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진실 쫓는 21세기 독립군
  • 정희상 기자
  • 호수 630
  • 승인 2019.10.18 15: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성희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진상규명회 전재진 대표(63)는 주변에서 ‘21세기 독립군’으로 불린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우키시마호 사건 진상규명이라는 한우물만 팠다.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우키시마호>를 제작한 김진홍 감독은 “그가 없었다면 영화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키시마호 생존자와 부상자들은 현재 대부분 사망했다. 그들의 생전 모습과 육성 증언이 스크린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전씨의 기록 덕분이다.

25년 전 전씨는 당시 8㎜ 캠코더를 들고 우키시마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생존자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충북 영동에서 전남 영암으로, 다시 부산과 창원 등지를 돌며 모두 82명의 우키시마호 생존자와 부상자를 찾아냈다. 폭침 현장과 강제징용에 대한 그들의 증언이 캠코더에 담겼다. 아마추어 촬영가인 그가 제작했으니 화질은 조잡하고 열악했지만 보존 가치가 높은 귀한 사료였다. “우키시마호 피해자들이 대부분 돌아가시자 독립기념관 연구원들이 찾아와 자료를 기증해달라고 부탁했다. 동영상 104컷은 그때부터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넘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키시마호> 주인공은 바로 그 동영상 속 인물들이다.

전재진 대표는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의 직접 피해자나 유족은 아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우키시마호 참사에 몰두한 데는 사연이 있었다. 반핵·평화운동가였던 전씨는 1992년 일본의 우라늄 핵발전소가 있는 로카쇼무라에서 아시아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연 반핵평화포럼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나온 일본 시모키타 지방 향토사학자 사이토 사쿠지 씨가 우키시마호 참사에 대한 조사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이거구나. 침략전쟁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사죄와 보상을 받으려면 감춰진 이 사건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씨는 피해자들과 함께 진상규명회를 꾸렸다. 일본에 남아 있는 우키시마호 참사 관련 자료를 국내에 소개하고, 사이토 사쿠지 씨를 초대해 국내 피해자들과 진상규명 대회를 열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미군 기뢰에 의해 우발적으로 폭침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재진 대표는 우키시마호 참사의 진실은 ‘일본 대본영의 고의 폭침’과 ‘미군정의 진상 은폐 방조’라고 주장한다. 전 대표는 이를 뒷받침하는 일본 해군 승선자들의 증언도 확보했고, 그들을 국내에 초대해 증언 대회도 열었다. 전 대표는 우키시마호 참사 관련 조사 자료집을 만들어 정부에도 제공했다. 2003년에는 평양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국제 포럼을 개최하면서 전재진 대표를 초청했다. “방북해보니 우키시마호를 다룬 영화 <살아 있는 영혼들>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방영해 북한 주민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재진 대표에게는 아직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역대 정부는 이 사건을 외면했다. 정부는 수중에 방치된 유해를 조사하고 수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