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독사진’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찍은 사진을 의미한다. 사진 찍는 일이 특별하고 비싸던 시절,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사진을 찍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던 셈이다. 필름 한 장이 구성하는 ‘사각형 프레임’의 공간과 시간을 독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미지를 사진 프레임 같은 특정한 공간에 배치하는 일은 권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공간을 점유하는 정도, 크기, 위치에 따라 그 사람이 갖는 권력의 크기를 보여준다. 이는 한 사람 이상이 모여 찍는 모든 단체사진에 적용된다. 가족사진, 졸업사진, 결혼사진, 여행사진 같은 기념사진이 대표적이다.
1918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기념 촬영한 조선 마지막 황실의 가족사진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의 한가운데에 고종, 왼쪽에는 순종과 영친왕이 앉아 있다. 고종의 오른쪽에는 순정효황후와 어린 덕혜옹주가 보인다. 인물들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카메라 역시 멀찌감치 떨어져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으로 판단할 때, 권력자는 당연히 고종이다. 그와 가까이 앉는 순서에 따라 권력이 크다. 물론 그 권력의 크기 역시 대한제국이 망한 지 9년째,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이니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물론 사진만으로는 이런 구체적 사실관계까지 파악할 수 없다. 역사적인 기억들을 불러와야 이 사진이 가진 다소 우울한 분위기와 함께 짐작 가능하다.
사진의 탄생 이전에도 여러 인물을 함께 묘사하는 데는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주인공은 크고, 주위 인물들은 작게 그려졌다. 공간의 점유 역시 중요 인물은 가운데에, 나머지 인물은 주인공과의 관계에 따라 배치되었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가 중심에 있고 제자들은 필요에 따라 적절히 배치되었다. 그나마 르네상스 전성기의 작품이므로 인물들의 크기는 같다. 르네상스 초창기만 해도 성모 마리아와 기타 성인, 천사들의 크기는 확연히 달랐으며 묘사된 정도는 물론이요, 사용된 물감조차도 다른 경우도 많았다.
인간에 대한 묘사는 변하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시절의 인물 배치도 마찬가지다. 권력자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만큼 크기 차이가 있다. 엄격한 규칙에 따라 묘사되었다. 이집트의 경우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엄격히 적용되었다. 정면성의 원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든 인물의 가슴이 감상자에게 정면을 보이도록 묘사되어야 한다. 봉합적 묘사에서는, 한 인물을 그리면서도 그의 가슴은 정면,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으로 나타냈다.
그때로부터 5000년쯤 지난 지금, 사진이라는 이미지 표현 매체는 어떨까?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 과학적이니까 그 배후에 있는 인간을 보는 시선, 권력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을까? 아무리 보아도 아닌 듯하다.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정면성의 원리, 공간 점유에 따른 권력의 규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묘사에서 그 시선과 관념은 본질적으로 변화한 점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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