9가지 병에 대한 의무 접종을 마치지 않아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하자 그 부모들이 이를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며 체코 정부를 유럽 인권재판소에 고소했다. 판사 17명 중 16명이 이를 기각하며 판결문에 쓴 내용은 이렇다. “의무 접종 제도의 목적은 모든 아이들을 심각한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한 집단 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접종률에 도달하면 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도 집단면역에 의해 간접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무 접종은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두 번째 사례는 독일의 홍역 백신 의무화 조치다. 독일은 2020년 3월1일 이후 홍역 백신을 의무화했다. 어린이집, 학교, 난민 수용센터에 들어가거나 여기서 일을 하려면 홍역 백신을 반드시 접종받아야 한다. 선택 사항이던 홍역 백신이 의무화된 건 매년 독일 각 지역에서 홍역 환자가 수백 명씩 나와서다. 최근 15년 사이 가장 심했던 건 2015년으로 독일 전역에 홍역이 2465건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홍역 근절 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상황이다. 홍역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면 인구의 95%가 태어난 지 24개월 이내에 두 차례 접종을 완료해야 하는데, 독일에서 이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독일 국가윤리위원회는 접종 의무화에 앞서 2019년 이렇게 발표했다. “홍역처럼 전염성이 아주 강력한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받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홍역에 취약한데도 의학적인 이유로 백신접종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홍역 백신접종을 받을 도덕적 의무가 있다.”  

2015년 10월, 시리아에서 온 아이가 독일 베를린 보건소에서 홍역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EPA

의무보단 자율일 때 접종 의지 높다

유럽 인권재판소도, 독일 국가윤리위원회도 공공보건을 위해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게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접종 의무화가 접종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까?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지난 6월 발표된 논문이 있다(카트린 슈멜츠·새뮤얼 볼스, 〈순응주의, 사회규범, 밀어내기 효과의 역학관계에 대안적 정책이 영향을 미칠 경우 코로나19 백신 저항을 극복하는 것〉). 독일인 2653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1차 유행기(2020년 4~5월)와 2차 유행기(2020년 10~11월)에 설문조사를 하며 이렇게 물었다. ‘정부가 승인한 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이를 접종하는 데 어느 정도까지 동의하겠습니까? (1)정부가 백신접종을 강력히 권유하나 선택은 개인의 자유라면? (2)접종이 의무이며 정부가 이를 확인한다면?’

1차, 2차 유행기의 코로나19 상황이 달랐으므로 시기별 응답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그와 별도로 두 시기 모두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접종하겠다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의무일 때보다 자율에 맡겨질 때 접종 의지가 더 높다는 결과는 흥미로우면서도 이해되는 면이 있다. 현재 코로나19 위험군이 아니면서도 접종을 받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동기를 갖고 접종받는다. 집단면역이 언제쯤 달성될지, 그게 과연 가능한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 그 과정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접종을 의무화하면 이 같은 이타적 동기가 힘을 잃는다. 시키니까 해야만 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의무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을 보나, 과거 유사한 사례를 보나, 백신은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무화되더라도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등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없는지, 의무화가 접종률 증가로 이어지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의무 접종을 하면서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할 방법은 뭔지도 궁리해야 한다. 생명은 소중한 가치지만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사회의 다른 가치들도 잊어선 안 된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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