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잡을 가능성을 보아서 행동 강령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행동 강령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가 남겼다는 이 말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비그포르스는 20세기 스웨덴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설계한 핵심 인물이다. 보수파는 시장의 자연치유를 기다리고,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그날을 기다릴 때, 비그포르스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 결론이 ‘잠정적 유토피아’였다. 비그포르스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을 대중 앞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구체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실현 가능한 형태로. 그래서 ‘잠정적 유토피아’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 비그포르스가 그 시대의 과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해갔는지 추적한 책이다. 비그포르스는 경제학자로 공식 훈련받은 적은 없지만, 경제학 지식을 꾸준히 축적하며 대안적 경제 이론을 발전시킨다. 대공황 직후, 비그포르스의 사민당은 국가가 산업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나라 살림의 계획’을 경제 강령으로 제시해 집권에 성공한다. 의회 과반수가 안 되자 농민당과 연합해 안정적 정치 기반을 마련한다.
스웨덴 노총(LO)은 생산성 증대와 산업합리화에 협조한다. 동시에 산업 간, 기업 간 임금격차가 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앞장서서 ‘연대임금 정책’을 추진한다. 자본도 이에 협력한다. 이로써 “빈곤이나 소득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안에서 해결되고, 복지는 (중략) 인생에서의 선택과 자유를 극대화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기능”하는 스웨덴 모델이 틀을 갖춰간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에도 절실한 ‘잠정적 유토피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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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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