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로서 쓴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
  • 임지영 기자
  • 호수 616
  • 승인 2019.07.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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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으로 세계적 권위를 가진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선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최돈미 시인이 번역했다.
“땡스 돈미.” 김혜순 시인이 가장 먼저 찾은 이름은 최돈미, 자기 시를 번역한 번역가이자 시인이었다. 6월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그리핀 시문학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번역가, 나의 번역가”로 최 시인을 언급한 데 이어 한국어로 말했다.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많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이 수상의 영광을 드릴게요.”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호스피스 병원에서 병과 싸우고 있는 어머니를 차례로 호명한 뒤 다시 한번 ‘땡스’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6월25일,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의 자기소개는 간단했다. “김혜순입니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시학’이 되었다는 이광호 문학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상 파이널리스트가 되면 1만 달러를 준다고 했어요. 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시상식에 참석한 이유가 간단했다. 2000년 캐나다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만든 그리핀 시문학상은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다. 번역 시집을 포함해 영어로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에는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이 선정되었다.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시인은 ‘미래 도시’라는 이미지를 받았다.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었다. 최종 후보자(인터내셔널 부문 4명, 캐나다 부문 3명)는 시상식 하루 전 유료 낭독회에 참석한다. 1000명의 관객이 모인 극장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했다. 참석자는 모두 백인이었다. 시상식도 마찬가지였다. “번역가와 이야기했어요. 동양인이고 여자라 절대 상은 못 받는다고요. 그렇지만 1만 달러를 받고 축제를 즐기자고 했어요.” 이름이 불렸을 때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아시아인 여성으로 최초였다. 6만5000캐나다 달러(약 5750만원)는 원작자와 번역자가 각각 4대 6으로 나눠 갖는다. 시 번역의 어려움을 고려해서다.

ⓒ시사IN 신선영김혜순 시인(위)이 펴낸 시집 13권 가운데 11권이 영문으로 번역되었다.


최돈미 번역가는 김혜순 시인의 시집을 여섯 권 번역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0년 즈음이다. 미국 시애틀에 사는 최 번역가가 김혜순 시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왔다. 번역 과정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많이 나눈다. 번역가는 시인에게 문장의 주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인도 그에게 시를 읽고 나서 뭘 느꼈는지 물었다. 개인사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이다. 현실의 어떤 일이 시작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는 상태에서 번역했다. 해외의 낭독회 행사에 함께 참석했다. 김혜순의 시집은 영문으로 11권 번역되었다. 독일어·프랑스어로도 나왔고, 스웨덴어·노르웨이어 등으로도 번역 중이다. 시인은 2003년부터 해외의 각종 시 축제에 초청되었다.

<죽음의 자서전>에는 시 49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죽음이 정면에, 뒤통수에, 머릿속에 있었다.’ 2015년,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쓰러졌다. ‘그때 문득 떠올라 나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군가. 가련한 여자. 고독한 여자. 그 경험 다음에 흐느적흐느적 죽음 다음의 시간들을 적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였고 메르스가 유행할 때였다.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자로서,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들에 대해 썼어요. 그런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에게도 닿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누구도 노래한 적 없는 음울한 톤

심사평에는 구체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2014년 세월호의 끔찍한 여파 속에서, 한국 시인 김혜순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 이 재앙에 내몰린 아이들의 원혼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비극적인 작품을 써냈다. 죽은 자들의 환생을 기다리며 매일 한 편씩, 총 49편으로 이뤄진 시를 구성했다. 최돈미의 탁월한 번역을 통해 우리는 샤머니즘, 모더니즘, 페미니즘이 초국가적으로 충돌하는 김혜순의 시가 ‘이전 그 누구도 노래한 적 없는 음울한 톤’으로 아우성치는 기록을 듣는다.” 시인도 자신의 시론을 담은 산문집 <여성 시하다>에서 ‘그날 이후’ 시인 안에서 시가 불을 껐다고 고백한 바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비애와 처참을 이렇게 주기적으로 세세토록 들쑤시는 나라’에 살면서도 직장이 있는 안산으로 출근했고 1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김혜순 시인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데 이어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또 다른 별에서>부터 <날개 환상통>까지 시집 13권을 냈다. 출판사에 근무할 때 책을 가제본해 시청에 가져가면 군인들이 원고를 검열하고 지웠다. ‘책의 죽음을 나르던 시절’을 지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새롭고 실험적이라는 찬사와 난해하다는 지적을 동시에 들었다. 올해는 등단 40주년이다. 각별한 소회는 없다. “당면한 오늘, 한국 사회의 문제들 속에서 사유를 진행하기 때문에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젊으나 어리나, 저처럼 40년을 해온 사람이나 똑같이 지금을 대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에겐 오랫동안 여류 시인이나 여성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시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시인을 여성 시인이라 명명하면 남성 시가 표준이 되고, 여성 시는 주변이 되고 만다.’ 여성 시인은 마녀형·무녀형· 창녀형·소녀형으로 또다시 나뉜다. 그는 마녀형으로 분류되었다. 시인은 말한다. ‘마녀는 규범에 반대하고 낙태 시술을 하며 불륜을 조장하는 여자다. (중략) 심지어 분류 속에도 끼지 못하는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시인들은 어떠하겠는가.’ 여성주의 시인, 초현실주의 시인이라는 명명 모두 각자의 지식체계 안에 자신의 시를 들이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여성과 여성 시인, 여성 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왔다. 몸으로 시를 쓴다는 의미에서 여성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 문학계도 그에 감응했다. 그리핀 시문학상 홈페이지는 최돈미 번역가의 말을 빌려 그의 시 세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한국 남성들이 오랫동안 정의해온 전통적인 문학 형식과 언어에 저항하려는 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도 “그간 한국 문학이 소개될 때 남성 작가들의 ‘큰 이야기’가 중심에 있었다. 여성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발화들이 보편성을 얻고 세계 독자들이 감응했다는 게 이번 수상의 중요한 지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죽음의 자서전>의 시 중에서도 그는 ‘저녁 메뉴’라는 시를 가장 아프게 기억한다고 밝혔다.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다. ‘엄마의 쌀독엔 쌀이 없고/ 엄마의 지갑에 돈이 없고/ 엄마의 부엌엔 불이 없고.’ 이렇게 시작된다. 호스피스 병원에 있던 그의 어머니는 시인의 수상 직후 작고했다. 7월에는 티베트와 인도를 여행하며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 하기>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제목이 많은 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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