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지막 삶을 기록하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635
  • 승인 2019.11.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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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는 누구보다 자주 죽음을 대면하는 직업이다. 〈작별 일기〉와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의 저자들은 한국 사회 노인 돌봄의 현재를 증언한다. 사적이지만 사회적인 기록이다.
ⓒ시사IN 이명익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의 마지막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 〈작별 일기〉를 썼다.

삶의 끝에 선 사람들 곁엔 누가 있을까.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관리사로 일했던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마지막 3년을 기록했다. 조카 손자를 키우며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은주 번역가도 노인과 만나는 하루하루를 적었다. 요양보호사는 죽음을 누구보다 자주 대면하는 직업이다. 결은 다르지만 이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 노인 돌봄의 현재를 증언한다. 사적이지만 사회적인 기록이다.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시킨다. 누구나 죽는다.

어머니의 마지막 3년을 기록하다

차차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체온 저하로 두 차례의 얕은 진저리가 있었다. 날숨과 들숨 사이 간격이 길어졌고 어느 날숨 후 들숨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2018년 11월5일 새벽 2시13분. 최현숙 작가의 어머니 안완철씨가 눈을 감았다. 경기도 수원의 한 실버타운이었다. 작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의 마지막 ‘해체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죽음을 애도하는 본인의 방식이었다. 그 3년의 기록이 〈작별 일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여전히 91세 아버지가 사는 실버타운 근처에 살고 있는 최현숙 작가를 만났다. 어머니의 첫 번째 기일이었다.

2012년 작가의 부모는 실버타운에 입주했다. 각방을 썼다. 1인당 1억원의 보증금과 월 200여만원의 생활비가 드는 실버타운의 노인들은 최 작가가 그간 봐온 노인들과 달랐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며 사업을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근처 텃밭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부부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안 하던 화장을 하고 옷이나 신발의 상표에 신경을 썼다. 2008년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뒤 줄곧 가난한 노인들 속에서 밥벌이를 해온 그는 이런 ‘부자 노인’을 볼 때마다 ‘쪽방촌 노인들의 비루한 얼굴과 밥상, 옷차림과 살림살이, 누추하고 신속한 노쇠 과정과 죽음을 떠올렸다’.

세상을 계급의 관점에서 보는 그로서는 부모가 아니면 실버타운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테다. “하류노인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해서 쓸모없게 여겨지는 노인들이다. 하류노인으로 여겨지는 많은 노인이 있고 그 반대편에 실버타운에 사는 노인이 있다. 소비력도 있고 그 때문에 가족관계도 상당히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 마음의 여유까지 결정된다. 나로선 가난한 노인들을 더 잘 보기 위한 상대적인 집단으로서의 부자 노인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추적도 덤으로 따라왔다.”

엄마 방의 지린내와 구린내가 점점 심해졌다. 냄새를 통해 엄마가 ‘죽음을 향한 회귀 불가능한 모퉁이 하나를 돌았음을’ 직감했다. 기저귀 채우는 걸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말한다. “얼마나 힘들면 쌩오줌이랑 생똥을 싸겠냐? 너도 이다음에 알게 돼, 나만큼 늙으면.” 배변 과정을 남의 손에 맡기는 순간이 온다. 그걸 두고 죽을 때가 됐다고들 말한다. 작가는 그 기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식들을 기저귀 갈아 키웠듯 나이 들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하다. 자연스러우면 좋겠지만 늙음, 배변에 대한 정상 이데올로기 때문에 본인 자신도 자괴감을 가진다. 그 자체를 처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처참하다고 보는 사회적 시선이 있다.”

ⓒ후마니타스 제공최현숙 작가의 어머니 고 안완철씨(오른쪽)는 실버타운에서 생을 마감했다.

서울에서 수원을 오가던 그는 2018년 수원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실버타운 안에서 독립된 방을 쓰던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개인 간병인을 채용했다가 결국 공동 돌봄이 이루어지는 케어홈으로 이동했다. 초기·중기·말기의 노년 중에서도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시기를 주목했다. 노인 한 명이 어떻게 죽느냐는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다. 계급과 젠더, 가족주의, 사회복지, 생명윤리 등 많은 사회문화적 요소가 뒤엉켜 있다. 한 사례를 밀착해 기록함으로써 죽음과 늙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정상 이데올로기 중 가장 막강한 것 중 하나가 늙음·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다. 그걸 뒤집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오는 거고 죽음 역시 삶의 과정이다. 옛날엔 죽음을 동네에서 경험했는데 이제 산 자들의 공간에서 완전히 배제해 별도의 세리머니를 통해 처리한다. 그러고선 죽음이 안 올 것처럼 산다.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기억이 왜곡되어가는 와중에도 엄마는 더 높은 이자를 좇아 은행 계좌를 옮겼다. 평생 돈 때문에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돈에 대한 집착으로 옮아갔고 큰아들, 남편 순서로 이어졌다. 9년간 노인복지 돌봄 현장에서 ‘도를 닦은’ 작가는 목욕탕 불을 껐냐고 열 번도 넘게 묻는 엄마에게 같은 톤으로 “응 껐어”라고 답한다. 집착과 증오는 치매 증상으로만 볼 게 아니었다. 분노는 어머니의 내면에서 나왔고 가족과 사회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게 제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늙어가는 부모를 남매들이 함께 돌보는 과정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 면도 있다. 냄새 난다고 저리 가라는 엄마 곁에 누워서 작가는 학창 시절 액취증으로 따돌림을 받던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에게 돈을 받지 못해 도벽에 빠진 시기도 고백한다. 20대 초반 여러 번의 가출을 통해 가족을 떠났던 경험이 그 바탕에 있다. 그 시기 아버지의 질서, 세상의 질서를 모두 의심했다. 모든 ‘정상 이데올로기’를 의심했고 역시 그 관점에서 작가는 ‘실버산업’을 조소한다. 이 산업이 여성 노동자들의 육체·감정 노동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어머니는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급속도로 무너졌다. 단기간 내 걷지 못하게 되었고, 밤잠을 안 자고 소리를 지르는 증상 때문에 민원이 들어왔다. 정신이 돌아왔다가도 분노와 왜곡의 기억을 쏟아냈다. 최종적으로 무력과 무능의 단계로 들어간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서러움이자 고까움이고 설명 불가능한 외로움이라는 걸 목격한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아직도 어머니의 손아귀 힘이 기억난다고 했다. 엄마는 그의 손을 붙들며 “나 좀 데려가라”고 했다. 외출과 외박이 가능하지만 본인은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선택해 들어왔으나 어머니는 실버타운을 납골당이라고 불렀다. 마지막 과정에서 원한 곳은 시설이 아니었다. 사회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부모를 보며 훗날 자신의 요양원 생활을 가늠하던 다른 남매들도 어머니의 호소가 자기들이 할 호소이고 악다구니일 수 있다고 인식한 것 같다.

실버타운에 있는 내내 다섯 남매 중 외국에 있는 한 명을 제외한 네 남매가 주 1회 방문을 정례화하고 각자가 한 활동과 부모의 상태를 기록해 대화방에 공유했다. 각자의 능력만큼 부담을 배분했다. 이상적인 돌봄이 가능했던 건 그럴 만한 여유와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한 기록이기도 하다. 사적 기록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구성원도 있었지만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출간 직전 보여주었고 고생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최현숙 작가는 1987년부터 천주교 사회운동을 했고 2000년부터 진보 정당에 몸담았다. 어떤 갈등 상황에 놓이든 누구를 만나든 여성주의적·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2008년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다. 노인장기요양제도를 비롯해 장애인·산모·신생아 돌봄 등 무료로 했던 노동을 사회화하던 시점이다. 요양보호사 중 또래 여성이 많았다. 그들과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만난 노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걸 사회적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구술생애사 작가가 되었다. 현재는 전업 작가다. 글 쓰는 걸로 남은 삶을 살고 싶다.

경비나 입원 과정, 연명치료 거부의 과정 등을 꼼꼼히 남겼다. 실용 정보다. 5060 독자들은 마음의 자세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부모 돌봄의 과제를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닥치는 대로 겪는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하되 자괴감에 빠지지 말라. 지나고 나면 틀린 부분이 있고 돈과 형제가 없으면 더 힘들지만 하는 데까지 하는 거다. 다만 사회적으로 같이 해결할 문제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고독사나 노인 자살에 대한 생각도 좀 다르다. 죽는 순간은 어차피 혼자다. 낙인찍고 창피해할 일이 아니다. 늦게 발견된 시신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공포가 있지만 그건 산 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빈곤 노인 중 시신을 기증하는 사례가 많다. 의료계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병원에서 시신을 처리해줄 것으로 기대해서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현재로선 의료 레일 위에 올라가 있는 돈을 다 뜯기고 마지막 존엄까지 빼앗긴 채 가족들 속에서 죽지도 못하게 된다. 앞으로 자유죽음에 대한 담론이나 실천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작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진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아버지를 기록하고 있다. 내는 책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썼는데 아버지가 그걸 다 읽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1920년대에 태어난 남성으로 농촌 봉건사회에서 도시 산업사회로 건너와 사회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버지는 시대와 계급의 특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빈곤 노인들을 인터뷰해놓은 자료도 있다. 소설의 방식으로 푸는 것도 고려 중이다. 작가도 노인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장기간의 흡연으로 폐가 좋지 않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발목이 먼저 망가지더라도 눈이 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사IN 이명익〈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에는 이은주 작가(사진)가 지난 3년간 요양원, 데이케어 센터 등에서 두루 경험한 삶과 죽음이 담겨 있다.

애정을 쏟던 노인이 사라졌다

서울 마포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들어서자 노인 한 명이 이은주 요양보호사를 알아봤다. 재가방문 서비스를 마친 직후였다. 그가 20대부터 입어 이제 몸의 일부로 느껴진다는 청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났다. 양손이 마비된 노인의 집에 들러 주 5일 세 시간씩 일을 한다. 먹을거리와 약을 챙기고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 87세 여성 노인과 60대 아들 둘이 살고 있는 가정에도 방문한다. 노인을 돌보러 갔는데 아들의 밥을 해달라고 요구해 난감하다. 셋 다 이가 부실해 섭식에 어려움이 있다. 노인들의 장기요양보험 등급에 따라 지원 여부와 시간이 결정된다.

일본 문학 번역가이자 출판사 편집자, 파출부, 면세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이은주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 지난 3년간 요양원, 데이케어 센터, 재가방문 서비스를 두루 거쳤다. 처음엔 ‘내 엄마를 맡길 곳이 과연 안전한가? 미래의 내가 의탁할 곳이 어떤 공간인가’ 하는 관심에서 출발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 그를 닮은 노인들 곁에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요양보호사를 준비할 당시 박명균 작가의 북콘서트에 갔다. 고등학생 운동을 했고 현재는 과자 장사로 일하며 글을 쓰는 작가다. 사회에서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자기 몫을 하면서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의식할 때였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조카 손자를 돌보고 경제적·사회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은 저절로 써졌다. 고된 하루를 이겨내는 힘이었다. 일할 때도 글쓰기를 생각하며 정성을 다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누군가 출판을 제안했다.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가 출간됐다.

요양원에서는 1년 일했다. 온종일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장기요양보험 1급 환자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을 돌봤다. 자식들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길 때 죄책감을 가졌고 잘 오지 않았다. 3주만 못 봐도 부모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럴 때 가족들은 요양보호가 부족했다고 믿고 싶어진다. 막노동을 하는 한 아들은 출퇴근 하는 길에 어머니를 보러 왔다. 다른 노인들의 아이스크림까지 사가지고 와서 흥나는 타령을 부르고 갔다. 의사나 교수라고 하는 아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아내는 우측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요양원에 맡겼지만 여전히 가능한 한 떨어져 앉았다.

한 달 사이 두세 차례 죽음을 경험했다. 간식을 주러 갔더니 그사이 숨이 멈춘 노인도 있었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애써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정을 쏟던 노인이 사라졌는데 금세 그 침대에 새 사람이 누웠다. “요양원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던 노인들이 꽃 한 송이 자리에 두고 애도할 법한데 그런 식으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없다. 사람들이 동요한다는 이유였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소풍이 끝났네 하며 축하해주고, 죽음의 의식이 가벼워지면 될 일인데 아쉽다.” 보호자가 없어 쓸쓸하게 떠난 노인의 사진을 가져와 태우기도 했다.

요양보호사는 매 순간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시험받는 직업이다. 요양원에서는 욕창에 걸리지 않게 2시간마다 자세를 변경한다. 기저귀 케어를 하며 엉덩이에 로션을 바를 때가 좋았다. 누워만 있는 노인들에겐 유일하게 소통할 기회였다. 질 높은 돌봄을 위해,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뛰어다녔다. 진심이 우러나오는 서비스가 일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은주 작가는 삶에 맞춰 직업을 선택했다. 사정상 두 조카를 양육해야 했는데 번역 일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에 귀 기울이고 챙기는 데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 학습지 교사가 되었다. 이후에는 수입이 더 좋은 면세점에 다녔다. 어느 날 막내 조카의 피아노 학원 앞에 있는 노인센터에 방문해 목욕봉사를 시작한 걸 계기로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지금도 출근해서 노인을, 퇴근해서는 조카 손자를 돌본다.

19세 아이에게서 응원 글을 받은 적이 있다.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은데 주변에서 반대한다고 했다. 이은주씨의 어머니도 그에게 일본 유학까지 보냈는데 남의 똥이나 치우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말했다. 부모라면 응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걸 남기고 나쁜 건 도태될 수 있도록 돌봄이 전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 키울 때 부모 교육을 받듯이 부모 돌봄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는 노인들을 ‘뮤즈’와 ‘제우스’라고 칭한다. 삶의 전쟁터에서 혼신을 다해 살아낸 노인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가 되어 처음 임종을 지켜본 ‘뮤즈’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식탐이 많았다. 숨을 거두기 전날 그에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를 키워준 할머니도 손녀의 품에서 숨을 다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이은주 작가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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