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술계의 주목을 끈 재판 결과가 나왔다. 대중가수 조영남씨가 조수 두 명에게 대신 그리게 한 화투 소재 작품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판매한 사건이다. 검찰은 조영남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결과는 무죄였다. 대법원은 작품을 산 사람들이 ‘조영남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그림을 매입했으므로, 조수들이 그렸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지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조수가 그렸다는 사실이 구매자에게 꼭 필요한 중요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기 혐의는 무죄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위작이나 저작권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대법원은 조영남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그의 미술작품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조씨는 재판 결과에 대해 대법원이 자신을 미술작가로 인정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법원은 그가 작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미룬 것에 가깝다. 사실은 판단할 수도 없었다.
어떤 사람을 미술가로 정의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미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실은 어려운 문제다. 미학자와 예술철학자들 역시 명료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미학자인 조지 디키는 ‘예술제도론’을 주장했다. 예술제도에서 어떤 대상이 ‘예술’로 불리면, 그것은 예술이라는 의미다. 예술제도는 예술계에서 형성된다. 예술계는 작가와 큐레이터, 비평가, 딜러, 수집가 등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즉, 예술이란 고유한 특징을 가진 어떤 대상이라기보다, 예술계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작품 제작을 돕는 조수를 두는 것은 미술계의 오랜 관습이다. 르네상스 이전부터 도제 제도가 있었다. 현대의 개념미술이나 미니멀 아트 등에서는, 예술가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제작은 아예 기술자에게 맡기기도 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필름을 주로 쓰던 시절에도 사진가가 사진을 찍고 이를 현상·인화하는 이들은 그 분야 전문가인 경우가 많았다. 저명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옆에는 피에르 가스만이라는 전문 인화가가 있었다. 가스만은 로버트 카파, 윌리 로니, 만 레이 등의 작품을 인화했다.
조수의 존재를 구매자가 알고 있었는가
디지털 사진을 이용하는 많은 사진가들도 컴퓨터 후반 작업과 디지털 인화에서 그쪽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의 작품이 가짜라든가, 진본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작가가 그 모든 과정에 개입해서 감독·지휘하고, 그 사실을 구입자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조영남씨 재판에서 핵심 문제는 ‘현대미술에서 조수를 쓰는 것이 관행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고 본다. 조수의 존재를 구매자나 유통자들이 알고 있었는가가 쟁점이다. 정보의 투명성이 포인트인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깔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조영남씨가 가수든 화가든 그의 자유다. 미술계가 그를 인정하든 않든 그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어쩌면 미술계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언젠가 판단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영남씨 재판의 결과가, 예술가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면죄부나 그의 작가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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