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가 이렇게 붙었다. ‘밥 푸며 상 놓는 모양.’ 딱 그림 그대로다. 19세기 조선에 온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았던 화가 김준근의 그림이다.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는 19세기 말 조선 사람의 부엌이다. 막 밥을 푸고 상을 놓고 있다.

부엌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친 지난 1만 년의 일상사를 아로새긴 공간이다. 정겨운 한편 엄숙한 살림살이의 중심이다. 그릇, 접시, 잔 벌여 끼니를 차리고 상을 놓는, 사람 뺀 다른 동물은 하지 않는 고도의 문화적 행위 또한 여기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읽기’가 필요할 만큼 그 세목이 전혀 달라졌다. 그림을 천천히 읽어보자.

얹은머리에 행주치마를 두른 여성이 막 밥을 푸고 있다. 뒤에서부터 머리를 땋아 둥글게 위로 올린 머리를 얹은머리라고 한다. 이 여성을 돕는 머리 땋은 소녀는 소반에 숟가락과 종지를 놓는 참이다. 노란 채색이 놋(유기) 식기임을 드러낸다. ‘살강(선반)’에는 노란 놋 식기와 분명히 구분되는 백색 식기가 놓여 있다. 조선 시대 내내 중간 계급 이상의 식기는 유기 반, 자기 반으로 이루어졌다.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제공김준근, 〈밥푸며 샹논는 모양(밥 푸며 상 놓는 모양)〉,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살강도 어려운 말이다.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을 살강이라고 한다. 신분 낮은 사람 또는 상 놓고 밥 먹을 주제가 못 되는 여성은 부뚜막에 엉덩이 붙이고 살강 아래서 후딱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어치웠다. 상 받은 사람들이 물린 남은 밥이 있으면 ‘대궁밥’을 먹기도 했다. 대궁밥을 한자로 쓰면 좀 서글퍼진다. 말맛이 좀 다르지만 굳이 한자로 쓰면 ‘잔반(殘飯)’이다.

그때는 웬만하면 저마다 소반에 차린 독상을 받아서 먹었다. 김준근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조선에 온 영국 외교관 윌리엄 찰스는 주막에서 남성 스물다섯 명이 모두 소반에 차린 독상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Life in Corea〉, 1888). 밥상의 기본은 독상이었다. 가정에서든 상업 공간에서든 상 받는 사람 수대로 소반을 갖추고 살았다. 가장 만만한 소반이 개다리소반이다. 말이 개다리지, 짱짱하게 각진 머리가 아래로 흐를수록 곡선을 그리며 가늘어지다가 살짝 코끝을 든 형상의 세련미가 대단하다. 그림을 보니 거기에 붉은 칠까지 올렸다. 양반가에서 쓸 만한 고급 소반이다. 밥을 짓고, 푸고, 소반에 상을 차리면 이윽고 차림이 완성된다.

부엌의 상전벽해를 떠올린다

음식 노동은 고되었다. 부엌의 기본은 불과 물이다. 손가락 까딱하면 불을 쓰고, 꼭지에 손만 대고 물을 받는 부엌을 서민 대중이 쓰기 시작한 지 100년도 안 되었다. 음식의 시작은 장보기에 앞서, 나무하기였다. 나무도 귀해 솔방울, 삭정이, 낙엽을 긁었다.

부엌 바닥에 구정물을 버릴 수도 없었다. 바닥이 질척해지면 부엌일을 할 수 없으니까. 물 긷기에서 끝이 아니라, 버릴 물을 이고 지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전기도 그렇다. 전기는 밤에도 섬세한 요리 활동을 보장하는 조명을 제공한다. 냉장·냉동 가전을 필두로 한 온갖 주방용 가전제품은 전기 없이 불가능한 문물이다. 새 부엌에 기대 사람들은 자주 그리고 많이 음식을 하고, 그만큼 음식에 수많은 말을 붙이게 되었다. 저 소박한 그림 한 장을 앞에 두고 밥 짓고 상 놓는 부엌의 상전벽해를 떠올린다. 그만큼 불어나 넘치는 음식에 붙는 말과 말을 묵상한다.

※이번 호로 ‘옛 그림으로 읽는 우리 음식’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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