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의 원조 조미료인 아지노모토(味の素)는 시작부터 기세등등했다. 발매하자마자 광고를 통해 아지노모토가 제국의 영광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제품이라고 윽박질렀다. 이학과 공학에 힘입은 이 제품이 제국 기술력의 상징이라고 뽐내기도 했다.
1909년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한 뒤, 1910년 조선에 발을 디딘 이후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줄곧 조선에서 가장 손이 큰 광고주가 아지노모토 사(社)였다. 아무렇게나 뿌려댄 것도 아니었다. 일상생활의 세목 곳곳에, 그야말로 촘촘한 계산을 하고 또 해서 아지노모토를 광고했고, 그 광고는 빈틈없이 조선 사람의 생활과 감각을 포위해 들어왔다. 〈중외일보〉 1930년 4월13일자 광고 또한 그 예라고 할 만하다.
때는 4월, 청명한식 지나 이제 봄이 막바지이자 절정이다. 이즈음에 쑥떡, 느티잎떡, 건찬합 등 별식을 챙겨 경치 좋은 데서 즐기는 꽃놀이, 야외에서 화전(花煎)을 부쳐 먹으며 봄날을 즐기는 화전놀이는 조선 후기 이래 이어진 성인 남녀의 즐거운 여가 활동이었다. 이윽고 19세기 말부터 현대식 학교가 서면서 학생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가를 즐기다 돌아오는 일상이 새로이 생겼다.
아울러 원족(遠足), 산보(散步) 같은 말이 새롭게 쓰였다. 구미의 ‘school excursion’ ‘day trip’ ‘picnic’ ‘promenade’ 등의 내용을 받아들여 그 의미가 더해졌다. 해방 후 남에서 ‘도시락’, 북에서 ‘곽밥’으로 순화되는 일본어 벤또가 관청·공장·학교의 점심시간에 힘입어 조선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무렵이다.
광고에서 학생모·학생복 차림의 소년 소녀가 도시락을 먹으며 활짝 웃고 있다. ‘원족과 산보’ 중의 한순간인, 학교 소풍이다. 성인 남녀의 자리에 소년 소녀가 들어선다. 조금은 달라진 일상이지만 봄날 별미와 함께하는 여가는 한결같다. 아지노모토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의 마음이 누그러진 봄날에 훅 치고 들어온다. “따듯한 봄날 만발한 꽃 밑에서 아지노모토로 맛있게 한 벤또(도시락)는 더 한층 유쾌를 준다.”
내 자녀의 봄나들이 도시락이 아지노모토 솔솔 뿌려 더 한층 맛있어진다면 이를 굳이 사양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형편만 된다면 ‘도처 식료품점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하는’ 조미료를 사러 달려가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손맛은 아지노모토가 보장한다’
하루아침에 어쩌다 친 광고가 아니다. 아지노모토 사는 1920년대가 되면 “가정 화락의 원천은 식탁과 부엌에 있다”라고 선언하며 가정으로 파고든다. 1930년대 광고의 한 장면은 이렇다. “으아으아 맛이 없어서 나는 안 먹어” 하는 아이의 밥상에 아지노모토를 흩뿌리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자상한 할머니는 우는 아이 달래며 기어코 한마디 덧붙인다. “인제 맛이 있더냐. 오늘은 내가 잊어버리고 아지노모토를 아니 쳤구나.”
아지노모토는 조선 서민의 밥상으로 구석구석 치고 들어왔다. ‘신여성, 주부, 할머니의 손맛은 아지노모토가 보장한다’라는 광고와 함께 어김없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따라오도록 했다. 대중매체에다 그림과 문자로 ‘또 하나의 가족’을 아로새긴 다음, 반드시 ‘엄마, 우리 집은?’ 하는 순간을 연출했다.
아지노모토 사는 중일전쟁 확전에 따라 조선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1937년 12월까지도 색동저고리 입은 어린이를 내세워 외쳤다. “할머니도 엄마도 울 아버지도 언니도 어멈도 말했습니다. 아지노모토는 모든 음식을 맛나게 해준다고요.” 어린이의 웃음으로 부모 또는 주부의 가슴을 찔러 식품을 팔자는 계산도 이렇게 100년이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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