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침략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이홍이 옮김, 알마 펴냄

“넌 단어만 알고 있는 거야. 너한테 제일 소중한 걸 빼앗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이른바 본격 문학이나 철학에서 다뤄야 할 주제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산책하는 침략자〉가 대중문화에서 거둔 성과를 감안하면, 본격 문학과 장르물 사이의 경계는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을 시조로 하는 ‘외계인 침략 SF’의 계보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목표는 지구 정복이 아니라 인간의 ‘개념’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사랑’ ‘나와 타인 간의 구분’ ‘죽음’ 같은 기표 뒤의 기의(의미)들…. 기표들 간의 관계에서만 기의를 발견해야 하는 언어구조학자들을 분노케 할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에서 발견되는 ‘인간다운 것’의 의미들은 꽤 의미심장하다.

 

 

 

 

 

 

디즈니 웨이

빌 캐포더글리·린 잭슨 지음,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 펴냄

“실행 수단이 없는 비전은 귀 없는 덤보라고 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콘텐츠 기업 디즈니만큼 지속적으로 선두를 지키는 기업은 흔치 않다. 미키마우스부터 마블의 어벤져스, 픽사의 토이 스토리, 21세기 폭스의 엑스맨과 아바타까지 흡수해버린 디즈니의 저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책은 디즈니의 성공 전략을 ‘꿈꾸고, 믿고, 도전하고, 실행하라’로 정리한 뒤 그 항목을 하나하나 샅샅이 파헤친다. 디즈니의 성공을 직접 일궈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 마법 같은 성공 뒤에 숨은 치열한 조직문화와 경영전략, 이매지니어 (imagineer:상상과 엔지니어의 합성어)의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제인 마운트 지음, 진영인 옮김, 아트북스 펴냄

“이 책의 목표는 당신의 ‘책더미’를 세 배로 늘리는 것이다.”

책더미를 세 배로 늘리겠다는 첫 문장을 보는 순간 책을 덮을 뻔했다. 내가 사는 집의 주인은 이미 책이며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이유도 책 때문인데, 뭐라고?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책에 대한 책은 역시 재미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책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극적’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저자는 ‘책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다. 책 안에 들어가는 그림이 아니라, 책 자체를 그린다. 책에 얽힌 장소·작가·동물 등도 그림의 단골 소재다. 서가는 1000점 넘게, 책등은 1만5000권쯤 그렸다. 이번 책에서 그 일부를 구경할 수 있다. 디테일하면서도 특징을 잡아 그린 책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마음 동호회

윤이형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자녀 계획에 대한 고민은 보편적이지만 당사자가 퀴어라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모성은 본성일까, 사회적으로 주입된 걸까. 레즈비언 커플 승혜와 미오의 갈등은 낯설지 않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혼자서도 그 마음 사이를 결론도 없이 몇 번이고 널뛰기하니까. 〈작은 마음 동호회〉에 실린 단편소설 11편은 우리 내면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어떤 다툼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밖으로 꺼내기엔 너무 하찮지만 그래서 중요했던 ‘작은 마음’이 종이 위 활자가 되어 읽는 사람을 위로한다. 내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 역시 감히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불편한 삶을 이해하는 딱 그만큼, 세상에 대한 이해 역시 넓어지는 건 아닐까.

 

 

 

 

 

옥중서신 1·2

김대중·이희호 지음, 시대의창 펴냄

“비판을 못하고 맹종만 하는 정치활동은 죽은 활동밖에 아무것도 아닌 줄 압니다.”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낸 김대중·이희호.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큰 사랑이자 지지자였다. 납치, 살해 위협, 연금과 구속으로 점철된 고난의 여정에 있던 김대중에게 이희호는 정치적 조언자이자 민주화를 열망하고 고통을 나누는 동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었다. 〈옥중서신 2〉에 수록한,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민의 자유와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묻어 있다. 그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억울함을 들여다볼 줄 알았다. 최근 정치적 논란을 보며 ‘욕심이 커지면 죄를 짓게 마련이고 죄가 커지면 망한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던 그의 말을 되뇌어본다.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로마 아그라왈 지음, 윤신영·우아영 옮김, 어크로스 펴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지어 올릴 것이다.”

우리가 건축가를 떠올릴 때 수학적 머리로 무장한 사람을 생각하는데, 건축가들은 ‘젓가락 위에 집을 짓지는 못한다 정도만 알면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구조공학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구조공학자다. 힘의 원리 측면에서 건축물을 들여다본다. 건축물이 얼마나 많은 힘을 받고 그 힘을 어떻게 분산해내는지 살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그 역사성에 감탄할 때 저자는 건축물이 풀어낸 힘의 흐름을 본다. 그리고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간단한 스케치로 이를 설명해준다. 1907년 75명의 희생자를 낸 캐나다 세인트로렌스강 다리 붕괴 사고의 원인을 설명할 때는 건축물의 구조뿐만 아니라 사업의 구조와 사고를 유발한 정치적 힘도 규명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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