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연극을 보다가 기이한 경험을 했다. 기대만큼 재미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긴장 상태만 유지하던 도중, 남자 주인공들이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오자 일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관객들이 일시에 “어우!” 하는 야유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관객 참여형으로 기획된 연극이라 객석이 마주보는 형태였다. 맞은편 관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새된 야유 소리와 비틀린 몸짓에서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이날 연극의 주제는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다’는 명제였다. 현장의 반응은 좀 역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 것에 대해 ‘동성애 혐오 현장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객들의 감정이 너무 쉽게 발산되었다는 느낌은 들었다. ‘동성애자들도 다르지 않다’라고 설득하려 했을 극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을 위해 관객이 웃음을 참아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관객 역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지 모를 성소수자들을 상상했다면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예의’ 아닐까?
혐오는 본능적 감정이다. 누가 ‘멈춰달라’고 한다 해서 곧장 멈출 수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벌레나 흉악범죄뿐 아니라 대통령, 외국인, 여성 심지어 유지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에 혐오감을 품는다. 혐오가 사회문제로 번지자 혐오하는 사람이 ‘나쁘다’거나 ‘못 배웠다’고 비판하는 이가 쏟아져 나왔다. 성소수자, 여성, 외국인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모르거나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혐오하기로 선택했을 따름이다. 비틀린 정보에 적당한 웃음 요소를 섞은 ‘대안 사실’에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들에게 주문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의 함양이 아니라 예의뿐이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밖 세상은 다르다고 알려야 한다.
그날 연극은 프레스콜 공연이었다. 사실 깔깔댄 관객들은 전부 기자였다. 반나절 뒤 포털사이트에는 ‘동성애를 유쾌하게 그려’, ‘웃음 반 눈물 반’ 따위 호평 기사가 잇따라 올라왔다. 그들은 모두 틀렸다. 공연은 주제를 전하는 데에 실패했고, ‘참여’하는 ‘기자 관객’들은 몰입을 방해했다. 누구도 이 일화를 쓰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일화는 이 밖에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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