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11일 행정 및 경찰직 공무원 채용 시험이 치러지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6월16일, 경찰개혁위원회가 출범하던 날이다. 개혁위원들 건너편으로 총경급(4급) 이상 경찰 간부들이 배석했다. 그런데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개혁위 활동 중 전국의 ‘여성’ 경찰 10여 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시종일관 후끈했다. 경찰대 출신의 소위 엘리트부터 지구대 근무자까지 다양했지만 주요 보직이나 부서에 속한 여경은 찾기 어려웠다. 말문이 열리자 그동안 당한 편견과 무시, 차별과 혐오 등에 대한 토로가 쏟아져 나왔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었다. 여경의 역사가 70년이나 됐지만 그 같은 목소리를 대변하고 보호해주는 내부 장치나 자조모임이 당시에 없었다는 점이다.

최근 ‘여경 무용론’이 또다시 불거졌다. 인천·양평 등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경의 대응을 조롱하는 영상이 마구 유포됐다. 경찰이 나서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어이없게도 여경 무용론으로 번진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공정한 경찰공무원 선발’을 문제 삼았는데 사실은 여경 무용론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 경찰 채용 체력검정이 치안 업무 수행능력보다는 “성비를 맞추겠다는 정치적 목적”을 기반으로 한다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대표 발언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의도한 내용과는 정반대로 맞는 말이다. 지난해까지 경찰은 모든 신규 채용에서 남녀를 구분해 채용해왔다. 여경의 비율을 전체 경찰에서 일정 비율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였다. 2017년 당시 전체 경찰 중 여경 비율의 목표는 고작 12%, 올해 또한 15%에 가두고 있다. 실제로 여경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의 13%에 불과하다(게다가 여경 전체의 98.8%는 경감 이하 직급이다).

그러니 순경 채용에서 여성 경쟁률은 2009년의 경우 남자에 비해 다섯 배나 높았으며 최근까지도 남성의 배를 웃돈다. 필기시험 합격선 역시 더 높다. 이 대표가 말한 대로 정치적 목적이 작동한 결과다. 남자 일색인 경찰, 남성 중심적 사회의 정치적 의도와 목적이 작동한 결과인 것이다.

남녀 분리 채용은 위헌적 관행이다. 범인을 제압할 체력이 되는 사람을 공정하게 뽑으라는 정치권과 여론의 주문에 따라 이참에 경찰은 당장 남녀 통합 채용을 실시하길 바란다. 남녀에게 똑같이 적용할 체력 기준도 이미 마련해두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경찰은 경찰대학과 간부 후보생의 경우 올해부터 남녀 통합 채용을 실시하면서도 순경 채용만은 2026년으로 미루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 제기되는 여경 혐오와 여경 무용론을 상당 부분 의식한 결정이라 여겨진다.

“여성 경찰이 못할 일은 없다”

경찰의 역할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급변하고 있다. 2018년 치안정책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경찰 업무의 80~95%가 신체적 역량이 주요하지 않은 서비스 활동 및 주민과의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경찰관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능력 또한 다양해졌다. 2017년 경찰개혁위 간담회 때 참석했던 여경들은 모임이 끝날 때쯤 “여성 경찰이 못할 일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여경 무용론에 대해 해명하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경찰에게 필수적인 직무역량, 즉 체력의 구체적 필요성과 선발 기준, 직무평가 체계 전반에 대해 젠더 관점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경찰 내부의 여성혐오와 성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2019년 양성평등담당관을 설치하고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경찰은 여타 국가기관을 선도하는 조직으로 주목받아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경찰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여경에게는 공정한 발전 기회를 제공하며, 경찰 전체를 성평등한 조직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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