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길씨(77·대구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는 기록사진 연구가다. 8·15 광복절, 정씨는 40여 년간 수집해온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관련 사진 자료를 들고 〈시사IN〉 편집국을 찾았다. 정씨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련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한 때는 1974년이다. 독일에 출장을 간 그는 베를린 도서관에 소장된 희귀 기록사진을 발견했다. 구한말 조선의 풍물사진과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프랑스·영국으로 사진 수집 범위를 넓혔다.
당시 조선과 일본에 파견된 유럽 각국 선교사 또는 군 장교의 카메라에 담긴 흑백사진이 적지 않았다. 수집한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고 사진집도 냈다. “영국 군인의 눈에 비친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관련 사진은 그동안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희귀 사진이라 소중히 보관해왔다.”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요코하마 등 간토 지역에서 7.9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다. 사망자 10만여 명, 부상자 5만여 명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내렸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방화와 강간을 저지른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 따위 유언비어가 퍼졌다. 일본 전역에 불안이 고조되면서 광기가 난무했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는 일본 현지에 비밀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선인 학살을 확인한 임정은 외무대신 조소앙 명의로 일본 총리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일본은 물론 묵살했다. 당시 〈독립신문〉은 조선인 피학살자 수가 6661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보도했다. 1924년 3월 독일 외무부 문서는 조선인 피학살자 수를 2만3058명으로 기록했다.
일제는 조선인 시신을 암매장하거나 화장하고 언론에 보도 금지령을 내렸다. 군대와 경찰이 저지른 학살을 은폐한 뒤, 흥분한 민간인 자경단 소행으로 돌렸다. 조선인 학살 사건은 모조리 ‘자경단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자행한 민간인 단순 범죄’로 처리되었다. 조선인 학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자경단원도 대부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군대와 경찰의 조선인 학살 은폐
하지만 학살 현장을 목격한 양심적 일본인들의 입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일본 패망 뒤 그들이 증언에 나서면서 부분적으로나마 학살의 참상이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희생된 조선인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도 세워졌다. 전후 일본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도 간토대지진을 설명하면서 ‘조선인 수천명이 군경과 자경단에 학살당했다’는 내용이 수록됐다.
하지만 아베 정부 이후 간토대지진 때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NHK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요코하마시 교육위원회는 중학생용 부교재에서 ‘군대와 경찰이 조선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대신 ‘학살’을 ‘살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2019년 3월26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도쿄서적은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라고만 적었다.
한국 정부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 둔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임정은 사건 당시 실사를 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이를 제대로 조사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은 진상규명을 위한 기회였지만, 포괄적인 청구권협정 타결을 밀어붙이는 일본 앞에서 박정희 정부는 간토 대학살을 언급하지 않았다.
2006년 한·일 시민단체 대표가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신청했다.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였다. 진화위는 일본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조사 권한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간토 대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와 해결의 길은 또다시 좌절됐다.
정성길 관장은 2013년부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진 전시회를 열고 위령탑 건립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만행이 담긴 사진을 모아 〈일제침략시대〉를 펴냈다. 그는 “우리가 외교적으로 엄중히 대응해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기록이 부족하면 결국 외교 마찰로 끝날 뿐이다”라고 말했다. 역사 사진과 영상기록 수집 및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얼마나 아는지도 조사했다. “중고생 대부분이 모른다고 했다. 혹은 1930년대 말 일제가 간도 거주 조선인을 상대로 벌인 학살인 ‘간도 사건’과 혼동했다.”
정 관장은 조선인 대학살 위령탑 건립에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부와 위안부 합의 및 강제징용 재판 거래를 물밑에서 추진하던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국회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제19대 국회에서 유기홍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도해 여야 의원 103명의 서명을 받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해둔 상태였다. “정부에 간토대지진 학살에 대한 별다른 자료가 없다 보니, (유 의원 쪽에서) 내가 그동안 수집한 희귀 사진 자료를 매우 반가워했다. 그런데 20대 총선에서 대표 발의자인 유기홍 의원이 낙선해, 국회에서 이 법안에 다시 불씨를 살릴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정부가 하지 못하면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독일 총리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추모비에서 묵념하는 것처럼 일본 총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위령탑 앞에서 추모하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2014년 3월 일본 작가 가토 나오키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책을 냈다. 〈9월, 도쿄의 길 위에서〉라는 제목이다. 가토 작가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도쿄에서 혐한 시위대가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일본에 불복종하는 조선인)’이라는 글자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도로에서 ‘조선인을 죽이자’는 말이 나온 것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이후 요즘이 처음이다. 과거와 현재가 직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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