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글쓰기, 그렇게 쉬운 거 아닙니다
  •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 호수 598
  • 승인 2019.03.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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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교수는 통념을 깨는 음식 문화사를 이야기해온 학자다. 그는 음식 연구와 글쓰기 모두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음식 문화가 제대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인류학· 민속학)는 학계를 넘어 대중매체와 대중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학자다. 알고 나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통념과 상식을 깨는 새로운 지식과 시각이 그 영향력의 바탕에 있다.

설렁탕은 좋은 예다. 고려·조선 시대에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의례를 행하고 친히 밭갈이한 뒤 끓여 먹은 소고기 탕국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소리 말이다. 주 교수는 이런 옛날이야기의 수집은 설렁탕, 음식, 음식 문화사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1940년에 나온 홍선표의 <조선요리사>에 그런 이야기가 실린 것 말고는, 선농제가 행해진 시대의 어떤 문헌에도 설렁탕의 선농단 유래설이 보이지 않음을 밝힌다. 그런 뒤 제안한다. 내가 지금 먹는 설렁탕부터 세심하게 다시 들여다보자고. 생각보다 복잡한 소고기 및 부산물과 그 재료의 공급, 뽀얗게 국물을 뽑아내는 방식,
서울 중류계급 이상에서는 쓰지 않던 소금과 생파의 사용 방식, 상류층한테서는 제대로 된 식기로 취급받지 못했던 뚝배기라는 식기에 이르기까지, 설렁탕의 정체와 역사에 의미 있는 질문이 될 핵심 화제는 무엇인지 차분히 설명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조리법에서 태어난 소고기탕이 최근 백 년의 요식업과 손잡고, 하필 서울에서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모두를 사로잡으며 서민의 한 끼로 뿌리를 내린 내력 속에서 진짜 공부할 거리, 생각할 거리를 찾아낸다.
 

ⓒ시사IN 신선영주영하 교수(왼쪽)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가 2월11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말 바빴어요.” 장서각 관장실에 취재진이 도착하자마자 세 번이나 인터뷰 시간표를 옮긴 데 대해 미안함을 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 교수는 올해부터 장서각 관장직을 맡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조선 왕실의 서고였던 규장각·홍문관·집옥재·춘방의 도서를 이어받은 도서관 겸 연구기관이다. 총서·유서·의궤 그리고 온갖 분야의 귀중본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해제와 번역·보존·디지털 아카이브화를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와 지구촌을 잇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다. “음식 연구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당대의 일상과 전 지구에 걸친 공부니까 장서각이 그냥 고색창연한 데가 아닙니다. 제 현장은 연구실이고 도서관이죠.”

앉자마자 ‘당대’라든지 ‘일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 주 교수는 먼저 인류학자다. 인류학자라면 ‘우리 주변의 사물이 언제부터 어떻게 일상이 되었는가?’ 하는 화두를 붙들고 있음이 당연하다. 사건보다 일상을 통해 음식과 문화에 파고들되, 역사의 다양한 층위를 포착하려는 사람이 인류학자이다.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에서 이미 드러낸 바다. 인터뷰와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음식은 홀로 역사의 큰 흐름이나 변혁을 이끌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은 시대의 변화상을 늦게나마 반영하는 ‘역사의 그릇’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른바 음식 칼럼니스트라는 사람들의 글, 인터넷과 방송의 음식 꼭지, ‘먹방’이 관심사예요. 포르노에 가까운, 오로지 먹기만을 원색적으로 보여주는 영상도 열심히 봐야죠. 왜 이러고 있나 질문하고, 이해와 설명을 위한 시도를 해야죠.”

그간 수많은 단행본을 정력적으로 낸 동력이 여기 있다.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음식 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밥상을 차리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차폰 잔폰 짬뽕> <맛있는 세계사> 등과 같은 저서, 그리고 우유·아이스크림·빵·위스키·차·초콜릿·치즈·커리·피자·향신료·왜간장·소주에 이르는 주제를 다룬 원고 모두 연원·기원뿐 아니라 그래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원하고, 먹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담고 있다.

“음식 글쓰기, 왜 이렇게 회고적인가”

그는 대중매체가 자신을 ‘음식 척척박사’로 오해하면 무척 당혹스럽다고 한다. “내가 음식 만물박사, 맛집 블로거는 아니잖아요. 학자는 학자의 역할이 있고, 음식 칼럼니스트는 그 나름의 역할이 있죠.” 주 교수가 오늘의 음식 담론 지형에 대해 간략한 비평을 내놓았다. “정은정 연구자의 <대한민국 치킨전>,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 같은 경우는 각각 사회학 연구로, 또 안 보이는 데서 우리 일상을 만드는 현장에 관한 르포르타주로서 훌륭합니다. 하지만 몇 권의 양서를 가지고 오늘을 낙관할 순 없어요. 음식 칼럼은 어떤 일이죠? ‘폭로’ ‘나만 아는 체하기’여선 안 되죠.”
 

ⓒ시사IN 신선영주영하 교수 사무실에 놓여 있는 소품들.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이 다 연구 주제다.

대중이 한순간 혹할 만한 억지 쟁점과 억지 인기에 기대서는 전문적이며 뜻있는 음식 글쓰기를 감당할 수 없다. 공동체의 일상식과 당대의 외식업에 대해 훈련된 미각을 가지고,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맛과 한 음식 공간을 평가하고, 공간의 운영과 경영의 맥락을 조리 있게 관찰·기록하고, 그 사회적 함의를 담아야 음식 칼럼일 수 있다며 주 교수는 잠깐 한숨을 쉰다. 그렇다면 학자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대중적인 음식 글이 인용할 만한 자료와 역사를 제공하면 되잖아요. 자료 수집, 해제, 번역, 논문을 통해 지식의 체계를 세우기. 학자의 일은 명확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선 음식 연구도, 음식 분야 대중적인 글쓰기도 이제 시작입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힘쓸 때예요. 아직 우리가 모자라다, 이것부터 서로 확인합시다.”

주 교수가 보기에 오늘날 음식의 각 분야, 음식 글의 각 분야가 서로 협업을 하지 못하고 저마다 고립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중적인 음식 글의 경우 비평적 안목을 갖춘 기자 또는 칼럼니스트가 음식 그 자체와 조리 현장을 비평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식재료의 종류나 음식 이름을 나열하다가, 회고적인 역사에 빠져드는 것이 병폐 가운데 병폐이다. “식민지 시기까지 포함해서 지나친 회고조의 음식 역사, 지난날의 낭만화, 너무 민족주의적인 음식 문화사 서술을 경계할 일입니다. 이건 지난 한국 음식 문화사에 ‘잃어버린 왕국’을 설정하는 겁니다. 그러고는 ‘잃어버린 왕국’을 회복하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다 풀릴 거라는 나쁜 착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고 보면 원조 간판, 원조 골목에는 음식의 다양한 면모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다들 불확실한 옛것을 좇아 원조 경쟁에 나설 뿐이다. 지금 내 업장, 우리 골목의 음식을 사리에 맞게, 개연성 있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생략된다. 마찬가지다. 나열만 할 뿐 아직 핵심을 찌르지 못한 ‘한식’ 담론에 대해서도 공부 방법을 바꾼 접근이 아쉽다. “한식의 정체? 중식 같으면 기름에 순간적으로 재료를 튀겨낸다든지, 일식이라면 섬세한 칼질에 이은 재료 본연의 풍미에 대한 집중력에서 출발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한식의 핵심은 뭘까요? 비빔인지, 무침인지, 양념인지···. 한식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개 끄덕일 만한 아이콘이 있습니까?”

주 교수의 지적은 계속됐다. 과거 문헌 공부를 통해 요리법을 연구하는 요리사, 세계 각국 음식과 조리 기술의 맥락을 파악한 한국인 연구자와 칼럼니스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이어졌다. 가령 음식 칼럼의 진경을 보여준 제프리 스타인가튼, 일본에서 동아시아와 지구의 음식을 개관하고 다시 동아시아와 지구의 시각에서 일본의 음식을 개관한 이시게 나오미치,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지역 음식의 다양성 속에서 유럽 음식 문화의 역동성을 논할 기회를 만든 시드니 민츠 등의 활동과 글은 요긴한 참고 자료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유행 덕분인지 우리 사회에 꽤 중요한 음식 관련 단행본이 번역되기도 했고, 몇몇 한국인이 쓰기도 했어요. 음식 공부를 하고 싶다면 저는 입문서에서부터 좀 더 깊은 책을 차분히 읽어나가길 바랍니다. 유명인이 하는 대중강연을 쫓아다니기보다 독서가 먼저예요. 우선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거리부터 만들어야죠. 안 그러면 장황하고 요란한 이야기가 귀청만 울리고, 내 생각은 하나도 못 남기는 수가 있어요.”

해 있을 때 시작한 인터뷰가 어느새 저녁 8시 30분을 훌쩍 넘어갔다. 인터뷰 말미 그가 가장 강조하고픈 이야기가 나왔다. 전에 없던 글로벌 음식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대지만, 우리 사회 음식 담론을 좌우하는 이들은 여전히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사유를 바꿉시다. 덮어놓고 우리 음식이 제일 좋다, 우리는 원래 좋은 음식을 먹었는데 잃어버렸다 하는 음식 민족주의에서 좀 벗어나 지금 나는 어떻게 먹고 있는가, 이웃 나라, 대륙 너머, 지구는 어떻게 먹고 있는가를 보자고요. 산업화·지구화라는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역사와 문화를 품어야지요.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의궤도 고구려 벽화도 제대로 보여요.”

뉴욕 주립대의 음식학 석박사 같은 학제 필요

내비친 것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으로 시급한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에는 음식학 분야 석박사 과정이 있어요. 영국 런던 대학에 속한 ‘소아즈(SOAS, University of London)’에도 관련 박사과정이 있고요. 가까운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에도 교육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뉴욕 주립대학 같은 학제가 설립되어야 해요. 다시 강조할게요. 학문하는 사람은 대중적 글쓰기 하는 사람이 인용할 만한 공부를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까지 낸 책 가운데 대중서는 없습니다. 각주를 비롯한 주석을 보아주세요. 제가 참고한 자료, 제 연구를 누구나 볼 수 있게 묶을 뿐입니다.”

주 교수는 원래 역사 전공자였다. 졸업 후 ‘운 좋게’ 김치박물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민속학으로 인류학으로 건너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학문의 이력을 거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이르러서는 중세 한국어, 이두, 명·청 시대의 백화, 한문, 일본어, 중국어, 영어 외 구미 각국 언어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단다. 특수한 고급 언어 교육, 현장 조사를 위한 국제적 협력의 가능성이 실은 기초 학문 역량에 달린 것이다. “기초, 기본의 소중함을 시민 여러분도 알아주십시오. 정말 궁금한 게 커질수록 기초 학문 붙들고 사는 연구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장서각 같은 제도와 기관의 소중함도 알아주었으면 해요.”

이 밖에 연구자의 마음속 우묵한 곳에는 어떤 고민이 있을까. 굳이 서너 번 더 캤다. “나는 ‘전통’을 쉽게 말할 수 없어요. 물론 ‘만들어진 전통’도 문화적 재창조라고 하지요. 하지만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담론은 헤게모니를 쥔 세력이 ‘전통’을 만들어서 국민의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기 때문에 제기된 이론입니다. 그 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날 이른바 ‘전통음식’을 주도하는 세력이 누구냐, 거기에 권력과 시민은 어떤 서로 다른 환상과 바람을 저마다 투영하느냐도 끝없이 물어야죠.”

학자의 고민이 이러했다.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긴 낭만적인 진단과 민족주의 처방은 얼마나 간단하고 환상적인가. 그럴 수 없음, 그러지 못함의 자리에서 펼쳐지는 고민이 또한 한국 음식의 최전선에 자리한다.

※ 이번 호로 ‘한국 음식의 최전선’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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