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11월3일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10월 중순, 이스타항공이 605명을 정리해고했다. 이 중 승무원이 약 350명이다. 2018년과 2019년에 입사한 승무원 거의 전원이 해고되었다. 2019년 입사한 ㄱ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 8월 말부터 정리해고 명단이 나온다더니 계속 미뤄졌다. 명단이 언제 나올까 벌벌 떨며 지냈다. 발표 당일에도 순차적으로 메일이 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충격이 컸다. 이스타항공은 그의 첫 직장이었다.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ㄱ씨는 피부관리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ㄱ씨를 비롯한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지난 2월부터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2월엔 급여의 40%, 3월부터 여덟 달 동안은 ‘0원’이었다. ㄱ씨는 커피숍, 극장, 행사 의전, 사진관 스태프 보조 등 ‘단기 알바’를 전전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이스타항공 인근의) 서울 강서구 마곡동 커피숍 알바는 다 이스타항공 승무원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단기 알바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경영난에도 유급·무급 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회사에 국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이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회사 측이 고용보험료 5억여 원을 체납했기 때문이다. ㄱ씨의 경우, 수개월에 이른 4대 보험료 미납 때문에 제1금융권은 물론 제2, 3금융권에서도 소액대출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사측은 “(보험료 미납은) 자금 운용의 우선순위에 대한 경영적 판단이었다. 고용보험료 납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임금을 줄 여력이 없었고 무급휴직에 대한 노사합의도 이뤄지지 않았기에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한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설령 임금을 지급했거나 무급휴직 관련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역시 지원금 수령 자격을 얻을 수 없다.

항공업과 해운업이 주요 대상이며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2조4000억원을 받기로 한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이스타항공은 지원받지 못했다. 회사의 총차입금이 5000억원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스타항공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비용항공사(LCC) 중에는 에어부산과 제주항공만 이 기준을 충족한다.

고용노동부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인수합병)가 무산된 다음 날인 7월24일에야 전 직원 임금체불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체불임금만 300억원을 웃돈다. 고용노동부는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ㄱ씨는 1000만원 넘는 체불임금에 대해 소송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 받아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심지어는 퇴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퇴직금 지급 절차를 처리해줄 인사팀 직원이 남아 있지 않다.

코로나19가 상황을 악화시키긴 했지만, 이스타항공의 경우는 좀 더 복합적이다. 2018년 보잉 737 맥스 기종 두 대를 도입했다가 추락 사고가 잇따르자 안전문제로 2019년 3월부터 해당 기종의 운항을 중단했다. 여기에 한·중 갈등, 한·일 갈등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엔 급기야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터졌다. 올해 상반기 제주항공과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24일부터 국제선뿐 아니라 국내선까지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결국 7월23일 매각이 무산되었다. 제주항공은 이 회사를 인수하지 못한 이유를 ‘체불임금 등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이 해결되지 않아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 측은 체불임금 등 ‘미지급 사태’의 원인 제공자가 제주항공이라고 주장한다. 제주항공 측이 협상 당시 이스타항공의 운항 중단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이스타항공 직원은 1680명에 달했다. 그중 98명은 희망퇴직, 500명 정도는 퇴사, 605명은 정리해고되었다. ‘살아남은’ 직원은 500명에 채 미치지 못한다. 그들 역시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승무원 ㄴ씨는 “정부가 (코로나19발 고용 위기에서) ‘하나의 일자리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발표하는 걸 뉴스로 봤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600명 넘게 정리해고되었다. 남은 사람들도 회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댓글을 보면 ‘회사가 어려운데 어떡하냐’고 하지만, 다른 항공사가 다 받은 지원을 우리는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너무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에 대한 민주당 의원의 발언

야권에서는 이스타항공 창업주이자 실질적 대주주인 이상직 무소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출신이기 때문에 정부·여당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상직 의원의 두 자녀가 이스타홀딩스(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의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이상직 의원은 지난 6월29일 이스타항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주 일가의 지분을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빚밖에 남지 않은 회사의 지분을 헌납하는 것이 올바른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는 조종사 170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타항공에는 조종사 220여 명 중 140여 명이 가입한 노동조합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다. 정리해고가 단행된 10월14일 박이삼 지부장이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박이삼 지부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할 때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짧게 하세요, 짧게. 연설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라고 말했다. 단식 15일째인 10월29일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된 박 지부장은 “이상직 의원이 사재라도 출연해서, 체납된 고용보험료 5억원이라도 납부해달라. 그래야 고용유지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무급 순환휴직 등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차원의 대책도 요구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적어도 2021년 말이나 되어야 끝날 텐데, 현재 줄줄이 폐업 위기에 놓인 저비용항공사들을 정부 주도로 통폐합해 국유화 내지는 한시적 위기관리 하는 방안을 검토해주길 바란다.”

이스타항공 사측은 재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상직 의원은 해고 사태와 관련해 “저는 (주식) 헌납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게 없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한 바 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10월28일 여야 지도부 비공개 환담에서 이스타항공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정의당이 소금 같은 역할을 해달라”고 답했다.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는 11월4일 저녁 7시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앞으로 매주 수요일에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된 김 아무개 기장은 “일자리 정부라면서, 노동 존중을 외치면서 이스타항공 사태를 모르는 체해선 안 된다. 정부도 대책을 고민하고, 이상직 의원도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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