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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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장 7명이 말하는 ‘번아웃’의 현장
상록수보건소에서 보낸 4박5일

 

시민들은 매일 발표되는 신규 확진자 수로 코로나19 상황을 체감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확진자 1명이 나오면 자가격리자는 수십 명, 검사자는 수백 명에 이르게 된다. 지난 5월 말 기준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약 14만명이다. 여기에 수십 혹은 수백 정도를 곱하면 비로소 방역 현장에서 감당해온 방역 업무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전국 256개 보건소에서 K방역이라는 수레가 굴러간다. 이 수레는 자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00% 수동이다. 전국 각지의 보건소와 시군구 지자체 공무원들이 한 명 한 명 직접 그 수레바퀴를 굴려왔다. 〈시사IN〉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의 협조를 받아 5월25일부터 4박5일간 보건소 안팎에서 머물며 묵묵히 헌신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5월27일 오전 7시 감염병대응팀
그 많은 접촉자를 누가 다 찾아내는 걸까?

보건소의 하루는 오전 7시에 결정된다. 이승구 감염병대응팀 팀장은 검체 검사기관에서 보낸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보건소 채팅방에 공유했다. 5월27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4명.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를 받은 일가족 3명과 스포츠센터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검사를 받은 1명이 양성으로 판정됐다.

이승구 팀장과 김자희 주무관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선별진료소에서 올라온 코로나19 검사 신청서 명단에서 양성이 확인된 이들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돌릴 차례다. 아침부터 전하기엔 분명 고약한 소식이다. 그러나 서둘러야 한다. 출근 전에 알려야 추가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동거가족이 있다면 그들의 등교와 외출도 막아야 한다. 번호를 누르는 마음이 편치 않아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전화를 받은 이들 대부분은 당황하고, 꽤 많은 이들이 울음을 터트린다. “안타깝습니다” 같은 말은 일부러 피한다. 되도록 담담하게 검사 결과를 전한다. 그래야 수화기 너머의 확진자도 안정을 찾는다.

“오후 2~3시쯤 병상 배정되어서 생활치료센터로 가실 거예요. 그때까지 답답하셔도 집에서 마스크 착용하시고, 가족들과 접촉 금지, 외출 금지입니다. 오전 10시쯤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드릴 거니까 꼭 받아주세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고요.” 이 팀장은 대략적인 동선과 증상 유무, 동거가족 등을 묻고 20분 만에 통화를 마쳤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기초 역학조사서’가 작성되고, 다시 심층 역학조사가 진행된다. 확진자 인터뷰를 통해 동선을 파악한 뒤 CCTV 영상, 카드 사용내역, GPS 데이터 등을 추가해 밀접접촉자를 가려낸다. 하루 안에 밀접접촉자를 모두 찾아내 자가격리를 통보하는 것이 이 시점의 목표다. 전국 256개 보건소에서 같은 과정을 거쳐 질병관리청 시스템에 신규 확진자 정보 등을 입력한다. 집계된 현황은 중앙방역대책본부(질병청)로 올라가고 오후 2시 브리핑의 근거자료가 된다.

5월27일 오전 상록수보건소의 감염병대응팀 이승구 팀장과 박건희 보건소장, 김자희 주무관(왼쪽부터)이 신규 확진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K방역의 요체는 대규모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찾아내고(Test), 동선을 추적해 밀접접촉자들을 격리시키며(Trace), 환자를 치료하는(Treat) ‘3T 전략’이다. 이 모델은 한국 시민들의 삶을 비교적 안전하게 지켜냈다. 해외 국가들과 비교하면 록다운처럼 극도로 자유를 제약하는 조치 없이 시민들의 일상을 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게 해주었다. 대신 한국식 대응은 방역 일선에 막대한 하중을 전가했다. 공격적으로 검사(Test)하고 물 샐 틈 없이 추적·격리(Trace)해야 고강도 봉쇄정책을 택하지 않고도 유행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방역 일선의 한정된 노동력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일이다.

5월27일 저녁 8시 감염병대응팀 이승구 팀장과 김자희 주무관은 12시간째 근무 중이었다. 이날 신규 확진자 4명과 관련된 밀접접촉자 26명을 찾아냈다. 밀접접촉자들에게 연락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의 방문자 명단을 받아 거기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했는데 연달아 엉뚱한 사람이 받았다. 방문자 명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김자희 주무관은 대여섯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동일한 필체로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방문자 명부를 작성하면서 나머지 동행자들의 연락처를 아무렇게나 지어내 적은 것이었다. 이 작성자를 찾아내 나머지 일행들의 진짜 연락처를 받아내고서야 겨우 자가격리 통보를 마쳤다.

5월26일 저녁 9시 코로나19 예방접종 민원대응 TF
쏟아지는 ‘신종’ 업무를 감당하는 방법

2007년 간호직으로 보건소에 입직한 임경희 주무관은 2017년 상록수보건소의 초대 ‘감염병 전문관’에 자원했다.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기본 업무에 더해 각종 감염병 교육을 받고 주기적으로 모의훈련에 참여했다. 식중독부터 홍역까지 크고 작은 감염병이 늦은 밤에도 주말에도 수시로 터졌다. 앞으로 어떤 감염병이 들어와서 어느 지역부터 어떤 양상으로 전파될 수 있을지 따위 시나리오를 항공편과 교역 데이터를 바탕으로 짜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도둑처럼’ 들이닥쳤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 덕분에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그 한계 역시 뚜렷했다. 국내 감염병 대응체계는 확진자 수 186명을 기록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 정도는 예상 가능한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보건소 시스템을 중심으로 갖춰졌던 대비 태세를 압도했다.

2020년 2월25일 상록수보건소 앞마당에 설치된 선별진료소 컨테이너 박스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시작됐다. 첫날 검사자는 11명이었다. 하루 검사량이 1000건을 웃도는 2021년 6월 시점에서 볼 때는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11명의 검사자에 대응하기도 결코 쉽지 않았다. 메르스에 준해서 모든 절차가 이루어졌다. 검체 채취가 한 번 끝날 때마다 컨테이너 내부를 모조리 소독하고 레벨 D 방호복을 갈아입었다. 코로나19라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대한 보건소 직원들의 두려움도 작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신종’ 업무의 연속이었다. 하루 사이에 선별진료소 천막을 설치하고, 검사 정보를 수기로 입력하며, 민원전화(‘확진자 동선을 상세히 공개하라’ 등)에 대응하는 등의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었다. CCTV 영상을 확보하러 확진자가 방문한 가게를 찾아다니는 것도 큰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해외 입국자들에 대해 ‘2주 자가격리’ 의무가 신설되자 보건소 측은 부랴부랴 아이디어를 짜내 카라반 3대를 주차장에 들여왔다. 자가격리에 필요한 마땅한 거처가 없는 이들에게 임시 생활시설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5월26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보건소 직원들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접수처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경계가 분명한 조직도와 업무분장에 익숙한 공무원들은 변덕스러운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삶을 빠르게 허물었다. 한 달에 100~150시간씩 초과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예사로 나왔다. 코로나19로 학교까지 문을 닫은 상황에서 워킹맘 직원들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보건소에는 여성 직원 비율이 90% 가까이 된다.

임 주무관은 지난해 여름이 더웠는지, 역대급으로 비가 많이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정이 넘어 퇴근해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하는 나날이었다. 계절을 잊고 중학생·고등학생인 두 아이의 깨어 있는 얼굴도 가물가물해질 즈음인 지난해 10월 인사 발령이 났다. 주 업무가 코로나19 대응인 감염병 전문관 직책에서 벗어나 지원 성격의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보람과 긍지를 가졌던 일이지만 그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다. 지난해와 올해 상록수보건소에서는 인사이동이 잦았다. 보통 2년마다 자리를 옮기지만 물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코로나 업무를 수개월 이상 맡는 건 무리였다. 2년간 쓸 에너지가 이 업무를 맡으며 단 몇 달 만에 소진됐다.

임경희 주무관은 지난 5월 다시 코로나19 대응 업무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 민원대응 TF’다.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를 받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주민들을 전화로 상담한다. 피해보상 접수도 받는다. 대부분 발열이나 근육통, 접종 부위 통증처럼 경미한 증상을 호소하지만 전화는 짧게 끝나지 않는다. 민원대응 TF 팀원 5명의 전화기는 쉴 틈 없이 울린다. 언제 신고전화가 올지 모르니 순번을 정해 야간에도 근무한다. 5월26일 당직이었던 임 주무관은 밤 9시까지 꼬박 전화를 받았다. 서로의 자리를 메우고 채우며 보건소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보건소 내 재활보건실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 상담센터가 차려졌다 ⓒ시사IN 이명익

5월28일 오후 5시 방문보건팀
‘4318가지 사정’을 헤아리는 일

확진자뿐 아니라 밀접접촉자의 사회생활까지 차단하는 ‘자가격리’는 매우 효과적인 방역 수단이다. 하지만 공공의 안전이라는 명분이 있다 해도, 병에 걸리지도 않은 사람을 14일 동안이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일희 주무관이 속해 있는 방문보건팀은 지난해 자가격리 총괄 업무를 맡았다. 같은 해 12월 말 안산시청에 자가격리 TF가 설치되어 업무가 이관되기 전까지, 상록수보건소가 담당했던 자가격리자는 총 4318명이었다. 저마다 사정과 처한 환경이 다른 이들이었다. 이르자면 4318개의 ‘자가격리 스토리’가 있었던 셈이다. ‘내가 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느냐’며 따지거나 가게에서 기르는 관상어에 밥을 줘야 한다며 울상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조리도구나 식재료를 전혀 갖춰놓지 않아 자가격리 자체가 어려운 가구도 있었다.

자가격리라는 단일한 지침이 현실 세계와 만났을 때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결국 자가격리자와 직접 소통하는 보건소 직원들이 해결해야 했다. 직원들은 떨어진 상비약을 타서 전달하고, 해당 가구의 쓰레기를 내다 버리거나 장을 봐주기도 했다. 전기포트도 구해주었다. ‘이탈 알람’이 뜨면 해당 격리자의 집으로 출동하는 것도 보건소 직원들의 몫이었다.

지난해 8월15일 서울 광화문 집회 직후는 특히 힘겨웠다. 하루에 200~300명씩 자가격리 대상자가 쏟아졌다. 상당수가 방역 당국에 적대적인 이들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보건소 직원들이 분풀이 대상이 됐다.

그래도 정일희 주무관은 보람으로 남은 기억을 애써 떠올렸다. 지난해 11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확진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머지 가족들은 집에서 자가격리된 상태. 이대로라면 확진자 혼자 임종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록수보건소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논의 끝에 자가격리 가족에게 레벨 D 방호복을 입히고 보건소 구급차로 병원까지 데려다줘서 가족들을 만나게 하기로 결론이 났다. “준비하고 이동하는 동안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직원들이 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다행히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병실을 떠나고 그 확진자는 곧 눈을 감았다.

5월27일 오후 2시30분 결핵관리실
늘어난 업무에 인력은 제자리, ‘1인N역’을 맡은 보건소 직원들

5월27일 오후, 결핵관리실의 강민아 주무관은 ‘스탠바이(대기)’ 상태였다. 이날 아침 확인된 확진자 중 2명이 인근 평택시의 한 병원에 병상을 배정받았다. 확진자를 이송할 때는 운전 직원 1명과 간호사 1명이 2인1조로 움직인다. 간호직 순번을 맡은 강 주무관은 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건소에서는 여러 부서에 퍼져 있는 간호직 공무원 8~10명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확진자 이송 업무를 맡는다. 오후 2시30분 감염병관리팀으로부터 곧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2층 결핵관리실을 나선 강 주무관은 1층 주차장으로 나가 한쪽 구석에 놓인 컨테이너에서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했다. 감염병대응팀에서 방역소독과 방역약품 관리를 담당하는 김재용 주무관이 이날 확진자 이송용 구급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보건소에는 다양한 업무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충원된 인력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직원 한 사람이 기본 업무에 더해 여러 가지 역할을 맡는 수밖에 없다. 상록수보건소에는 ‘확진자 이송조’를 포함해 4개 파트의 비상근무조가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비는 날 없이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기 위해 ‘접수조’와 ‘검체 채취조’가 있고, 동선 파악을 위해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 등을 방문하는 ‘CCTV 역학조사조’가 있다. 보건소 직원 대부분이 본업 이외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비상근무조에 속해 있다.

5월27일 코로나19 확진자 이송을 위해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는 결핵관리실 강민아 주무관. ⓒ시사IN 이명익

강민아 주무관이 이송 업무로 자리를 비운 결핵관리실 맞은편의 방사선실. 장길현 주무관은 이날 도착한 ‘붙이는 체온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스티커처럼 몸에 부착하는 형태로 열이 나면 색깔이 바뀐다. 자가격리자들에게 지급되는 물품이다. 장 주무관의 본래 업무는 방사선 촬영이다. 보건증을 발급할 때 필요한 흉부 엑스레이를 찍는다. 그는 요즘 방역물품을 관리하는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선별진료소에서 쓰는 검체 키트, 보호복, 덧신, 라텍스 장갑, 페이스 실드, 자가격리자에게 보내는 손소독제, 마스크, 종량제 쓰레기봉투 등 재고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수량을 파악하고 늦지 않게 주문해야 한다. 원래 골다공증 촬영을 해야 하는 방 안에 지금은 방역물품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있다.

저녁 6시께, 환자 이송을 마친 강민아 주무관이 보건소로 돌아왔다. 통풍이 되지 않아 습기가 찬 레벨 D 방호복을 벗고 땀을 닦았다. 확진자 접촉 시 착용했던 방호복은 별도의 폐기물 통에 수거해야 한다. 이만하면 버틸 만한 일과다. 결핵관리실로 오기 전 강 주무관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감염병관리팀에서 코로나 대응 주무를 맡았다. 3차 대유행이 있었던 시기와 겹친다. 당시 경험을 물었을 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12월에는 딱 하루를 쉬었어요.”

2020년 12월의 트라우마, 2021년 5월의 비보
“그게 전국 보건소의 현실이에요”

지난해 12월에 대해 물으면 보건소 직원들은 하나같이 머뭇거렸다. 순간 머릿속에 정전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진짜로 너무너무 힘들었다”라는 문장 뒤에 삼키고 있을 무수한 말을 복원하기 위해선 몇 가지 숫자를 불러내야 한다.

지난해 11월 초 100명대에 머물렀던 전국 일일 확진자 수가 12월엔 1000명대까지 치솟았다. 블랙홀 같던 3차 대유행은 안산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까지 안산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달은 광화문 집회 여파가 미친 9월의 66명이었다. 지난해 12월 안산시의 신규 확진자는 444명. 11월까지의 누적 확진자 수보다 12월 한 달간 발생한 확진자 수가 더 많았다. 도미노의 시작이었다. 확진자의 수십 배 규모로 자가격리자가, 수백 배 규모로 검사 대상자가 불어났다. 인파가 많은 지역에 임시선별검사소를 설치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상록수보건소 마당 이외에 상록수역 근처 야외광장에서도 임시선별검사소를 추가로 운영했다.

무엇보다 암담한 일은 확진자를 이송할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씩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집에 남겨지는 확진자들이 늘어났다. 남겨진 이들의 불안을 다독이고, 병상을 기다리는 사이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돌보는 일도 보건소에 맡겨졌다. 밤이면 열이 난다거나, 숨이 찬다는 전화가 부쩍 자주 걸려왔다.

집단감염으로 코호트 격리되는 집단시설들도 연이어 발생했다. 상록수보건소 관내에서는 요양원 2곳, 장애인 시설 1곳, 병원 2곳이 코호트 격리됐다. 코호트 격리 14일 동안 내부에서 추가 전파를 막으려면 확진자들을 최대한 빨리 다른 시설로 옮겨야 한다. 경기도 내 병상 배정은 도청의 병상팀에서 담당하지만 밀려드는 업무로 도청에서도 도저히 병상을 배정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건소 직원들은 안산 시내 병원을 뒤져 음압병상을 찾아내고 다른 지자체에 수소문해 병상을 구해가며 코호트 확진자들을 의료기관으로 전원시켰다. 경북 상주에 있는 한 병원까지 환자를 보낸 적도 있다.

5월26일 75세 이상 어르신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안산시 상록구 감골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시사IN 이명익

3차 대유행 때의 기억을 묻자 박건희 상록수보건소장은 곧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말을 고른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직원이 나올까 봐,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어요.” 우울감, 번아웃, 소진, 냉소 같은 단어들이 보건소 공기 속에 부유하던 시기였다. 서로가 서로의 위태로움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12월24일 1237명을 정점으로 유행세가 꺾이고, 중앙정부가 지원 인력을 파견하면서 보건소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상록수보건소에서는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파견한 인력 6명과 군에서 나온 특전사 5명이 각각 선별진료소 검체 채취 업무와 역학조사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초기에 비하면 체계도 잡혔고, 일부 인력도 지원받은 덕에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보건소 직원들은 말한다.

하지만 아직 회복의 시간은 아니다. 5월27일, 부디 나오지 않길 바랐던 뉴스가 전해졌다.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코호트 격리 업무를 맡던 간호직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부담감을 토로하며 업무 전환을 요청했던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됐다.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업무량이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으로 추정됐다.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뉴스였지만 결코 놀라운 뉴스는 아니었다.

박규금 건강증진과 과장은 그것이 “전국 보건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6년 보건소 근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보건소 사업은 줄곧 늘어났지만 인력은 그만큼 늘지 않았어요. 임시직 인력만 최소한으로 채워질 뿐이에요. 지난해 우리도 비슷한 심정을 여러 번 겪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생긴 거예요.” 상록수보건소 직원들은 두 번 눈물을 훔쳤다. 한 번은 세상을 떠난 동료를 애도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전국 각지의 보건소에서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동료들이 떠올라서였다.

5월26일 오전 9시 감골예방접종센터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지난 2월부터 전국 보건소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이라는 대규모 사업이 추가되었다. 지금껏 해오던 코로나19 대응에 백신접종 업무까지 추가되니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보건소 직원들은 힘을 내본다. 이것이 출구로 향하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4월28일 안산시 상록구 감골실내체육관에 ‘안산시 제2호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가 차려졌다. 전국 보건소마다 한 개씩 개소한 예방접종센터에서는 화이자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다. 오전 9시 접종센터가 문을 열기 전부터 입구 앞에 마련된 접종 대기장소는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날은 안산시 상록수 사동과 본오3동에 거주하는 75세 이상 주민 310명을 대상으로 2차 예방접종이 예정돼 있었다.

오전 10시30분. 벌써 120번째 접종자가 백신접종을 마치고 이상반응 관찰구역에 들어섰다. 사실 예방접종은 보건소에서 ‘도가 튼’ 업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건소는 국가예방접종 사업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만 12세 이하 필수 예방접종뿐 아니라 매년 일선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독감백신 접종도 보건소에서 관리한다. 이날 예약된 접종자 310명 정도는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7월부터 시작되는 일반인 예방접종을 앞두고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 1500명 가량을 접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방접종센터를 공장에 비유한다면 5배 더 빨리 공정을 돌려야 하는 셈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에서 보건소가 맡는 역할은 예방접종센터 운영만이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 의료기관을 관리하고 주사기를 배분하는 것도 보건소의 일이다. 일부 요양원에는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방문 접종을 나가기도 한다. 이상반응 신고와 피해보상도 보건소를 거쳐야 한다.

5월28일 오전 9시30분 상록수보건소 1층 모자보건실. 설세희 주무관은 백신 창고에서 ‘방문 접종’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방문하는 요양원은 3월 초에 1차 접종을 받았던 곳이다. 설 주무관은 백신 냉장고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바이알(주사용 유리용기)을 꺼내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아이스박스의 온도계는 5.8℃를 가리켰다. 방문 접종은 간호사, 예진 의사, 행정지원 직원이 3인1조로 움직인다.

5월28일 간호사, 예진 의사, 행정지원 직원 등 3명으로 구성된 보건소의 ‘방문 접종’팀이 요양원에 가기 위해 구급차에 오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오전 10시 상록수보건소 구급차가 ○○요양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상가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요양원이다. 백신 아이스박스를 손에 든 설세희 주무관이 구급차에서 내렸다. 김종래 주무관이 최소잔여형 주사기와 알코올 솜이 들어 있는 상자를 챙겨 그 뒤를 따랐다. 요양원에는 거동이 불편한 입소자들이 많다. 설 주무관은 누워 있는 어르신들의 침대 사이를 돌아다니며 한 분 한 분 어깨에 백신주사를 놓았다. 1차 접종 때는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2차 접종 때는 걱정보다 기대감이 커 보였다. 6월1일부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백신접종 완료자는 대면 면회가 가능하다. 오전 11시 ○○요양원 입소자와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완료됐다. 그렇게 시민들의 일상 회복도, 방역 일선의 출구도 한 뼘 더 가까워졌다. 



 

기자명 안산/글 김연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영상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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