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부키 펴냄

야코프 푸거(1459~1525), 16세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를 기반으로 활약한 거상(巨商)이자 르네상스 시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나 교황을 돈으로 겁박할 수 있었고 유럽 정치사의 주요 국면마다 유동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았다.

종교혁명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1514년, 베를린 근방을 다스리던 알브레히트는 푸거로부터 돈을 빌린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마인츠 주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알브레히트는 푸거에게 갚을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묘안을 떠올린다. 바로 면죄부였다.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 역시 이 아이디어를 환영하며 성베드로 대성당 건설 기금 명목으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다.

이후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며 종교개혁이 촉발되었고 유럽이 격랑에 휩쓸렸다. 권력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야코프 푸거의 나비효과였다. 이 밖에도 푸거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성장, 농민전쟁 등 역사적인 현장에서 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오죽했으면 당시 마르틴 루터가 “푸거에게 재갈을 물려야 한다”라고 주장했을까.

평민 출신으로 당시 유럽에서 이만한 힘을 가진 인물은 흔치 않았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야코프 푸거라는 인물이 갖는 양면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적극적으로 정치권력을 이용했으며 비정한 자본가의 면모를 보여준 동시에 당시 유럽에서 각종 상업 혁신(회계와 금융)을 일궈내고 신분에 얽매이지 않은 진취적 인물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독일 지사의 책임을 맡기도 했던 저자는 독일 이외 지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이 인물의 삶을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역사와 초기 자본가의 성장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