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돌보는 삶
  •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 호수 639
  • 승인 2019.12.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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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켈 그림

피부과는 피부관리 상품을, 산부인과는 질 성형 상품을, 치과는 교정과 미백 상품을 팔아 돈을 버는 사회에서 내 몸 곳곳에 염증이 난다고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는 의사와 병원은 없었다. 한두 번의 병원 방문으로 다 해결할 수 없는 궁금증과 병원에 또 가기는 싫은 자잘한 증상이 남을 때면 검색 엔진을 돌렸다. 아플 때 신뢰 속에 적정 의료를 권하는 의사와 의료기관이 없는 환경에서 지내는 건 아픈 몸을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잃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는 몸을 쓰고 돌보는 경험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살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해 주치의처럼 믿을 수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난 것이 한몫했다. 몇 주일 전에는 ‘인바디’를 재고 건강보조식품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최근 운동을 시작했는데, 몸의 이런저런 증상을 감지하며 어떤 게 좋은 컨디션인지, 그게 나의 업무 효율과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 그러다가 만성 안구건조 증상에 관심이 닿았다. 몇 년 전 라섹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하려고 눈에 종이를 붙이는 검사를 받고 나서야 기상 후 눈이 잘 안 떠지던 그 증상이 안구건조증인 줄 알았다. 수술하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미용에 더 큰 관심이 있던 당시에는 그냥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얼마간 관찰해보니, 아침에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안구 건조의 느낌은 내가 가뿐한 기상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이 증상을 개선하면 삶이 훨씬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구 건조에 좋은 건강보조식품을 먹어보려고 검색해봤다. 오메가3가 좋다는 얘기가 떠돌아다녔다. 그 정보가 정확한지 물어보려고 병원을 찾은 것이다.

“오메가3를 복용하면 건조한 눈이 나아질까요?”로 시작해 인바디 결과에서 나온 체수분 부족 수치,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습관,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종일 들여다보는 업무 패턴, 불규칙하고 부족한 수면에 대한 얘기까지 줄줄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 보는 시간을 줄이고, 잠을 충분히 자며, 물 많이 마시고, 눈을 온찜질하고 마사지하기를 근본 대책으로 제시했다. 건강보조식품을 먹기 전에 식품으로 충분히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며, 생협에서 들깻가루를 사다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사실 현대인에게 생활습관은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바꾸기 어렵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 즉 스트레스를 줄이고, 잠을 충분히 자며, 물을 많이 마시고,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운동하라는 얘기를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누가 몰라서 그래?” 하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홍삼정과 한약을 사다 먹는다.

의사가 나를 호구 잡을지 모른다는 공포

과거의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자기 몸을 소외시키고 몰아붙이며 살아가는 삶에 너무 익숙했다. 우리는 지당한 말을 하지만 내게 와닿지 않는 말을 하는 의학 전문 칼럼니스트, 건강에 대한 위협을 팔아 돈을 버는 의약품 회사, 몸을 곧 획일적인 미의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부추기는 성형외과·피부과· 헬스장 광고,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환경, 나를 돌보지 않는 주변인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런 내 몸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으로 대하며 기꺼이 돌보는 의사와 병원이 거의 없다.

‘저 병원에 가면 의사가 나를 호구 잡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의료기관에 가는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나를 인간으로 대해주고 진심으로 내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의사로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의료 경험을 질 좋게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점점 나를 돌보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왔다. 내게 참 좋은 병원은 한 달에 1만원 조합비를 내는 곳 이상으로 의미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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