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진흙에 던져진 유승민 연꽃을 피울까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증언자


최경환 씨는 알까? 중진공의 애틋한 마음을


철학의 빈곤, 막말 수준의 언사


‘대륙의 실수’ 바람 한번 거세네


집밥이 별건가유 이렇게 하면 쉽쥬?


동양인 편견에 대한 결정적 한 방


세 살배기 주검 앞에 지구가 울었다


흙수저 입에 물고 ‘노오력’ 해봤자

 

대한민국이 ‘헬조선’인 이유는 차고 넘친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복지 지출은 꼴찌다.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다. 노인빈곤율 1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OECD 평균보다 쉽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 중 몇 가지 사례다. 60개의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합성 사진은 ‘한국이 헬조선인 60가지 이유’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헬조선’은 지옥(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주로 청년 세대가 절망적인 현실을 빗대어 쓰던 용어였지만 지금은 좀 더 폭넓게 쓰이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키워드로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헬조선’이라는 말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 처음 쓰였다. ‘14세기 헬고려’ ‘19세기 헬조선’처럼 왕조 말기 혼란상과 체제 파탄을 이르는 말이었다. ‘지옥불반도’나 ‘망한민국’이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특히 짝을 이루는 표현이 ‘노오력’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쓰는 청년 세대의 자조에 기성세대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노력하라’는 말 정도다.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대한 책임의식보다 ‘요즘 애들은 노력을 안 한다’는 식의 시선이 앞서는 걸 비꼰 표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행사에서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인터넷 갈무리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국이 헬조선인 60가지 이유’.

‘헬조선’이란 단어는 취업 등 청년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구직은 쉽지 않고, 인턴 생활만 반복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스스로를 ‘호모인턴스’라고 부른다. 취직·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삶이 더 이상 평범한 일이 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다. 〈조선일보〉가 이런 현상에 대해 일자리가 없는 ‘잉여’들이 ‘헬조선’ 따위의 말을 쓰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댓글로 해결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 불만 세력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해석까지 곁들였다. 급기야 ‘헬조선’은 동네북이 되었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정교과서 논란 당시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배워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라고 언급했다.

 ‘수저 계급론’도 비슷한 맥락으로 등장

‘헬조선’의 등장 배경과 비슷한 맥락에서 수저로 출신 환경을 구분하는 ‘수저 계급론’이 탄생했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로 나뉜다. SNS에서 떠도는 수저 기준표에 따르면 부모 자산 20억원 이상, 또는 가구 연수입 2억원 이상이 되어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흙수저는 부모 자산 5000만원 이하, 가구 연수입 2000만원 이하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탈조선(대한민국을 탈출하는 것)’ 혹은 ‘죽창’을 드는 일뿐이다. 극단으로 내몰렸을 때 무기를 쥐는 것처럼 이 역시 모든 걸 포기한다는 절망의 키워드다. 이런 젊은 세대의 인식을 반영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역시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계나는 ‘탈조선’의 꿈을 이룬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궂은일을 하며 어학원에 다닌다. 남들 눈엔 고생이지만 그곳에선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계나는 말한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그녀가 ‘헬조선’을 떠난 이유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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