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기 어려운 나라
  • 장일호 기자
  • 호수 625
  • 승인 2019.09.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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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존엄한 죽음’이 가능한지, 존엄한 죽음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무엇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센터에서 살펴보았다.
ⓒ시사IN 신선영

오래 살지만 건강하게 살지는 못한다. 보건복지부의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7년 기준 82.7세다. 현재 83세인 노인이 태어난 시기인 1936년 기대수명이 42.6세였음을 감안하면 두 배 정도 늘었다. 당시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미래다. 기대수명보다 눈여겨봐야 할 건 건강수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건강을 잃은 기간을 뺀 연령을 건강수명으로 정의한다. WHO는 한국인의 건강수명을 2016년 기준 73세로 보고하고 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가 10년쯤 된다. 생애 마지막 10년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보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2019년 7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78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1%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노인 인구는 2030년 25%(1298만명), 2060년 43.9%(1881만명)로 늘어난다. 길어진 생애 말 풍경은 스산하다. 노인 의료비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8년 기준 전체 의료비 지출 규모의 40.9%(31조 7514억원)를 차지한다. 보건복지부가 2013~2017년 발생한 자살 사망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65세 이상 노인은 신체 건강 문제로 인한 자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신체 건강을 이유로 한 노인 자살은 모든 지역에서 40% 이상 수치를 보였다.

이처럼 현대 의학은 ‘성공의 실패(failures of success)’를 반복하고 있다. 의료제도 선진화가 사망률을 낮췄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만성질환 역시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됐다. 선진화된 보건체계의 우선순위가 건강이 아닌 수명 연장이 되면서 삶의 질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모양새다(34~37쪽 기사 참조). “병상에 누워 하루 뒤에 맞이할 임종을 한 달 뒤로 미뤄놓은 뒤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존 릴런드, <나이 드는 맛>, 2018).”

호스피스·완화 의료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까지를 ‘의학적 돌봄’ 대상에 포함시키는 의료 행위의 한 종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적극적 치료는 하지 않는다. 환자의 통증 및 증상 완화를 통해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마련하고 임종 과정에서 고통이 덜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급성기 병동에서는 환자 상태를 ‘완치’와 ‘정상 수치’로 맞추는 걸 목표로 하지만, 호스피스·완화 의료 병동에서는 개별 환자 컨디션에 맞춘 치료가 가능하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를 기본으로 한 호스피스팀(Palliative Care Team)은 성직자·자원봉사자까지 포함해 다학제로 구성된다. 치료 외에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각종 사회제도를 연결해주고, 사별 가족 모임을 지원하며, 심리적·사회적 돌봄 제공까지 나아간다. 물론 어디까지나 잘 운영되는 일부 병원에서 가능한 얘기다.

ⓒ시사IN 신선영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팀 전문 간호사(왼쪽)가 보호자와 상담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호스피스·완화 의료는 낯설다. 일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호스피스가 논의되긴 했지만, 제도로 도입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팔소매를 걷어붙인 건 2008년이었다.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을 지정, 시범 운영했지만 간병 돌봄을 포함해 많게는 월 1500만원에 이르는 병원비 탓에 경제적 자원이 많은 계층이 아니면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가 보편적 의료 형태로 들어온 건 2015년 7월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전면 적용되면서 비급여 항목 대부분이 사라졌다. 보호자가 말기 환자를 심리적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도록 환자의 신체적 수발을 담당하는 ‘호스피스 보조활동인력’이라는 간병 서비스 역시 건강보험에 포함됐다. 그 덕분에 간병비를 포함해도 월 60만~70만원가량으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졌다. 다만 호스피스 보조활동인력은 도입 당시 일부 관련 기관 반대로 현재 절반 정도 기관에서만 적용된다. 입원치료비는 낮아졌지만 병원에 따라 수백만원에 이르는 간병비는 여전히 가족 부담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 1375개 운영 중

2019년 4월 기준 입원형 호스피스는 85개 기관 1375개 병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방문 진료 형태인 가정형 호스피스는 38개 기관, 병동은 없지만 호스피스 팀이 있는 자문형은 26개 기관에서 시행 중이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요양병원 14곳에서도 171개 병상을 운영 중이다. 환자 수에 비해 병상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기준 호스피스·완화 의료 대상 질환 사망자는 8만6593명이었지만,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1만7333명으로 대상자의 20%뿐이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연령대는 65세 이상 노인이 66.7%로 가장 높다. 김대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장(가정의학과 교수)은 “노인의 존엄한 생애 말기를 위해 호스피스는 현재로서 최선의 제도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운 좋은’ 일부에게만 열려 있는 문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센터는 국내에서도 드물게 입원형·가정형·자문형 호스피스 모두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상급 종합병원이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존엄한’ 죽음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무엇이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노인의 생애 마지막 풍경은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이들에게 가보지 않은 길의 지도가 되어준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불길하고 금기시되는 문화 속에서 노인들 역시 준비 없이 생의 마지막을 맞닥뜨린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힌트를 준다. 한 사람이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은 한 사회의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센터 병상 수는 17개로 대개 만실이다. 8월23일 오전 8시, 입원 환자와 보호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하는 팀 회의를 마친 김현경 간호사는 서류를 챙겨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소화기내과 급성기 병동에서 호스피스 안내를 원하는 보호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터였다.

폐암 말기로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이종호씨(90·가명)의 담당 의사는 전날 보호자들에게 ‘준비’를 부탁했다. 차마 얼마나 남았느냐고 직접적으로 묻지 못한 가족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중환자실로 가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호흡곤란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둘째 딸 이경애씨(59)를 비롯한 형제들은 연명치료 중단과 호스피스 돌봄을 선택했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동의서를 쓰는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마음으로 알고 있던 거랑 다르네요.” 상담을 진행하던 김 간호사가 익숙한 듯 이씨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건넸다.

이씨의 언니는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아버지가 건강하던 시절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우리 아버지가 엄청 멋있는 분이시거든….” 그 역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이게 내 미래고, 우리의 미래잖아요.” 전쟁 통에서도 자기 힘으로 대학 공부를 마친 아버지, 은퇴 후 가족과 함께 간 유럽 여행에서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걷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를 딸에게 알려줬던 다정한 아버지의 삶이 동의서 한 장으로 요약되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날 때까지 이종호씨는 기존 병실에서 담당 의사와 호스피스 팀 케어를 동시에 받게 된다.

ⓒ시사IN 신선영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팀이 아침 회진을 돌고 있다.

환자 당사자가 아닌 의료진과 보호자의 결정으로 호스피스·완화 의료 과정에 들어선 이씨 사례는 전형적이다. 이씨처럼 90세 이상 초고령자일수록 환자 상태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도로 나빠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한국 의료 시스템은 환자 당사자가 치료와 관련해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시점까지 치료를 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018년 2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된 5만8393건 중 34.7%만이 환자와 가족 모두가 합의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그나마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시설이라면 연명의료 중단의 핵심인 ‘함께하는 의사 결정’ 과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의료진도 아직까지 호스피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허다해요. 말기암 환자의 경우 항암치료가 오히려 몸에 해롭기 때문에 완화 의료가 필요하고 호스피스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정도만 돼도 훌륭하다고 해야 할까. 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 하실 거예요? 안 할 거면 더 이상 병원에 안 와도 됩니다’ 정도에서 멈추거든요. 그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던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대책없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상황인 거죠.” 그래도 김대균 센터장은 변화를 느낀다. 2005년쯤만 해도 호스피스·완화 의료 학회에 가면 참석하는 의사가 20여 명에 불과했다. 건강보험 도입 후부터는 300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위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윤순애씨(51·가명)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50년 넘게 미용실을 운영하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대신해 삼형제를 길렀던 엄마의 씩씩한 삶을 그제야 돌아봤다. 온가족을 모아 생전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임종 때 갈아입힐 고운 한복과 고급 수의를 엄마와 함께 골랐다. 언제든 들고 나갈 수 있도록 검은색 양복과 양말까지 챙겨 가방도 만들어뒀다. 어머니 박정자씨(76·가명)는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 전까지 이 과정을 함께하며 아픈 몸으로 10개월을 버텨줬다.

한국인 76.2%, 의료기관에서 사망

하지만 윤씨는 병원에 와서야 정작 묻지 못한 게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양복이나 양말 같은 건 안 챙겨놔도 닥치면 장례 치를 수 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닷새 전에 섬망(환각·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나는 상태)이 왔는데 섬망 오면 오래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정신이 있을 때 물어봤어야 하는 걸 못 물어봤어요. 집에 가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어디서 죽고 싶었을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사망한 한국인 76.2%는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도 압도적 1위다. 2위인 프랑스가 57%이며 OECD 나머지 국가는 50%대를 밑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4년 1500명을 대상으로 임종 희망 장소를 조사했을 때 57.2%가 집에서 죽기를 희망했다. 병원 등 의료기관을 선택한 비율은 16.3%밖에 되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8월23일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 의료 병실에서 음악치료사가 신청곡을 들려주자 김상업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때문에 주 1~3회 호스피스 팀이 직접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 호스피스가 대안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2015년부터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가정 호스피스는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김대균 센터장도 환자가 익숙한 곳에서 완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가정 호스피스를 가장 좋은 대안으로 여긴다. “아무리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한다고 한들 병원에서는 절대 존엄하게 죽을 수 없어요. 기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잖아요. 어르신들도 다 알아요. 그런데 집에 가면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가정 호스피스를 강조하면 여성 경력단절을 강요하는 게 돼버려요. 남녀 임금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집에 환자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여성이 일을 그만두거든요. 숱합니다, 보호자가 대부분 딸이에요. 가정 호스피스도 대안을 만들면서 그 가치를 강조해야 합니다.”

많은 호스피스 병원이 1인실 위주로 운영하는 까닭도 그 편이 그나마 ‘집’과 가까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야말로 존엄과 밀접한 문제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학계에서도 1인실과 다인실 중에 어떤 방식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더 도움이 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환자와 고립되는 집보다는 병실을 선호한다.

호스피스 병동은 대개 기대여명이 3~6개월 남은 말기 환자들이 오는 것이 이상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임종기 환자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호스피스 병실에 머무는 평균 기간이 20.1일로 짧은 편이다. 의료진도 보호자도 환자도 의료에 대한 ‘맹신’이 강한 탓에 호스피스에 오는 시기가 늦어진다. 그 짧은 시간에도 보호자들은 쉽게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윤순애씨는 가족보다 이름도 모르는 ‘남’이 더 낫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고 했다. 보호자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 역시 다른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차별이잖아요. 저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 진짜 많이 알아봤거든요. 병원마다 ‘레벨’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웠어요. 다인실이 처음 입원할 때는 조금 걸렸는데, 예상치 못한 장점이 있었어요. 환자랑 단둘이 고립되는 것보다 병실에서 다른 보호자들하고 대화도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 점이 저한테는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돼요.”

김대균 센터장은 한국 노인들에게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외국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말한다. 외국은 대개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를 1순위로 꼽는 반면, 한국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싶다’를 제일 우선으로 꼽는다. 김 센터장은 사전연명의료계획서 제도가 시행 1년6개월 만에 22만명이나 서명한 데에 이런 까닭도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OECD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5.7%로 전 세계 1위예요.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인 존엄한 죽음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루 중 대부분이 고요한 호스피스·완화 의료센터도 하루 한 시간 정도는 활기를 띤다. 치료 과정 중 하나로 음악·미술·원예 요법을 위해 외부에서 방문하는 강사들이 매일 돌아가며 환자와 보호자 대상 프로그램을 연다. 8월23일 오전에는 음악치료사 한영섭씨가 방문했다. 사회복지사인 원가빈·김데레사 씨가 환자 명단을 뽑아 한씨에게 환자 상태 브리핑을 먼저 했다. 한씨는 익숙하게 우쿨렐레를 조율하며 명단에 없는 환자의 안부를 읊었다. “김○○님은 퇴원하신 거죠? 아니야? 아이고, 돌아가셨구나….”

한씨가 제일 먼저 방문한 병실은 폐암 말기 환자인 김상업(82) 할아버지가 있는 곳이었다. 한씨가 들어서자 김 할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누긋해졌다. 지난번 방문 때는 할아버지의 고향을 파악한 한씨가 이번에는 보호자인 할머니와 결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느냐고 물었다. 천천히 “60년 됐지”라고 입을 떼는 김 할아버지에게 아내인 조상옥(81·가명) 할머니가 “아이고 거짓말한다, 우리 57년 됐거든!” 받아치며 웃음을 끌어냈다.

장난기 섞인 조 할머니의 타박은 계속됐다. 결혼식 당일 밤에야 처음으로 얼굴을 봤다는 말, 57년 중 30년은 김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자네들은 다 모를 거라는 말, 아이 넷 키우면서 쌀이며 간장이며 똑 떨어져 월급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월급봉투 들고 사라졌다는 말끝에는 그래도 말년에는 같이 ‘관광’ 타고 놀러 다니며 즐거웠다는 진심이 보태졌다. 김 할아버지는 “내 곁에서 욕 많이 봤다”라며 웃었다.

한씨가 ‘꿈꾸는 백마강’과 ‘번지 없는 주막’을 연달아 부르기 시작하자 힘겹게 따라 부르던 김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거 영감이 엄청 좋아하는 노래거든. 작년만 해도 노래방 가면 짱짱했는데 이제는 부르기 힘들어서 그런갑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내며 연신 ‘괜찮다’고 등을 두드렸다. 김 할아버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22일을 머물다가 8월26일 가족 곁에서 임종했다. 8월23일 취재팀이 찍은 사진은 마지막 가족사진이 되었다. 임종은 아무리 준비해도 쉽지 않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조 할머니는 애써 담담했다. “거 아픈 거 다 내다버리고 좋은 데 가서 잘살고 있어요. 내는 오래오래 살다 따라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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