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6월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

정치인을 찍는 사진기자들 사이에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셔터를 누를 땐 안 보이지만 인화하면 틀림없이 나오는’ 인물이 있다. 기자들의 카메라는 권력의 중심인 사람을 겨냥하기 마련이다. 촬영된 사진에는 권력자 외에도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들어간다. 주변 인물들 처지에서는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과 권력자의 친분 관계를 과시할 수 있으며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권력자를 찍는 현장에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눈치와 몸이 재빠른 누군가만이 ‘셔터를 누를 땐 안 보이지만 인화하면 틀림없이 나오는’ 인물이 될 수 있다.

최근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경을 들고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최고 권력자인 트럼프가 더 큰 권력자인 ‘신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찍히려고 발버둥친 모습이랄까.

6월1일, 미국 경찰은 백악관 뒤편 라파예트 공원에서 ‘조지 플로이드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최루탄까지 쏘며 강제로 해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가 사라진 공간을 통해 ‘대통령의 교회’라 불리는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에 도착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대체로 이 사진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가 고귀한 교회에서 사진 찍을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고사령관의 권한을 남용했다”라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의회에 성경을 들고 나와 읽으며 “대통령은 불길에 부채질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교회 앞에서 찍은 트럼프의 사진은 단순하다.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오른손에 성경으로 보이는 책을 들고 있다. 왼쪽 뒤편에는 교회의 이름이 아웃포커싱(특정 대상은 선명하고 나머지 부문은 흐릿하게 촬영하는 기법)되어 있다. 트럼프의 왼쪽 옷깃에는 성조기 배지가 보인다. 어떤 과정을 거쳐 찍혔는지 모른다면, 아주 평범한 사진이다. 미국 대통령이 자주 가는 교회 앞에서 찍은 일상적 모습.

트럼프 의도와 정반대로 해석될 수도

하지만 정치적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종교를 매개로 지지자들을 결집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로 연출된 사진이다.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역사적 산물이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가진 대상이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얹는 이유다. ‘교회 앞에서 성서를 들고’란 연출은 기독교의 권위를 이중으로 차용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부 지지자들은 “역사적 순간”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다시 백악관 인근의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 2세 국립 성지를 방문해 화환이 걸린 교황 동상 앞에서 묵념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천주교의 권위도 빌리겠다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 사진은 트럼프의 의도와 정반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종교적 권력을 빌려야 할 만큼 취약해졌다는 것 아닌가. 모든 사진이 찍고, 발표하는 자의 의도대로 해석되고 소비되지는 않는 법이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