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시사IN〉 이명익 기자가 찍은 4월15일 김부겸 후보 캠프의 한 장면.

사진계에 널리 쓰이는 말 가운데 롤랑 바르트가 처음 사용한 푼크툼(punctum)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원은 라틴어로 ‘바늘로 찌르다’라는 뜻인데 사진을 읽는 한 방법 혹은 시각을 말한다. 푼크툼과 상대를 이루는 말은 스투디움(studium)이다. 스투디움은 사진에 관한 일반적인 해석 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뜻한다. 반면 푼크툼은 일반적인 사진의 정보가 아니라 한 개인의 특수한 관점과 마주쳐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험을 말한다. 스투디움은 사진이 가진 일반적인 정보이고, 푼크툼은 사진을 보다가 우연히 갑자기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시사IN〉에 실린, 이명익 기자가 찍은 김부겸 캠프의 아래 사진을 보면 두 개념을 잘 설명해준다(〈시사IN〉 제659호 ‘갈라치기가 아닌 상생과 공존의 정치’). ‘4월15일, JTBC의 예측조사가 김부겸 후보(가운데)의 승리로 나오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라는 사진 설명은 이른바 스투디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김부겸 후보는 사진 가운데 마스크를 쓰고 차분하게 앉아 있고, 주위 운동원들과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부겸 후보는 낙선했다. 공중파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한 출구조사에서도 김 후보는 크게 뒤진 것으로 나왔다. JTBC만 그의 당선을 예측했고, 그 순간을 이 기자는 카메라에 담았다. 결국 이 사진은 김부겸 후보 캠프 사무실의 잠깐 동안 흥분되고 고양된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만약 이 사진에 푼크툼이 있다면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 사진 속에서 내 눈길이 오래 머무르는 곳, 이른바 개인적인 푼크툼은 김부겸 후보 양쪽에 있는 빈 의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기에 놓인 글씨였다. 왼쪽 의자에는 ‘부친’, 오른쪽은 ‘배우자’라고 인쇄된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물론 부친과 배우자는 현장에 없었고 흰 종이 위에 인쇄된 글씨가 그들을 대신할 뿐이다. 이 빈 의자와 글씨가 가진 기묘한 분위기, 부재의 증거는 저널리즘 사진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즉 스투디움적 관점이라면 두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거나 일찍 돌아갔다는 정도만 알려준다. 내게는 사진 속의 다른 모든 정보보다도 훨씬 의미 있어 보였다. 도대체 왜 이 글씨와 빈 의자가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일까?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디테일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장면으로부터 화살처럼 나와 나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는 “대개 푼크툼은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디테일에서 나오며, 흥미를 끄는 세부 요소는 의도적이 아니거나, 최소한 완전히 의도적은 아니며, 의도적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빈 의자 위 글씨는 사진을 찍은 기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디테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글씨를 보고, 사진 속에 등장하지 않는 부친과 배우자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상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사IN〉 미술팀 기자가 이 사진을 어떤 의도에서 실었든, 이 사진은 내게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롤랑 바르트 말에 따르자면 내 안에서 작은 전복을 일으킨 셈이다. 이는 사진의 본질은 아닐지라도 사진이 가지는 중요한 특성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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