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북 문경시는 ‘혼기를 놓친 농촌 총각과 베트남 유학생의 만남’을 독려하는 지원책과 이들을 위한 출산장려금 지원 시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정책을 소개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지역의 이주민 체류 업무 등을 대행해주는 행정사무소에 발송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베트남 유학생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 제기 전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방문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달라”고 물으며 인구 증가 시책의 취지와 성과를 설명하고 갔다고 한다. 매매혼도 아니고, 특정 국가 출신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문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이익 처우는커녕 오히려 취업 및 장학금, 보육료 지원 등 특혜를 담았을 뿐 ‘그럴(차별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농촌 총각과 베트남 유학생의 만남’ 시책은 인종, 출신 지역, 성별, 가족 형태 등 복수의 차별 사유가 얽힌 복합차별로 볼 수 있다. ‘한국 우월주의’는 물론이고 남녀와 국적에 따라 갈리는 ‘혼인 적령기’에 대한 편견까지 내비친다. 혼인 적령기를 놓친 농촌 총각은 대개 40~50대이고 베트남 유학생은 대부분 20대 초반인데 이들을 연결해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렇다. 시책 협조 공문 속의 ‘베트남 유학생’을 ‘외국인 일반’으로 바꾸거나 출산장려정책의 대상을 내외국인으로 확대한다고 해서 덜 차별적인 정책이 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자에 대한 차별은 불이익 처우로도 나타나지만 종종 특정한 이익 처우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의 ‘배려’나 ‘지원’은 오히려 그 집단이 ‘어떻게, 왜 취약한지’ 차별적 상황을 증명한다. 이주여성에게 체류와 취업,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농촌 총각과의 결혼이 매력적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발상은 당초부터 이주민의 불안정한 처지에서 출발한 셈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설정해놓은 결혼이주여성의 어떤 ‘지위’가 있다. 고정된 성역할과 편견에 부합하여 얻은 특혜는 언제든 불이익으로 돌변한다. 그런 인식과 정책 속에서 결혼이주여성은 특정 역할을 해낼 때만 인정받는 조건부 시민이다. 배우자 의존적 체류심사 절차는 개선되지 않고, 혼인 의사의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가정폭력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으로 이혼을 선택할 때도 본인에게 책임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광고와 시책에서 편향적 출입국심사와 이주정책으로 연결되는 차별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차별은 악독한 얼굴만 갖지는 않는다. 부당대우나 배제 같은 직접적 차별뿐 아니라 고정관념과 편견 확대, 혐오 표현, 괴롭힘 등까지 ‘무엇이 왜 차별인지’ 질문하며 이리저리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이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현재 국회 국민동의청원(bit.ly/equality100000)이 진행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다.
인권의 우열을 따지느라 은폐되는 것
차별에 대해 단편적으로 이해하면,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평등 상황’으로 현재를 잘못 인식해 역차별 논쟁이 벌어진다. 소모적 논쟁은 대안이 되어야 할 평등에 대해서도 오답을 내린다. 평등권은 분배 대상이 아니라 분배 정의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평등권을 경쟁이나 배제를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 불안한 사회구조 속에서 ‘공정성(또는 공정경쟁)’에 대한 욕구에 휩싸여 권익 또는 이해에 대한 침해만 차별이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차별의 결과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한정된 자원의 공정한 분배에만 집중되면 근본적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 진짜 비극은 피해와 피해를 비교하고, 한 소수집단이 다른 열악한 소수집단을 혐오하며, 누구의 비극이 더 극단적인지 경쟁하는 상황이다. 인권의 우열을 따져 은폐되는 것은 차별 피해만이 아니다. 차별을 통해 이익을 얻는 원인 제공자나 해결의 책임이 있는 자는 아무 상처도 받지 않고 격렬한 논쟁 밖에 머무른다. 차별금지법은 진짜 원인, 진짜 책임자를 찾는 논의 구도를 만들 것이다.
세련된 얼굴의 차별은 갈수록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간접차별은, 겉으론 중립적이지만 차별적 결과를 낳는 경우를 뜻한다. 요즘은 노골적 성별 분리 채용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비정규직 채용 절차에선 여성이, 정규직 채용 절차에선 남성만 뽑히는 결과가 발생한다면 사용자의 성차별적 고의를 추정하는 것이 억지일까? 한 지역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 채용 차별이 그 예다. 2019년 6월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들은 같은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데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뽑아온 회사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6월17일 대전MBC의 성차별 채용 관행을 개선하라는 차별시정 권고 결정을 내렸다. 방송사가 여성 아나운서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성역할로 이용해온 역사적 맥락과 누적된 차별적 결과에 대해 사업주가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차별 고의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차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현재 드러난 사실관계에 더해, 역사적·문화적 맥락은 물론 업무특성 및 기술적 이해 등 전문성이 요구된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 사례를 드러내고, 분석하고, 축적해야 하는 이유다.
간접차별에 관한 인정 사례가 많지 않은 이유는 차별의 고의성을 입증해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별 행위자와 차별 피해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 및 차별 고의(일부러, 알고도, 예상하고도 그러했다는 점) 입증의 어려움은 차별을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과도 연결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실질적 대안으로 사용자의 정보공개 의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부과, 입증책임 완화(피해자가 차별 결과만 입증하면 차별 행위자가 그 합당한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방식), 신고 이후 불이익 처우 금지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좀 더 많은 차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는 데 힘이 될 것이다.
누구든 ‘내가 하려는 행동(결정)이 차별일 수도 있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사회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피해자가 피해를 겪은 뒤에 ‘이걸 차별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는 세상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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