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안전수칙 가운데 ‘성인의 산소마스크 우선 착용’이 있다. 기체 이상으로 기내 산소량이 부족해지는 위기 상황에서 성인이 먼저 마스크를 착용한 뒤 어린이나 노약자 등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취약층을 먼저 돕다가 정작 자신의 체내 산소포화도 저하로 행동력과 판단력, 집중력이 떨어지면 취약층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기체 이상이 발생한 기내 상황과 유사하다. 그만큼 감염병 예방과 진단, 확진자 진료를 위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늘고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산소마스크를 우선 착용하기는커녕 감염 위험 속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의 장시간 노동과 극심한 노동강도를 견디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2021년 조합원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지쳐 있음’ 항목에서 “매우 그렇다”는 답변이 2020년과 비교할 때 18.5%에서 22.1%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음’ 항목은 19.7%에서 22.3%로 증가했다. 보건의료 노동자 8만여 명이 가입한 보건의료노조는 이대로는 의료재난, 의료붕괴 사태를 막아낼 수 없다고 보고, 인력 확보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9월 산업별 총파업을 할 계획이다.

인력도 적은데 교체도 잦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환자 수 대비 의료인력이 부족한 국가다. ‘OECD 보건통계 2020’을 보면, 한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4명, 간호사 수는 7.2명으로 OECD 평균(각각 3.5명, 8.9명)보다 적다.

특히 간호인력의 경우 보조인력을 제외하고 간호사만 기준으로 하면 그 수가 3.7명으로 OECD 평균의 40% 수준이다. 따라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도 많다. OECD 국가 평균은 6~8명인데 한국은 15~20명에 이른다. 인력도 적은데 교체도 잦다. 신규 간호사가 1년 이내에 퇴직하는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3년 이내에 그만두는 비율이 70%에 이른다.

노동시간도 여전히 길다. 이 노동시간에 야간노동(근로기준법상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주야가 바뀌는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과로 인정을 위한 노동시간 산정 시 야간노동은 주간 노동시간의 30%를 가산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정 노동시간인 1주 40시간을 기준으로 간호사가 해당 주에 이틀 야간노동을 했을 때, 실제 노동시간은 45시간(≒ 40+16×0.3)으로 산정된다. 따라서 일반 노동자의 주 40시간은 보건의료 노동자의 주 35시간과 같다고 보아야 하는데,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1주 노동시간은 평균 47~48시간에 이른다(노조 실태조사).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 문제도 짚어야 한다.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의사 아닌 인력(현장에서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불린다)이 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하고 직종별로 업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방 안의 코끼리’ 문제와 같이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문제를 짚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더디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천사’ ‘영웅’ 등의 호칭을 부여하고 ‘덕분에 챌린지’를 하는 것만으로 이들이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충분한 산소가 담긴 마스크(적정 인력 기준 마련, 인력 충원, 노동시간 단축, 불법 의료행위 근절 등의 대책)를 지급해야 한다. 노조의 조합원 슬로건 공모 당선작(“환자 보다 환자 된다. 주4일제 도입하라”)이 말하듯이 환자를 돌보다 환자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기자명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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