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다
  •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 호수 623
  • 승인 2019.08.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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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를 관람했다. 전시 기획 담당자들이 3개월 이상 밤낮없이 준비했다. 북한 출신 피해자의 증언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특별하다.
ⓒ왐 제공8월14일 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추도식에서 참석자가 피해자의 사진에 꽃을 달고 있다.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WAM, 이하 왐)’은 도쿄 신주쿠 니시와세다 아바코(AVACO) 빌딩에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왐을 가리키는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그 간판을 따라가면 전 세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79명의 사진이 관람객을 맞는다.

8월14일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왐에서도 오전 11시에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 참석한 후 왐이 올해 3월1일부터 열고 있는 제16회 특별전 <조선인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다>를 관람했다. 왐은 2007년에도 <버려진 조선인 ‘위안부’> 전시를 했다. 패전 일본군은 점령지나 전쟁터로 끌고 간 식민지 출신 ‘위안부’ 여성들을 버리고 도주했다. 낯선 타지에 버려진 조선인 여성들에게 ‘전후’는 전쟁의 연속일 뿐이었다. 2007년 전시의 주인공은 버려진 조선인 여성 12명이었다. 이번 전시 주인공은 자신의 피해를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하고자 결심한 남북한의 피해 여성들 183명이다.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북한 출신이나 북한에 거주 중인 피해자의 증언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서다. 왐 멤버들은 ‘우리들이 지금 전할 수 있는 모든 조선인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시’하고 싶었다.

북한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19명이다. 이 중 북한에서 발간된 소책자 <짓밟힌 인생의 외침: 종군위안부 편>에 실린 40명의 증언에, 북한 거주 피해자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재일조선인 르포 작가 김영씨가 제공한 피해자 증언을 더해 총 52명을 정리했다.

한국의 피해자를 정리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한국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한 239명(2018년 8월) 중 몇 명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고, 증언을 남긴 피해자가 얼마나 있으며 누구인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했다. 제1전시실을 담당한 왐 실행위원 3명과 자원봉사자 1명은 한글, 일어, 영어로 발간된 증언집과 재판 자료를 참고로 증언을 남긴 피해자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구 시민모임이나 마산, 통영의 피해자 지원 단체에는 증언이 출판된 적이 없거나 익명으로나마 증언을 남긴 피해자에 관한 협력을 요청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3개월 이상 담당자 4명이 밤낮없이 증언을 읽었다. 피해자들이 위안소와 전쟁터에서 겪은 고통을 악몽으로 대리 체험했다. 그렇게 4명이 모으고 정리한 증언을 자원봉사자 14명이 일본어로 번역하고 1000자 원고로 정리했다. 그 원고를 다시 왐의 담당자들이 500자 원고로 줄였다. 피해자들의 사진은 지원자 13명과 한국 시민단체 5곳이 제공했다.
 

관람객 압도하는 작은 패널들

제1전시실 <공개 증언을 한 여성들>에 들어가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증언으로 남겨 두 번 다시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원한 183명의 피해자를 만난다. 왐의 전시는 아날로그다. 요즘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 같은 것은 없다. 글자가 가득한 패널식 전시는 저예산으로 간신히 좁은 공간을 꾸려가는 왐의 고육지책이다. 그런데 183명의 출생지, 생몰년, 위안소에서 당한 피해, 전후의 삶과 증언 활동을 기록한 작은 패널들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183명 중 51명은 사진이 없다. 증언집 등에 사진이 실려 있어도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는 사진 대신 인용처의 페이지가 기입되어 있다. 모든 피해자가 실명을 밝힌 것도 아니다. 가명이 3명이고, 익명 피해자가 11명,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피해자가 1명이다. 증언의 양도 모두 다르다. 책 한 권 분량의 증언을 남긴 피해자가 있는 반면, 증언 내용이 500자 패널의 절반밖에 안 되는 피해자도 있다. 제1전시실 책임자 아리무라 준코 씨는 피해자 여성들의 처절한 외침을 500자로 줄이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들어낸 증언이 피해자의 삶을 더 잘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왐의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인 ‘위안부’의 단편적인 피해를 접한 방문객이 패널에 밝혀둔 출전을 찾아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만나기를 원한다.

제1전시실에는 왐 멤버들이 처음으로 만든 지도가 걸려 있다. 한국 정부 등록 피해자 239명에 더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조사에서 확인된 피해자 6명과 북한 정부에 등록된 조선인 ‘위안부’ 219명, 총 464명의 기록을 기초로 작성한 지도다. 조선총독부 지배하 한반도의 지명이 표기된 지도에는 피해자들의 출생지와 연행된 위안소가 집계되어 있어서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 실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지역별 연행 장소의 특성, 나고 자란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다른 피해자들의 현황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상남도 출신 피해자 53명 중 6명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거주하고 있으며, 평안남도 출신 52명 중 8명은 한국 정부에 피해자 등록을 했다.

제1전시실이 대명사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인권운동가로 거듭난 피해자가 아니라, 고유명사로서의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공간이라면, 제2전시실은 여성들이 겪은 피해의 원인을 알고 그 책임을 명백히 밝히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제2전시실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1937년 중일전쟁 때 갑작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에 의한 조선에서의 성 관리’ 코너는 일본 메이지 정부가 어떻게 조선에 일본의 공창제도를 들여와 성 관리 시스템을 이식했는가부터 시작된다. 1876년 부산을 개항시킨 일본 메이지 정부는 일본인 거주 지역에 유곽을 허가하고, 일본 영사관의 전신인 관리청은 성매매와 성병 검사 시설의 관리를 담당했다. 유곽은 나중에 인신매매를 감추기 위해 요리점 등으로 이름만 바꿔 확대되었으며, 빈곤에 처한 조선인 여성들이 성매매 시스템에 포획되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한반도에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일본군의 성병이 문제가 되자, 일본군은 점차 조선 주둔 군대 주변 성매매 시설을 직간접으로 관리하며 일본군 위안소와 마찬가지로 군의가 성병 검사를 했다.

‘조선총독부 지배하의 성 관리’ 코너는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 정부가 1916년 조선 전역의 성 관리 규제를 통일하고, 이에 기반해 관리하기 시작한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이 시기는 식민지 조선에 일본군의 상설 ‘조선군’ 편성이 본격화되던 때와 겹친다. 조선총독부하의 성 관리는 헌병과 경찰이 담당했고, 이때부터 조선인과 일본인 민간업자가 등장한다. 1920년대부터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경제가 파탄 난 농촌의 빈곤층 여성들이 철도로, 배로 각지에 팔려가게 된다. 당시 공문서나 보도자료, 조선총독부 관리 아래 만들어지고 운영된 유곽 지도 등을 보면 식민지 국가권력이 성매매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이때 형성된 성매매 네트워크가 이후 필연적으로 ‘위안부’ 제도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왐 제공조선인 ‘위안부’의 증언과 피해자 지도가 전시된 제1전시실 모습.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도 소개

제2전시실 중앙에 걸린 강덕경의 그림 <책임자를 처벌하라-평화를 위하여> 오른편에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전후’ 삶을 전하고 있다. 28명이 전하는 ‘전쟁 그 후’는 한국·북한·일본 사회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맞은편의 연표 <일본은 조선인에게 어떻게 해왔나-지금도 이어지는 일본의 식민지주의>는 1866년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조선인을 둘러싼 역사, 조선의 일본군과 성 관리를 둘러싼 역사, 일본과 세계의 주요 역사를 배치하고 있다.

1945년 이전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연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여성에 대한 관리와 군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역사, 1945년 이후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 역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연표의 위아래에는 폭력적인 조선 점령과 지배의 실태를 알리는 패널이 배치되어 있다. 향후 이 연표에는 ‘위안부’의 역사와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이에 맞서 공개 증언을 하고 싸워온 피해자들의 활동이 추가된다.

왐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전시 패널 대여 캠페인이다. 왐은 특별전 <군대는 여성을 지켜주지 않는다-오키나와 일본군 위안소와 미군의 성폭력>에 쓰였던 패널을 2018년 2월부터 그해 12월20일까지 무료로 대여했다. 계기는 2018년 2월 나고시 시장 선거였다. 미군기지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았던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자마자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오키나와인의 반기지 투쟁 역사를 알리기 위해 왐은 캠페인을 전개했다. 10개월간 7개 단체가 왐의 패널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고, 3000여 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한국에서도 <조선인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다> 특별전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도쿄 전시는 2020년 8월 말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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