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글쓰기, 그렇게 쉬운 거 아닙니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인류학· 민속학)는 학계를 넘어 대중매체와 대중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학자다. 알고 나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통념과 상식을 깨는 새로운 지식과 시각이 그 영향력의 바탕에 있다.설렁탕은 좋은 예다. 고려·조선 시대에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의례를 행하고 친히 밭갈이한 뒤 끓여 먹은 소고기 탕국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소리 말이다. 주 교수는 이런 옛날이야기의 수집은 설렁탕, 음식, 음식 문화사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1940년에 나온 홍선표의 〈조선요리사〉에 그런 청년 요리사가 말하는 한국 요식업의 현실 논산·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볕이 좋은 날이었다. 충청남도 논산 꽃비원에서 서른한 살 청년 차현재 요리사를 만났다. 그는 서울 핸드픽트호텔 한식당 나루, 사직동 주반 등 젊은 미식가들한테 인기 높은 업장을 거쳐, 지금은 서교동 이탈리아 식당 첸토페르첸토에서 일한다. 상업 공간뿐만이 아니다. 2017년부터 1년간은 몬트리올 총영사관 겸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몬트리올 대표부의 주방장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그만큼 안팎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숙련 기술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런 직업의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싹텄다. “어머니가 일 나가시니까 집안일 하면서 내 입에서 스르르 녹는 봄날의 초콜릿 이야기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서울 용산 카카오봄(Cacao Boom)은 초콜릿 전문점이다. 카카오봄을 운영하는 고영주 대표는 한국인 ‘쇼콜라티에’ 제1호다. 1999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쳤다. “쇼콜라티에(Chocolatier)는 초콜릿 전문 기술자, 또는 초콜릿 장인의 가게를 말해요. 파티시에(Patissier:제과사)보다 전문적으로 초콜릿을 다루는 제과사라고 보면 되죠. 저는 ‘초콜릿 기술자’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따라 하진 않네요.” 고 대표는 벨기에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부산 파라다 ‘한국형 고깃집’의 미래는 무엇인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40년째 고기를 구워온 집이다. 1979년 태능정이란 이름으로 창업해 지금은 ‘배갈비’라는 상호로 문을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서울 교외에 갈빗집이 들어서면서 외식 문화가 꽃피던 시대의 산증인 같은 곳이다.“한국 사람은 굽는 재미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이 집 김태형 사장은 돼지갈비 하면 한국인의 ‘구이 사랑’부터 떠오른다고 한다. 불에 굽고, 김치류·쌈거리·샐러드와 각종 반찬까지 너끈히 한상차림을 내는 고깃집은, 어쩌면 한국 요식업만이 가진 문화적 자산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돼지갈비는 아버 예나 지금이나 두리반은 밥집이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여기는 밥집이에요. 굉장한 요리 같은 건 없어요.” 그렇다. 두리반은 밥집이다. 칼국수·보쌈 전문점이다. 재개발 강제 철거에 맞선 세입자 투쟁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이제 인근 주민과 직장인 사이에서 소담한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골, 만두, 그때그때 잘 지져내는 전 종류도 참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그런데 이 ‘맛있다’의 뜻은 유명 음식점의 호화로운 요리에 대한 상찬과는 좀 다르다. 4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도 이 집을 편안히 찾는다는 직장인 김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한다. “편안해요. 수육·칼국수·감자전을 홍대 앞 림가기에는 홍콩 서민의 음식이 있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저는 장인이 아니에요.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거예요.” 짐작대로였다. 취재의 다리를 놓아준 지인도, 식당 살림 전반을 책임지는 중국인 아내 방휘(方輝·팡후이) 사장도 조이준 주방장이 얼마나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지 누누이 강조했다. 음식점이 잠시 쉬는 오후 3시 조이준 주방장은 부직포 위생모와 합성수지 앞치마를 두른 채 나타났다. 멋 부린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의 몸에서 습기와 열기가 묻어났다. 온종일 탕면의 탕국을 돌보기 때문이다.첫 만남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모든 대답은 무뚝뚝하고 짧았다. 사진 촬영도 변화와 전통 사이 삼송초밥의 ‘정중동’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오래된 초밥집 하나를 찾느라 혼잡한 골목길을 헤맸다.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 55번길 13번지. 용두산공원과 BIFF 거리 사이이고 자갈치시장이 코앞이다. 광복로 뒤쪽 골목길은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다. 지금은 구도심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한때 이곳 반경 2㎞ 안에 시청, 법원, 검찰청, 대학병원이 모여 있었다. 삼송초밥은 그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1968년 개업한 이래 같은 자리, 같은 건물이다.반세기를 지켜온 노포의 주방장은 뜻밖에도 1981년생 젊은이다. 주강재 요리사는 이곳에서 막내뻘이다. “주방의 조승길 부장님이 79세, 김 명란의 ‘쩡한 맛’ 느껴본 적 있나요 부산/글 고영(음식문헌 연구자), 사진 조남진 기자 명태(明太). 조선 후기 이후 오늘날까지, 이 땅의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먹어온 바닷물고기다. 부산 초량의 왜관에서 근무한 적 있는 일본인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는 그의 책 〈교린수지(交隣須知)〉에 명태를 언급하며 함경도에서만 난다고 썼다.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생물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물고기가 나지만 명태어와 청어가 가장 흔하다”라고 했다.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명태를 “매일 먹는 반찬거리”라 휴전선 넘어서 평양에 당도한 돌배 향 글 고영(음식문헌 연구자)·사진 신선영 기자 “문배술의 고향은 평안도이나 지금은 남한의 명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함께한 4·27 남북 정상회담의 만찬주였던 문배술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이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86-가’호인 문배술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함께한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만찬주로 올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 때는, 만찬주는 아니어도 반주로 식탁에 올랐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늘 함께한 술이다.문배술. 지금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검암2로 “이것도 한식이야? 아, 한식이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한식이라고 하면 너무 넓어요. ‘산업 분야의 한식’ ‘요식업의 한식’을 주제로 합시다.”한식공방 조희숙 대표는 섭외를 위한 전화 통화에서 자신이 할 말의 범위부터 명확히 했다. 올해 예순인 조 대표는 그동안 세종호텔·노보텔앰배서더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호텔신라 한식당과 대학 조리 교육의 제일선에서 35년을 걸어온 요리 전문가다. 지금 운영하는 한식공방은 음식 연구 공간 겸 음식점이다. 음식에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으로 ‘공방’이라 이름 지었다.여기서 잠깐 ‘요식업(料食業)’이란 말을 살펴보자. 요식업이란, 일정한 “장도 텃밭처럼 가꾸어보면 어때요?” 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사진 신선영 기자 고은정씨의 명함에는 ‘음식문화 운동가’라고 적혀 있다. 워낙 장 담그기로 소문난 이라 ‘전통식품 명인’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음식문화 운동가로 소개한다. “거창할 것도 없어요. 할 수 있는 한에서 내 밥 내가 해 먹는 분위기가 퍼지고, 골목골목 장독대가 보였으면 해요. 모색하기이고, 궁리입니다. 이 안에 문화의 이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요.”그의 둥지는 지리산 자락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지리산 둘레를 돌고 돌아 실상사 앞에 내리면 길 건너에서 ‘맛있는 부엌 (전라북도 남원시 천왕봉 “아, 가성비 참 힘들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까다로운 인터뷰이다. 연출한 사진은 질색한다. ‘촬영에 응하다’와 ‘연출하다’를 기어코 구분한다. 빳빳하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자기 음식에서도 까다롭게 기본을 지킨다. 요리사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주방장은 ‘기본 중의 기본’부터 말했다. 음식점 종사자와 고객 모두를 위한 안전과 위생이다.“칼 잡는 손이랑 음식물 쓰레기봉투 묶는 손은 따로여야 해요. 업계 현실은, 그렇게 인력을 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기본을 생각하고 적정 인력을 배치하는 음식점이 있어야 하고, 앞으로 늘어나야죠. 세상에는 보고 배우고 실감 “빵이랑 과자는 어떻게 달라요?”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권형준 대표를 만나자마자 제빵과 제과가 어떻게 다른지부터 물었다. 권 대표는 1979년 문을 연 리치몬드과자점(본점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86 리치몬드빌딩)을 운영하고 있다. 흔히들 리치몬드제과라 부르지만, 정식 상호는 ‘리치몬드과자점’이다. 온라인에서는 ‘리치몬드베이커리(bakery)’를 앞세운다.한국에서 빵집 또는 과자점이라고 하면, 기름지고 달고 짭짤한 간식을 주로 팔아서 먹고산다. 흔히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 시장 빵집의 제품이란, 식빵 및 바게트를 빼면 영어권에서 ‘스낵(snack)’이라고 불릴 만한 간식이 주가 된다. 이토록 빈틈없는 막국수의 탄생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주방장, 주방장님이라고 하면 되지요?”“예, 셰프보다 주방장이 편해요.”유수창 주방장이 손에 물기가 남은 채 식당 밖으로 나섰다. 방금 전까지 메밀 면을 그릇에 곱게 올리던 손이다. 월요일 오후 3시. 보통 식당이라면 한가할 시간이건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요즘 가장 ‘뜨거운’ 막국숫집이다.고기리장원막국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는 외딴곳에 있다. 대중교통편이라곤 하루 몇 대밖에 없는 마을버스가 전부인데도 온종일 문전성시다. 유수창 주방장이 시간을 내준 때는 월요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다. 면 삶는 물 그때나 지금이나 음식 노동은 고되었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화제가 이렇게 붙었다. ‘밥 푸며 상 놓는 모양.’ 딱 그림 그대로다. 19세기 조선에 온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았던 화가 김준근의 그림이다.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는 19세기 말 조선 사람의 부엌이다. 막 밥을 푸고 상을 놓고 있다.부엌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친 지난 1만 년의 일상사를 아로새긴 공간이다. 정겨운 한편 엄숙한 살림살이의 중심이다. 그릇, 접시, 잔 벌여 끼니를 차리고 상을 놓는, 사람 뺀 다른 동물은 하지 않는 고도의 문화적 행위 또한 여기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읽기’가 필요할 기어코 겨자장에 민어회를 먹으려고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쌍돛을 한껏 펼쳤다. 돌고 있는 물레는 지금 닻줄을 감는가 푸는가. 사람 반신은 족히 넘을 듯한 지름의 물레 다루기가 만만찮을 테지. 사내들은 한참 삿대를 버티고 있다. 강류와 직각을 이룬 뱃전으로 물결이 부서진다. 분주한 가운데 거룻배는 제 볼 일 본다고 고깃배에 붙어 있다. 거룻배에 실린 독 하나는 젓독, 하나는 소금독이다. 조선 후기에 점점 쓰임이 늘어난 조기젓·준치젓·밴댕이젓·새우젓 등은 고깃배에서 바로 받아 그 자리에서 소금 질러 갈무리했다. 질박한 젓독, 소금독이야말로 조선 후기 어업 부가가치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강의 미원의 원조 아지노모토의 조선 점령기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미원’의 원조 조미료인 아지노모토(味の素)는 시작부터 기세등등했다. 발매하자마자 광고를 통해 아지노모토가 제국의 영광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제품이라고 윽박질렀다. 이학과 공학에 힘입은 이 제품이 제국 기술력의 상징이라고 뽐내기도 했다.1909년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한 뒤, 1910년 조선에 발을 디딘 이후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줄곧 조선에서 가장 손이 큰 광고주가 아지노모토 사(社)였다. 아무렇게나 뿌려댄 것도 아니었다. 일상생활의 세목 곳곳에, 그야말로 촘촘한 계산을 하고 또 해서 아지노모토를 광고했고, 그 광고는 일본인이 기록한 뜻밖의 조선 음식 백서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기록이라는 것은 원래 그 당시 너무 당연한 일은 적지 않는다.” 중국사 연구의 거장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의 한마디다. 이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시대의 당연한 일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없고, 무리하게 알려고 하면 거기에서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기게 된다(〈구품관인법의 연구〉 임대희 외 옮김).”음식에서 좀 더 깊은 의미를 밝힐 단서가 될 기록은 태부족이다. 가령 기억만으로 짜장면 역사를 재구성하고 말면 끝장에 가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그만인 말잔치만 남는다. 우리가 먹는 오징어가 꼴뚜기였다고?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월10일 북측 고위급 대표단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은 좋은 조짐이었다. 먹을거리 화제가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했다.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더라”라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말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라고 받아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궁금해서 2000년에 한국에 정착한 함경도 출신 윤종철 요리사에게 문자 메시지로 물어보니 단박에 답이 왔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고 합니다. 갑오징어는 그냥 오징어라고 합네다^^.”함경도 사나이로부터 직접 설렁설렁한 맛 괄시하지 못할걸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어여차, 이거 무던하다, 이 더운데 설렁탕만 먹는 사람들도 있나.” 설렁탕 잔뜩 올린 목판을 받쳐 든 이가 한 손으로 자전거를 몰고 배달 길에 나섰다. 위태위태하던 배달 자전거는 아니나 다를까, 마침 마주 오던 ‘구루마’와 맞부딪친다. 만화 첫 칸에서 헤아려보니 열 그릇도 넘어 보이는 설렁탕 뚝배기가 그만 “깨박을 치고” 만다. 박살이 났다는 소리다. 배달부는 분풀이로 손수레를 뒤엎는다. 〈조선일보〉 1925년 8월19일자 연재만화 ‘멍텅구리’의 ‘설렁탕 배달’ 편이다.날 추우면 더 생각나는 설렁탕이지만 그때 식민지 조선의 경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