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2일 서울 종로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벽보를 붙이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를 대표하는 신호 가운데 하나는 선거 벽보이다. 지금은 SNS 등 유권자에게 후보를 알릴 방법이 많다. 예전에는 선거 벽보가 후보자와 소속 정당, 경력과 공약 등을 알리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수단이었다. 커다랗게 인쇄된 얼굴 사진과 정치 구호가 결합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했다.

필자에게는 초등학교 시절인 1967년 5월 치러진 제6대 대통령 선거 벽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통틀어 80가구 정도가 살았던 작은 섬마을 돌담 벽에 줄줄이 붙어 있던 선거 벽보는 주위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볼거리가 전혀 없던 시절 선거 벽보는 정치적 주장과 상관없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가끔 벽보 앞에 서서 박정희·윤보선 등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선거 구호는 당시 군소 후보였던 오재영 후보의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였다. 이 구호가 기억에 깊이 각인된 이유는 배가 고팠던 시절의 분위기를 너무 절실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일 것이다.

선거 후보자들은 벽보에 쓰기 위해 사진을 새로 찍는다. 후보자의 결점은 최대한 감추고 장점은 부각되도록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선거용 사진은 후보자에 대한 진실이나 사실을 알려주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인 초상화나 초상 사진과 다르다. 물론 초상화나 초상 사진도 인물을 어느 정도 미화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찍거나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조선 시대의 전통 초상화이다. 그 시대의 초상화는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 즉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다른 사람이라는 정신이 깔려 있다. 인물을 어느 정도 미화하면서도 마마 자국, 사시 눈, 검버섯 등을 빠뜨리지 않고 그려 넣었다.

이와 달리 선거 벽보용 사진은 결점을 수정한다. 사진 연출 방식이나 후보자의 자세와 표정은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대개 정면 아니면 얼굴 4분의 3이 보이는 전통 초상화 방식으로 찍었다. 요즘에는 웃고, 하늘을 쳐다보고, 손가락 제스처를 하는 등 후보자들의 표정이나 몸짓이 풍부해졌다. 이런 다양함은 후보자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선거용 콘셉트에 따라 연출하는 방식이다.

2018년 지방선거 녹색당 후보 사진 주목

필자가 보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가장 성공한 경우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녹색당 후보의 사진이었다. 당시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단발머리, 금테 안경, 깔끔하게 정리된 디자인과 문구, 레터링 등으로 주목을 끌었다. ‘페미니스트 시장’이라는 구호가 도발적으로 보인 탓인지 반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선거 벽보 훼손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화제를 모으며 실제 득표율도 4위를 기록했다. 선거가 끝난 뒤에 〈세상을 바꾼 벽보-녹색당 신지예와 선거 포스터〉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19의 광풍 속에서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다. 선거 벽보에 담긴 이들 가운데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4년간 의정 활동을 한다. 역대 최악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20대 국회와 달리 21대 국회는 뭔가 좀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