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 호수 647
  • 승인 2020.02.15 14: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한 곰, 비욘〉 델핀 페레 지음, 김연희 옮김, 단추 펴냄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는 예배 시간에 장기자랑이나 공연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연극을 하고, 어른들은 기타나 풍금을 연주하고, 중창단이나 합창단이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공연의 맨 마지막 순서이자 하이라이트는 할머니 듀오였습니다.

그들은 바로 저의 외할머니와 친구분이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식순에 이름이 없었습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면 누군가 두 분의 이름을 불렀고, 두 할머니는 부끄러워하며 단상에 올랐습니다. 이윽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듀오는 아주 놀라운 음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찬송가를 끝까지 불렀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제가 교회에서 기억하는, 가장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곰 비욘은 동굴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굴 안은 제법 아늑한 편입니다. 동굴 바닥도 아주 푹신하고요. 게다가 동굴 바로 앞에는 아주 부드러운 풀밭이 있습니다. 등을 긁기에 너무나 완벽한, 울퉁불퉁한 나무도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비욘에게는 그루터기로 만든, 멋진 우편함이 있습니다. 우편함에는 이따금 편지가 꽂혀 있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우편함에 형광색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편지에는 커다란 글씨로 축하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비욘이 어떤 이벤트에 당첨되었고, 선물로 3인용 소파를 받게 되었다는 편지였습니다. 그 3인용 소파가 비욘의 삶을 행복하게 바꿔줄 거라고 했습니다.

많은 깨우침 전하는 소박한 그림책

그날 오후, 비욘의 집 앞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트럭에서 인간 아저씨 두 분이 내렸어요. 아저씨들은 커다랗고 빨간 소파를 비욘의 동굴 안으로 옮겨주고는 부리나케 가버렸습니다. 이제 곰 비욘의 삶은 행복해질까요? 소파는 어떻게 비욘을 행복하게 해줄까요?

델핀 페레 작가의 〈행복한 곰, 비욘〉에는 ‘소파’ ‘가장무도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선물’ ‘안경’ ‘때가 되었어’ 등 아기자기한 이야기 여섯 개가 담겨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두 줄 또는 세 줄, 다섯 줄의 짧은 글 사이로 작고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에피소드 사이로 비욘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비욘은 이미 행복하구나!’ 이미 행복한 곰 비욘에게 사람들은 왜 응모하지도 않은 이벤트를 당첨시키고, 바라지도 않은 소파를 가져다줄까요?

노래를 못해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잘 부르려고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르고 싶기 때문에 부르는 것이 노래입니다.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릴 수 있습니다. 글을 못 써도 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엔 서툴기 마련입니다.

델핀 페레 작가의 글과 그림은 자유롭게 쓰고 그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보여줍니다. 작가는 나만의 캐릭터, 나만의 드로잉, 나만의 내러티브로 나만의 예술 세계를 만드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세련된 그림책 〈행복한 곰, 비욘〉을 보는 동안 저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 듀오의 찬송가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델핀 페레 작가와 할머니 듀오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웃었고 감동했고 행복했습니다. 이 소박하고 자유로운 그림책은 참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인생은 잘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는 것임을, 자유가 진심의 시작이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는 것을.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