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가위, 날이 환한 시간인데도 보름달은 아주 예쁘게 빛났습니다. 떠오르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소원을 다시 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마 제가 세계평화와 지구환경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주 개인적인 소원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깊은 밤, 아이들의 방입니다. 두 아이가 저마다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방문을 살짝 열고 말합니다.
“얘들아, 우린 약속이 있잖아?”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군말도 않고 일어나 옷을 입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집을 나섭니다. 엄마가 배낭을 메고 앞장섭니다. 그 뒤를 막내 꼬마와 누나 그리고 아빠가 따라갑니다. 아빠는 배낭을 메고 손전등을 들었습니다. 모두 잠든 동네를 살금살금 지나갑니다. 어느새 막내가 앞장을 서고 누나는 길가의 돌을 따라 걷습니다.
자연은 날마다 약속을 지키고 있다
모두 잠든 밤에 이 가족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도대체 어떤 약속을 했기에 아이들은 투정도 부리지 않고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엄마 아빠를 따라 길을 나서는 걸까요? 어떤 약속인지는 몰라도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닐까요? 그래도 무슨 약속인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따라가다가, 결국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림책, 〈어떤 약속〉입니다.
퇴근할 때마다 저는 자주 뭔가를 두고 나옵니다. 예컨대 깜빡하고 텀블러를 두고 나오면 다시 돌아갑니다. 막상 사무실로 돌아가면 밀린 일도 보이고 밀린 책도 보입니다.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결국 텀블러는 잊고 집으로 갑니다. 이렇게 기억력이 한계에 이르다 보니, 놓치는 이메일도 많고 가끔은 지키지 못하는 약속도 생겨납니다.
문득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약속을 지켜주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날마다 아침 6시면 문을 여는 스포츠센터 사장님에게, 아침 7시면 멸치육수를 끓이기 시작하는 우동집 사장님에게,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해님에게 그리고 저녁마다 찾아오는 달님과 별님에게 고맙습니다.
지난 한가위에 달님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가 빈 소원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다시 소원을 빌지 않더라도, 달님과 해님과 별님은 우리를 한결같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다시 찾아온 오늘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오늘은 달님과 해님과 별님에게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새로운 날을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살아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림책 〈어떤 약속〉은 자연이 사람에게 날마다 지켜주고 있는 약속을 가슴 뭉클하게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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