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특수청소’가 직업인 김완씨는 지난 8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출간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는 왕왕 묘지 위에 세워지곤 했다. 약 1만80기가 묻힌 경기 일산공원묘지도 아파트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김완씨에게 이 묘지는 다른 의미로 각별하다.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실내에서 밥을 먹는 날은 눈 내리고 비 오는 날뿐이었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무덤 앞이 식탁이 되곤 했다. 인근 함바(현장 식당) 배달원으로 일한 김씨는 인부들이 설명하는 지형만 듣고도 어느 묘역인지 알았다. 경차 안에는 백반이 든 철가방이 도로 사정에 맞춰 달그락거리길 반복했다.

시(詩)는 밥이 되지 않았다. 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대학 시절 내내 최승호 시인의 문장을 쥐고 살았다. 죽음은 뿔과 같이 딱딱하고 뾰족하고 노려보고 속이 텅 빈 것이라고(‘뿔 돋친 벽’), 나는 죽어서 갈 그 무엇이 없어서 근심(‘우수’)이라는 구절 속에서 몇 번이고 기꺼이 길을 잃었다. 문필가로서의 삶은 어느 순간 깨끗이 접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글과 영 멀리 살 수도 없었다. 낮에는 각종 배달을, 밤에는 고스트라이터(대필 작가)로 생계를 이었다.

전업 작가가 되려 했던 적도 있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대관령 아래 작은 마을에 거처를 마련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젊은 사람이 드물었던 까닭에 녹색농촌마을사업팀에 불려 다녔다. 월 110만원을 받았다. 가로등 하나 보기 힘들었던 외진 시골 마을이 환해지면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농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밤에 불 들어오면 작물이 못 살아. 들깨가 다 죽는단 말이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녹색’은 ‘개발’의 다른 말이었다.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그즈음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씨에게 일본은 때로 물리적·심리적으로 서울보다 가까웠다. 출판 기획안 두 개를 만들어 출판사에 전달했다. 일본 빈티지 시장인 후루모노야(古物屋·고물상) 탐방기와 신예 아티스트 작업실 15곳을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이제 그 기획은 빛을 보기 힘들 거 같아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은 삶의 경로를 다시 한번 크게 틀어버렸다.

돌아온 한국에서 김씨는 몸을 움직인 만큼 변화가 확실한 일을 궁리했다. 좋아하는 청소를 업으로 연결해보자 싶었다. 청소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소문난 업자 밑에 가서 일도 배웠다.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청소업에 대한 편견 탓에 젊은 사람일수록 진득하지 못했다. 2012년 일반청소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성실함은 입소문으로 보답받았다. 지역 맘카페 회원 사이에 ‘쪽지’로 추천해주는 이사 청소업체가 됐다.

고객 문의에 응대하다 보니 청소 영역도 넓어졌다. 자살이나 고독사 현장, 범죄 현장, 쓰레기 집 등이 새로운 ‘고객’으로 추가됐다. 이른바 특수청소다. 특히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성공하는 비즈니스”이다. 다루는 장비와 도구, 약품도 달라졌다. 시취(屍臭)를 제거하는 살균 분사기, 피비린내나 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한 자외선 살균기 등은 부피도 무게도 만만치 않다. 주 고객은 유가족이 절반쯤이고, 집주인이나 부동산 중개업자 의뢰도 많다. ‘재산’을 원상 복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범죄 현장은 주로 검찰이나 경찰을 통해 의뢰받는다. 정부 주관 범죄피해자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김완 제공특수청소를 의뢰받은 고독사 현장.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혼자 죽었다

죽은 사람은 냄새로 자기소개를 대신한다. 묵은지, 액젓, 쥐포 1000마리쯤 구운 냄새…. 현장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여러 예시를 들어보지만, 그 어떤 걸로도 온전한 설명이 어렵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다. 시신은 이미 옮겨진 뒤지만,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됐던 바닥은 몸에서 나온 피와 기름막으로 덮여 있기 일쑤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수술용 장갑과 방호복, 이중으로 덧신는 신발 덮개, 방진 마스크 위에 겹쳐 쓴 방독 마스크는 김씨의 또 다른 피부나 마찬가지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혼자 죽었다.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물었다.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이는” 각종 고지서와 청구서가 유서를 대신해 빼곡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가 홀로 숨을 거둔 장소를 청소하며 김씨는 곧잘 제(祭)를 올리는 마음이 되곤 했다. 죽음의 현장이지만 삶의 흔적을 톺아보는 일이었다. 유품이나 쓰레기에는 당사자가 채 말하지 못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청소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생의 단편이 명치끝을 지긋하게 누를 때가 많았다. 빈칸이 더 많은 이력서, 구인광고가 실린 신문 쪼가리, 각종 처방전 그리고 몇 권의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 앞에서 김씨는 오래 서성였다. 모질게 쓸어 담기가 어려웠다. 그 마음이 글이 되었다. 김씨가 지난 8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추모도 그리움도 없이 사라진 이들을 위한 부고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을, 사연은 일부 각색 과정을 거쳤다.

김완씨는 자신의 일이 죽음학(Thana-tology) 연구의 실마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면 강연이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고독사는 제대로 된 공식 통계조차 없다. 김씨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사례는 통념을 반박한다. 고독사는 노인 세대만의 문제로 요약하기 어려웠다. 숨진 지 몇 개월 만에 발견되는 시신은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그래서 관련 연구자가 사례 수집차 연락이 올 때 가장 반갑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도 그렇게 만났다. 그 인연으로 2017년 서울시 고독사 TF 자문위원에도 합류했다.

“행정이 관심을 가지는 건 고무적이지만 이 문제를 ‘처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죽기 전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 차원에서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어요. 그러려면 이런 TF를 꾸릴 때 철학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꼭 드리거든요. 죽음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고독, 고립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접목돼야 합니다.”

김씨는 종종 의뢰가 들어오는 쓰레기 집이 고독사나 자살의 전조 증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 절박한 SOS를 해결할 때면 안도할 때가 많다. 도와달라는 말을 김씨는 ‘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물론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앞지른다. 꽉 막힌 변기에서 묵은 똥을 퍼낼 때나 오줌이 든 페트병이 줄 선 집안을 볼 때면 차라리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이 지경으로 살아야 했던 그 마음은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저장 강박증’은 때로 너무 단순한 설명이다. 김씨는 더 많은 연구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설립한 특수청소 업체는 직업윤리 중 하나로 ‘쓰레기로 의뢰인을 판단하지 않는다’를 내세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선언으로 남겼다. “좌우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을 내세우게 되니까(웃음). 제가 맞닥뜨린 현실이 어떤 의미인지 청소를 통해서 계속 생각해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엉망인 서랍이 한 칸쯤은 있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언두잉(undoing, 원상 복구) 작업이거든요. 자기계발 도그마가 만연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청소를 의뢰한 분들은 판단이 아니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저도 제 과거를 심판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지금과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것도요.”

ⓒ김완 제공오줌이 든 페트병이 가득 차 있는 화장실.

누구에게나 엉망인 서랍 한 칸은 있다  

특수청소 업무에는 연휴나 휴일이 따로 없다. 명절이면 일이 몰리기도 한다. 뒤늦은 죽음이 발견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구더기와의 전쟁이다. 죽은 자리에서 태어난 생명은 언제나 제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며 떼 지어 나타나 존재를 과시했다. 그래서 깨끗하고 온전한 죽음은 불가능했다.

뜻하지 않게 자살 직전의 사람을 살린 경험도 여러 번이다. 따져보면 분기별로 한 번씩은 꼭 있다. 첫 경험이 가장 강렬했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물어온 전화에 김씨는 “그런 방법은 없다”라고 단언한 후 통화를 이어나갔다. 대화 주제는 그 자신이다. ‘그럼에도 잘 안 풀린 내 인생’을, 오죽하면 죽은 사람 집을 치우는 일을 하겠느냐는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다. 경찰이 위치추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얼마 후 도착한 네 글자 메시지로 그이의 생을 확인했다. ‘나쁜 시키(새끼).’

일이 일인 만큼 범죄와 연관된 가능성이 있는지도 신중하게 탐색한다. 발신자 제한 전화는 받지 않는다. 의뢰를 받을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변사는 사인이 밝혀지기 전에 현장을 건드렸다간 증거인멸이 될 수 있다. 항상 묻는 질문은 ‘경찰의 허가를 받았는지’다. 확인과 재확인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필터링이 된다. 김씨가 밟는 꼼꼼한 절차에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면 그 이유로 마음이 서늘해지곤 한다.

일의 고단함은 피아노를 치는 일로 달랜다. 개인교습을 받은 지 4년 정도 됐다. 최근에는 재즈 피아노 기법 중 하나인 스트라이드(stride) 주법을 익히는 중이다.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 못다 한 추모를 이어간다. 이제는 고인이 된,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고단함을 헤아려본다.

김씨가 잠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음악 한 곡을 틀었다.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팻 메시니의 솔로 앨범 〈New Chautauqua〉(1979) 수록곡 중 하나인 ‘Hermitage’(은둔처)다. 아내에게 자신이 먼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당부했다. 신산한 삶과 한패나 다름없는 죽음 덕분에 생계를 이어왔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바로 은둔처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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