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마사카즈 제공9월1일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피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센북지 주지 스님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일본에서 9월1일은 ‘방재의 날’이다. 8월30일에는 일본 전역에서 자연재해 및 사회적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훈련이 실시되었다. 9월1일이 ‘방재의 날’이 된 계기는 97년 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다. 1923년 9월1일 토요일 오전 11시58분, 규모 7.9의 지진이 일본 관동(간토) 지역을 강타했다. 낮 12시3분까지 규모 7.2와 규모 7.3의 여진이 잇따르며 5분 만에 도쿄에서만 건물 11만여 채가 무너졌다. 마침 점심때라 풍로를 피워 식사 준비를 하던 가정과 식당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강풍이 불을 키워 도쿄는 불바다가 되었다. 9월3일 오전까지 이어진 화재로 사망자 10만5385명 중 90% 이상이 불에 타 죽었고 수도 도쿄의 46%가 재가 되었다. 이런 미증유의 자연재해를 교훈으로 삼기 위해 일본 정부는 1960년에 9월1일을 방재의 날로 정했다.

매년 방재의 날, 9월1일이 오면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위령제가 열린다. 이 위령제는 관동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 때 일어난 참혹한 인재(人災), 일본군과 경찰, 일본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행사다. 당시엔 아직 라디오 방송이 없었고 9월5일이 되어서야 겨우 석간이 나왔다. 그간 생지옥 도쿄에서 탈출한 자들의 제멋대로인 목격담이 소문이 되어 사회적 혼란을 증폭시켰다. ‘후지산이 대폭발했다’ ‘우에노까지 쓰나미가 덮쳤다’라는 유언비어가 다른 지방 신문에 검증도 없이 실릴 정도였다. 9월1일 오후 7시께 요코하마시 혼모쿠초 근처에서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방화’는 밤이 깊어지면서 ‘조선인이 강도질을 한다, 부녀자를 폭행한다, 우물에 독을 탄다’라고 부풀려지고, 다음 날에는 ‘수백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폭약을 들고 습격하러 온다’로 커졌다. 오후에는 도쿄와 지바까지 이 소문들이 퍼졌다. 이에 공포심이 커진 주민들이 9월2일, 자경단을 조직하고 일본도와 죽창, 곤봉으로 조선인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조선인 감시를 강화하고 있던 경찰과 9월2일 계엄령 선포로 투입된 군대도 학살에 가담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일본 정부가 해군의 도쿄 무선전신소인 후나바시 송신소라는 공식 루트를 통해 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공신력을 부여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학살의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9월3일 오전 8시15분 일본 내무성은 후나바시 송신소를 통해 각 현 지사에게 ‘도쿄 부근 지진 재해를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불을 지르고, 불령(不逞)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도쿄 시내에서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려 방화를 하고 있다’는 무전을 보냈다.

이 학살로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일부 자료와 연구활동에 따르면 피해자는 대략 6000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 피학살자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고 학살 실태를 은폐했다. 1923년 12월14일 제국 의회에서 한 의원이 학살 실태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현재 조사 중’이었다. 2008년 3월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 전문조사회가 낸 ‘재해 훈련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 보고서:1923 관동대지진 제2편’에서 지진 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1%에서 수%에 달하는 다수의 조선인, 중국인, 일부 일본인이 살해당했다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익 세력은 일본 정부가 1%~수%라고 대충 뭉갠 피학살자 숫자를 핑계로 아예 학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2017년 3월 도쿄 도의회에서 당시 자민당 소속 한 의원이 조선인 희생자 6000명이라는 숫자에 의문을 제기하며,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철거와 도지사 명의의 추도문 송부를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이 추도비는 1973년 시민들의 호소에 도쿄 도의회 의원 다수가 찬성하면서 세워졌다. 1974년부터는 ‘조일협회’ 같은 단체들과 시민들이 실행위원회를 꾸려 매년 9월1일 추도비 앞에서 조선인 피학살자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왔다.

이 자민당 의원의 뒤에 ‘소요카제’라는 단체가 있다. 소요카제는 2013년 오사카 쓰루하시에서 ‘조선인 대학살 실행’을 주장했던 집회에 협력한 단체다. 이 단체는 2016년부터 도쿄 도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추도비 철거 로비를 시작했고 2017년부터 위령제가 열리는 같은 시각 추도비 바로 옆에서 ‘진실의 위령제’라는 이름의 방해 집회를 열고 있다. 이 단체는 조선인 폭동이야말로 틀림없는 사실이며 따라서 조선인을 죽인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극우, 역사 부정 단체들은 지방의회에 압력을 가하고 반대 집회를 열어 소란을 일으키는 운동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소요카제의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 가족이 살해당했고, 집이 불탔다’라며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일삼았고, 지난 7월 도쿄도 인권부로부터 차별적 언동이라는 지적을 받기까지 했다.

ⓒ연합뉴스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후 일본 정부가 공식 루트를 통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6000명으로 추정되는 재일조선인이 학살당했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일본 정부

그러나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는 이들과 발을 맞추기라도 한 듯 2017년부터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문 발표를 외면하고 있다. 답변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민족 차별의 관점보다 다양한 재해 피해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령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모든 희생자의 추모’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립적이고 공평한 척한다. 고이케 지사는 ‘학살, 살해, 죽임’이라는 말 대신 ‘돌아가신’이라는 단어를 쓴다. 올해는 추도문을 ‘매년 보내지 않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1974년부터 매년 역대 지사들이 보내온 추도문을 2017년부터 고이케 도지사만이 보내지 않고 있다.

이런 역사 부정에 맞서 시민들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참여가 늘고 있다. 매년 200여 명이 참석했던 행사에 2017년과 2018년에는 500여 명, 지난해에는 700여 명이 모였다. 올해 46회 추도식은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중계를 했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민족 차별을 없애’라는 문구가 새겨진 추모비 앞에서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의 유포와 학살에 관여한 것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죄하며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피난소에서 외국인이 물자를 훔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인터넷에 확산된 일이 있었다. 도지사의 추도문과 정부 차원의 피해 조사, 진상규명이야말로 역사 왜곡과 부정을 용인하지 않는 길이며, ‘재해 후 일어날지 모를 인재’를 막는 방재 대책이 될 것이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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