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국회 앞에서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가 손실보상법 제정과 여행업 생존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은혜씨(42·가명)는 병원에서 재무·회계 담당 계약직으로 일한다. 그는 스스로 이 일을 ‘알바’라고 표현한다. 사정이 있다. 박씨는 월급이 들어오면 일정액을 사무실 임대료로 낸다.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인 여행사 사무실이다. 서울 마곡지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한쪽에 작년까지 그가 담당했던 각종 여행상품 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직 호스팅 비용을 내고 있는 홈페이지는 2019년 이후 업데이트가 멈췄다.

박씨는 유명 여행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 7년 전 자유여행객들을 위한 1인 여행사를 창업했다. 2019년까지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여행업계에 다양한 ‘틈새시장’이 생겨났다. 소규모 개별 여행자를 위한 상품을 직접 만들어 해외 현지 가이드와 연결하던 박씨도 이런 변화에 적극 대응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대응’ 자체가 불가능한 재앙이었다.

팬데믹 충격으로 고사 상태에 빠진 여행업계의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세청이 발표한 ‘100대 생활업종’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여행업 사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5.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티다 못해 폐업한 이들이 반영된 결과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박씨처럼 사실상 휴업 상태인 곳도 상당하다. 한국여행협회 측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전국 여행사(유사 여행사 포함) 가운데 25.9%가 휴·폐업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경 이동 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다양한 유관 업종이 피해를 보았다. 업종별로 온도차는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의 관광산업 영향과 대응방안’에 따르면, 2020년 1~8월 기준 업종별 관광레저 소비 경향은 국내여행과의 연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주로 내외국인의 국내여행 관련 부문인 일반숙박업, 음식점업, 레저스포츠체험업 등에 대한 소비지출은 그 전해(2019년)의 같은 시기에 비해 각각 26.2%, 11.3%, 9.9% 떨어졌다. 그런데 이 시기 여행업(-79.6%), 관광숙박업(-42.3%), 면세점(-70.6%), 항공사(-69.4%), 관광기념품판매업(-57.5%) 등에서는 사업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소비지출 수준이 폭락했다. 외국인의 국내여행(인바운드)과 내국인의 해외여행(아웃바운드)에 의존하는 부문이 초토화된 것이다.

그나마 지금껏 여행업계의 생명줄로 작동한 것은 고용유지 지원금과 소상공인 특별자금지원이었다. 6월3일 고용노동부가 고용유지 지원금 지원 기간을 90일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휴업·휴직 상황’을 유지할 수는 있게 되었다. 다만 코로나19로 직접적 타격을 받았는데도 최근 논의 중인 손실보상 논의에선 제외되는 분위기였다. 손실보상법 초기 설계 당시 보상 대상은 행정명령으로 인해 손실을 입은 업종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억지로 영업을 중단시킨 경우(행정명령) 보상한다’는 것인데 여행업은 애초 행정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발이 뒤따랐다. 5월25일 한국여행업협회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여행업 피해보상이 포함되는 손실보상법을 제정하고 관광진흥기금으로 여행업 생존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6월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행업 등 경영위기 업종이 포함된 손실보상법이 통과되었지만 보상의 규모나 범위 등은 추후에도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보상 대상을 규정하는 문구가 ‘폭넓고 두터운 피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상세한 보상 규모와 시기 등은 추후 중소벤처기업부 손실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다.

5월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검역 절차를 안내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 제한된 해외여행 누가 선호할까

‘버티는’ 여행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뉴스는 역시 백신접종 추이다. 일단 국경을 넘을 수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제한적으로 여행을 풀자는 목소리도 구체화되고 있다. 6월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업계 간담회를 열고 ‘여행안전권역(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에 한해 단체관광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래블 버블이란 서로 방역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끼리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일종의 ‘제한적인 여행 허용’을 의미한다. 정부는 단체여행객들이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지 않고, 가이드 이외에 별도 방역전담관리사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다른 국가들과 트래블 버블 협정을 맺겠다는 입장이다. 국가 간 협약이 필요한 일이라 개별국끼리 협상이 필요하다. 유력 후보국으로는 싱가포르, 타이완 등이 언급된다.

그러나 트래블 버블은 미봉책일 뿐 현실적으로 정부의 ‘조건’이 충족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중소 여행사 대표는 “규모가 작은 여행사들이 방역전담관리사를 동행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단체 해외여행을 사람들이 얼마나 선호하느냐도 문제다. 밤에는 호텔에만 있어야 한다는 제약조건을 지키면서까지 여행을 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의미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의 사정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인의 해외여행(아웃바운드)은 사실 지금도 가능하다. 국내에서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한 다음, 14일이 지난 뒤 출국한 사람은 귀국 이후 음성 판정을 받을 경우 자가격리가 면제된다. 체코·프랑스·스위스·하와이·몰디브 등은 한국인 입국자가 백신접종을 마쳤고 검사 결과 음성일 경우 자가격리를 면제해주고 있다. 이같이 한국을 대상으로 국경의 ‘허들’을 낮추는 국가는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여행에 의존하는 인바운드 업계는 여전히 제약조건이 많다. 한국은 백신을 맞은 내국인의 출·귀국에 점차 관대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관광 목적 입국에 대해서는 빗장을 걸어두고 있다. 7월1일부터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한 내외국인이 직계가족을 만나러 오는 경우에는 자가격리가 면제되지만 관광 목적으로 국내에 입국할 경우에는 반드시 2주간 자가격리하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했을 경우 접종 증명을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다.

아웃바운드 업계도 상황이 곧바로 나아지긴 어렵다. 여행업계의 주된 고객층은 40~60대인데, 이들의 접종 속도가 관건이다. 50대의 1차 접종이 오는 7월로 예정된 가운데, 이들이 2차 접종까지 마치는 시점(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12주)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여행 재개까지 최소 4~5개월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여행 목적 출국이 가능해지더라도 여행 소비심리가 2019년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기기 전까지는 해외여행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세계관광기구(UNWTO)가 관광업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가 2024년 이후에나 전 세계 관광업이 팬데믹 이전 수준(2019년)을 회복할 것이라 내다보았다. 각종 변이 바이러스의 존재도 여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여행업계 종사자들의 ‘버티는 삶’은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쳤고(6월17일 기준), 경제지표도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행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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