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질 높은 공공병원 확 늘려라
  •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 호수 621
  • 승인 2019.08.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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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 공공병원의 비율은 5.8%이다. 자료를 제출한 26개국 평균은 52.6%. 현 정부의 ‘공공의료 발전 종합대책’이 실현되도록 시민의 힘을 모을 때다.
ⓒ시사IN 이명익노인들이 안심하고 입원할 수 있는 공공 요양병원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다. 위는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의 한 병실 모습.

7월19일 보건복지부는 ‘OECD 통계로 보는 한국의 보건의료’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3개로 13.1개인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4.7개이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3.7%의 속도로 병상 수가 늘어났고, 특히 장기요양 병상은 연간 9.5%씩 늘어났다고 한다.

의료 이용 횟수도 많다.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6.6회나 된다. OECD 국가 중 1등이고, 회원국 평균인 7.1회보다 두 배 이상 높다. 2등인 일본의 12.6회와도 차이가 크다. 스웨덴이나 멕시코는 2.8회에 불과했다. 입원 환자가 병원에 머무는 기간이 평균 18.5일로 일본(28.2일) 다음이며, OECD 회원국 평균 8.2일에 비해 두 배 이상 길다. 이런 통계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에 의료기관이 넘쳐나고 국민은 그야말로 여한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넘쳐나는 병원들 속에서 의료 공백을 우려하고 ‘도무지 믿고 갈 곳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의료 공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대부분 중소도시, 농산어촌의 지역 언론 기사, 혹은 지역 시민단체나 주민이 직접 기고한 글들이 펼쳐진다. “지역 유일의 응급실 폐쇄” “지역 유일 종합병원 휴업으로 의료 공백” “○○의료원 의료진 몇 달째 공석” 같은 비슷비슷한 제목들과 함께 말이다. 일전에 참석했던 정신보건 관련 학회에서 한 토론자는 수도권 중심의 뉴스가 자신이 사는 곳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개탄했다. 모두 ‘탈원화(脫院化)’를 논하며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은 입원할 수 있는 병원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탈원화라는 말조차 사치라고 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지역의 병·의원들이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절대 부족만이 문제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2019년 5월 기준으로 서울 강남구에는 성형외과 의원이 398곳이나 되지만 가정의학과는 6곳에 불과하다. 주변에 의원은 넘쳐나지만, 배가 아프고 몸살에 걸린 보통의 환자들에게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9년부터 ‘장기요양 포상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 무슨 포상일까? 부당 청구를 하는 장기요양 기관을 신고하여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 이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지난 6월 심의에서는 역대 최고 금액인 1억7000만원이 신고 포상금으로 지급되었다. 부당 청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당 청구만이 아니다. 감염 같은 의료 서비스의 질 문제는 물론이고 낙상, 노인 학대, 화재 같은 안전사고, 시설 노동자 착취 문제에 이르기까지 요양병원과 연관된 부정적 뉴스들은 노인 당사자와 가족뿐 아니라, 미래에 노인이 될 모두를 심란하게 만든다.

표면으로는 의료자원의 지리적·내용적 불균형, 민간 의료기관의 관리 문제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취약한 공공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려는 국가전략의 광범위한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공공의료라고 하면 흔히 국·공립병원을 떠올리지만 공공성은 소유 주체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예, 아니요’ 방식으로 간단하게 판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유 주체만큼이나 공적 가치라는 내용적 측면,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절차 측면도 공공성의 주요 요소이다. 예컨대 국립대병원은 소유 주체 측면에서 분명히 공공병원이지만, 진료 행태나 운영 측면에서는 민간병원과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캐나다의 공공병원 중에는 국가 소유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 복무해온 종교 기반 조직이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공공보건의료라고 정의했다. 사실 ‘공공’이 반드시 앞에 붙지 않아도 건강권 차원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내용들이다. 공공성이 소유 주체만의 이슈는 아니라지만, 일단 공공병원의 수가 너무 적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배포한 OECD 통계 분석 자료는 중요한 부분을 다루지 않았다. 바로 공공 병상 수준이다.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자료를 제출한 26개국 평균 52.6%의 10분의 1에 불과한 압도적 꼴찌다. 가장 시장적 의료체계라는 미국(24.8%)보다 적고, 꼴찌에서 두 번째인 일본(18.2%)과도 차이가 크다. 전체 병상 수 중 공공병원의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이 비율 역시 10.3%로 압도적 꼴찌이며, 자료를 제출한 28개국 평균 71.6%에 비하면 비교 자체가 부끄럽다.

우리 사회에서는 병원이라 하면 으레 민간병원이 표준이고, 지방의료원으로 대표되는 공공병원은 저소득층이나 이용하는 곳, 민간병원이 없을 때만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안전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은 굉장히 예외에 속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민간 부문이 이토록 비대해진 것은 민간병원에 대한 적극적 국가정책 혹은 공공병원에 대한 정책 부재의 산물로 보는 게 합당하다.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면서 의료 이용의 경제적 접근성이 나아지고 의료 수요가 늘어났지만, 정부는 이를 충족시킬 보건의료 공급을 민간에 의존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1960년대만 해도 50%가 안 되던 민간 병상 비중은 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된 1977년에 처음으로 60%를 넘어섰고 건강보험 적용이 전국으로 확대되던 1990년대 초반에는 85%에 이르게 되었다. 정부는 이 기간에 장비 지원, 차관이나 융자 알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민간기관 설립을 지원해왔다.

ⓒ시사IN 이명익2013년 5월29일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발표하자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등이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던 공공병원 

반면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공공병원의 쇠퇴는 일견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랐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저투자는 공공의료를 양과 질 측면에서 악화시키고, 그 결과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이는 다시 투자를 더욱 축소하거나 아예 병원을 폐업하는 좋은 근거가 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진주의료원도 적자 누적과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결국 문을 닫았다.  

이렇게 공공병원의 숫자가 적고 보건의료계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미미하다 보니, 지역 간 의료자원의 불균형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공공성이 높은 국가정책을 집행하는 데에도, 민간병원들을 선도하는 데에도 역부족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을 떠올려보자. 음압병실로 상징되는 격리병동은 유행 통제와 환자 진료에 핵심적 기능을 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것은 병원 수익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민간병원들은 이러한 시설을 제대로 구비하지 않았고, 재벌을 모기업으로 하는 삼성서울병원조차 정식 음압격리병상을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정부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민간병원에 협조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정부 방역 체계에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메르스 환자 진료는 거의 공공의료 체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숫자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평소에 공공병원에 의존하던 이들, 주로 저소득 계층이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공공병원들이 메르스 진료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입원 환자들은 급하게 병원을 옮겨야 했다. 당시 이들 환자를 도왔던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한 세 분은 병원비 때문에 집으로 모셨어요. 세 분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민간병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연락이 안 되던 가족, 지인들의 집으로 퇴원했습니다.” 공공의료에 대한 오랜 저투자로 발생한 문제는 결국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전가된다. 의료원을 이용하던 기초생활수급자, 응급실이 사라진 농촌 주민, 돈벌이에 혈안이 된 민간 요양병원에 의탁해야 하는 노인과 그 가족들처럼 말이다.  

공공병원이 워낙 소수이다 보니 민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커녕, 시장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환경 속에서 공공병원마저 비슷한 행태에 빠져들기도 한다. 4년 전, 공공병원에 대한 연구 때문에 내가 만났던 한 의사는 오랫동안 지방 의료원에서 일해왔고, 환자를 소신껏 진료한다는 자부심이 굉장히 큰 이였다. 하지만 매출 압박을 이야기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요즘은 주계(週計)를 냅니다. 월계(月計)도 아니고, 과장들 수입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에…. 뭐 외래 환자 몇 명이고 입원 환자 몇 명이고 수입이 얼마고 이걸 주계를 낼 정도니까. 원장님은 적정 진료를 하라고 하면서도 돈도 벌라고 하고. 굉장히 이율배반적이죠. 그런데 나도 진료하는 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더라고요. 나는 절대로 그런 의사라고 생각 안 했는데, 작년 대비 올해 건당 진료비 단가가 올라가는 거예요. 아, 나도 그렇구나… 그런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공공병원 수가 절대적으로 적고, 민간 종합병원들에 비해 시설장비도 낙후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공공병원에 갖는 긍정적 경험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공공의료 확대나 강화가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럼 잠깐 시선을 돌려 유치원을 생각해보자. 유아교육 분야도 민간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보건의료 분야만큼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전국 유치원 중 53.2%가 국공립 시설이며 등록 원아 수도 전체의 25.5%를 차지한다. 특별히 사교육에 몰입하는 학부모가 아닌 이상 국공립 시설에 대한 선호는 뚜렷하다.

국공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확충은 선거 단골 공약이기도 하다. 국공립 유치원의 관리자들이 특별히 청렴해서? 교육철학이 뛰어나서? 아니다.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알든 모르든, 공공성의 특징에 해당하는 그 무엇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 부담금이 적고, 안정적인 양질의 교사 인력이 보장되며, 재정 운용과 관리가 투명할 것이라는 기대. 최소한 ‘원장 맘대로’ ‘급식비를 빼돌리는’ ‘친인척을 채용해서’ 등 말도 안 되는 전횡은 없으리라는 기대 말이다. 이는 공공 유아교육 체계에 대해 (완전히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닐지라도) 국가가 제대로 투자하고 관리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00%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공공기관이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질적 표준을 준수하다 보니 공공성이 높은 정책을 집행하기도 상대적으로 쉽고, 민간 시설들을 견인하는 효과도 크다.

이렇게 공공과 경쟁하는 환경에서는 민간도 막 나가기 어렵다. 지난해 알려진 사립유치원 비리와 그에 대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적반하장식 대응은 왜 국공립 유치원이 더 늘어나야 하는지,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시민들이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만일 국공립 유치원을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면, 사립유치원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거나 이 상황에 대해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고, 어린이의 돌봄과 교육의 권리가 보장되는 공간이 공공적으로 운영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공공성의 중요성은 결코 덜하지 않다. 문 닫겠다는 민간병원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고발자들에게 포상금까지 줘가면서 민간 기관들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직접 나서서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민간 부문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공공의료 확대는 정책 문제 아닌 정치 문제

모든 병원을 즉각 국·공립으로 전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계 질량(critical mass)’, 여전히 모호하다면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미국만큼이라도 공공병원을 확보해야 한다. 병상 수와 의료 이용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국가에서, 누군가는 주변에 병원이 없어서, 또는 믿고 갈 만한 병원이 없어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현재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동시에 들려온다. 좋은 소식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공공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지역 격차 해소, 필수 의료의 보장, 공공 보건의료 인력 양성과 역량 강화, 거버넌스 체계 같은 공공의료 전반의 개혁 전략이 폭넓게 망라되어 있다. 나쁜 소식은 종합대책 발표 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를 현실로 만들어줄 구체적인 후속 대책들이 실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 ‘정책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이다.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국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체질 전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의 지식이나 기술 관료의 유능함이 아니라 시민의 힘인데, 아직까지는 목소리가 모이지 않고 있다.  

내 부모가 혹은 내가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중 어디를 고를 것인가? 법과 표준을 준수하고, 행정과 회계가 상대적으로 투명하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도 더 나은 곳을 고를 것이다. 문제가 발생해도 감사를 통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할 가능성이 더 높은 곳을 고를 것이다. 나이가 들어 귀촌을 결심했다면,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이 가까운 동네 중 어디를 택할 것인가? 최소한 매출이 줄어든다고 응급실을 폐쇄하거나 아예 병원 문을 닫아버릴 가능성은 낮은 곳을 택할 것이다.

간단한 건강 문제에도 최고의 종합병원을 아무 때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라면 모를까, 공공병원을 늘리고 그 질을 높이는 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 특히 비수도권 주민에게는 안전장치이자 생명보험이다. 내가 단골로 이용하는 병원이 민간병원이라 해도 이는 여전히 중요하다. 튼튼하고 신뢰받는 공공병원의 존재야말로 민간병원들을 더욱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공공의료 개혁의 갈림길에서, 시민들의 관심과 더 큰 목소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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