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밥집이에요. 굉장한 요리 같은 건 없어요.” 그렇다. 두리반은 밥집이다. 칼국수·보쌈 전문점이다. 재개발 강제 철거에 맞선 세입자 투쟁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이제 인근 주민과 직장인 사이에서 소담한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골, 만두, 그때그때 잘 지져내는 전 종류도 참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 ‘맛있다’의 뜻은 유명 음식점의 호화로운 요리에 대한 상찬과는 좀 다르다. 4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도 이 집을 편안히 찾는다는 직장인 김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한다. “편안해요. 수육·칼국수·감자전을 아이도 잘 먹고, 저도 안심하고 먹여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맛이 나야 아이들은 입에 넣어요. 아이들 입이 제일 정직하거든요. 짜기만 하고 간은 안 맞는 것, 그 음식의 제맛이 안 나는 것, 신선하지 않은 것을 바로 알아요. 바로 만든 반찬을 좋아하고, 하루 묵은 반찬에도 싫은 티를 내고요.”

ⓒ시사IN 이명익두리반 만두는 소를 피에 올리고 세 번 감아 빚는다.
말갛고 부드러운 피와 소가 잘 어우러진다.

먹고 나서 편하고, 아이들도 잘 받아먹을 만한 음식. 화려한 요리는 아니지만 조촐하면서도 맛이 꽉 찬 한 상, 한 접시 더 곁들일 만한 일품요리 몇 가지가 있는 ‘밥집’이 내는 음식의 느낌이 이렇다. 수육 자체가 맛나고, 김치는 과장한 단맛이나 매운맛을 뒤섞지 않았다. 토핑을 잔뜩 올려서 언뜻 푸짐해 보이지만, 고기와 김치 자체의 집중력이 별로 없는 보쌈과는 확실히 다르다. “단출한데 딱 좋아요. 무슨 무슨 양념 다 질리고, 결국 ‘프라이드 맛있는 집이 맛있는 치킨집’이잖아요. 이 집 음식이 그래요.” 듣다 말고 취재진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1시, 손님 맞고 상 치우고 계산하는 유채림·안종녀 사장 부부는 쉴 틈이 없다. 유채림씨는 서빙을, 안종녀씨는 주방을 책임진다. 손님 뜸한 오후 3시45분에야 두리반 식구들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금방 먹어치운 사장 부부와 마주하니 오후 4시다. “먹고살려고 시작했지 뭐.” 1960년생 유채림씨는 전형적인 문학청년 시절을 겪고 등단한 소설가다. 걸작 한 편 완성하고픈 마음이 지금도 간절하고,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가, 글쟁이의 살림이 뻔했다. 두 아들 키우기가 벅찼다. 마침 큰형이 자신의 목욕탕에다 ‘24시간 식당’ 자리를 내주었다. 요식업을 시작한 계기다. 2001년부터 2년 반 동안 남편은 주방 밖, 아내는 주방 안을 챙겼다. 이때 식당의 기본 업무를 익혔다. 안종녀씨는 자신의 음식 솜씨에 눈떴다. “어깨너머로 배워도 바로 따라 할 만큼 솜씨는 있었어요. 간도 곧잘 맞추고요(웃음).”

안씨의 어머니는 동네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시루에 쌀가루와 고물을 안치는 분이었다. “금방 먹는 떡에도 살을 박는다(막 해먹는 떡에도 떡살 무늬를 내어 격식을 갖춘다)”라는 말도 있는데, 안씨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솜씨가 그녀에게 있었다. 하지만 유채림씨에게 요식업은 곤욕의 연속이었다. ‘24시간 영업’이므로 잠은 늘 모자랐고, 글을 쓸 틈은 없었다. 손님 비위 맞추느라 아부도 해야 했다. “사람을 그렇게 대해본 적이 있나. 요식업자다운 마음을 먹기가 절대 쉽지 않았어요. 실은 지금도 그렇고.”

“싸움은 싸움, 난 주방일이 재미있다”

ⓒ시사IN 이명익보쌈, 감자전, 뽕잎칼국수, 만두 등 두리반에서 내놓는 상차림.


고생 끝에 목돈을 모은 부부는 다시 친지의 음식점에서 기술을 더 익히고, 아예 그 음식점을 인수해 2005년 3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167-31번지에서 두리반을 열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문 열고 2년10개월 되던 2008년, 재개발과 함께 소송에 휘말렸고, 한 푼도 못 건지고 내 가게를 잃게 됐어요.”

2009년 12월24일 성탄 전야에 용역은 재개발지구에서 끝까지 버티던 두리반을 때려 부수고, 마침 가게를 지키고 있던 안종녀씨를 마구잡이로 몰아냈다. 그즈음 생활이 안정되면서 안씨는 음식점에 전념하고, 유씨는 잠깐 요식업을 벗어나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출판부장으로 일하며 몇 줄이라도 글을 쓰던 때였다. 12월26일 새벽 2시, 부부는 용역이 친 펜스를 뚫고 들어가 1년6개월이 걸린 농성을 시작한다. ‘두리반 투쟁’의 시작이었다. “펜스를 뜯을 때 아내가 그랬어요. ‘이 가게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는 없다. 죽어도 가게랑 같이 죽고 살아도 가게랑 같이 살겠다. 당신은 아이들 잘 거두어라.’ 아내는 내게 유언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했어요. 우리는 처음이나, 가게 지키려 투쟁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밥집 하는 절실함을 생각하죠.”

다행히 비슷한 처지의 철거민, 문화예술가 등이 연대해 벌인 투쟁이 승리했다. 부부는 재개발 업체로부터 보상을 받았고, 2011년 12월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5번지에서 다시 두리반을 열어 2018년 현재 8년째 영업하고 있다. “싸움은 싸움이고, 난 주방일이 재밌어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일요일 빼고 매일, 가게에 12시간을 붙어 있겠어요?”

가령 안 사장에게는 칼국수와 만두피 반죽에 대한 자신의 기호와 취향이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제안이 주방 인력에게는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안 사장은 잠자코 두리반의 맛을 찾아갔다. 안 사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칼국수의 탄력을 찾기 위해 상대적으로 되게 반죽하고, 끓이는 시간은 조금 더 늘리는 식으로. 여름·한여름·겨울 시기에 따라 미세한 조정도 해보았다. “칼국수 반죽? 밀가루 5㎏에 소금 두 큰술과 물, 끝. 면류 개량제 같은 건 몰라요. 숙성 시간은 여름에는 1시간~1시간 반, 겨울에는 3시간쯤? 질척이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게. 실내 기온이랑, 실외 기온, 습도 이런 데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고. 시간과 양 맞추기만으로는 안 되고, 주방의 온도, 습도, 그날그날 반죽의 상태를 보고 내가 기억한 내 입맛에 맞게 해야죠. 내 마음에 드는 반죽으로 뽑은 칼국수를 손님들이 좋아하면 굉장한 재미가 있어요.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도 들고.”

보쌈을 보자. 지금 가격에 양을 넉넉히 내자니 외국산 냉동육을 쓴다. 하지만 해동과 핏물 빼기에서 빈틈없도록 한다. 연육을 하는 데에도 안 사장의 판단과 선택이 있다. 연육 시간이 너무 길면 고기가 탄력이 없고 부서진다. 안 사장 생각에 좋은 수육이란, 부드러움과 탄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과도한 연육 과정이나 향신료 때문에 고기의 풍미를 날려서는 안 된다. “부드러움과 탄력이 조화를 이루도록 손질해서 삶기. 삶을 때 파뿌리, 후추, 생강이면 충분해요. 다른 향신료로 고기를 덮을 생각 말고. 고기에서는 고기의 맛이 나야죠. 보쌈김치는 고기에 어울리게 아삭아삭함을 유지해야 하니까 장을 자주 보고, 자주 김치를 버무립니다. 그러고 간이 맞아야죠.”

 

 

 

ⓒ시사IN 이명익안종녀(앞)·유채림 부부.
1년6개월 철거 반대 싸움 끝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문을 열었다.

 

만두 이야기도 지나칠 수 없다. 취재진은 처음에 두리반 만두가 ‘굴린만두’인 줄 알았다. 굴린만두란 소를 밀가루나 녹말에 굴리듯 묻혀, 뜨거운 물에 데쳐가면서 피를 감고 또 감는 방식이다. 피가 부드럽고 말갛게 소에 짝 붙는다. 두리반 만두가 딱 그랬다. 한데 취재해보니 굴린만두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맛이 났다. “피에 소를 올리고, 세 번 감아 소를 싸요. 반죽을 조금 질게 해서 피가 잘 늘어나도록. 피는 방망이로 밀어서 펴요. 송편 빚듯 만두를 빚다가 도저히 시간과 개수를 맞출 수 없어서, 피 반죽 밀기, 소 감싸기 기술을 터득했어요. 이 재미가 주방의 재미죠.”

이런 재미가 있다지만 매일 12시간 노동, 가게 밖 노동까지 합해 매일 14시간 가게에 매달리기는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건강도 돌보려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밥집이 점심 장사를 안 할 수도 없고. 사람을 더 쓰자면 음식 값을 올려야 하니….” 점심을 안 하고, 요리와 술에 집중해서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면 매출액은 전처럼 맞출 자신이 있다.

칼국수 한 그릇 이문이 맥주보다 박해

하지만 두리반은 밥집이고, 점심 장사를 안 할 수 없다. 밥집임을 포기할 수는 없다. 휴식이 모자라는 게 가장 큰 고통이다. 유일한 휴식은? ‘퇴근 후 딱 한잔’이다. “일 마치고 유일한 내 시간이 혼자 한잔할 때예요. 술 못 마시는 남편은 그마저도 없지만요. 저는 정말 매일 맥주라도 한 깡통 해야죠. 술 마시는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고, 긴장은 이때만 풀려요. 정말 하루 8시간만 일해도 되면, 술 말고 다른 휴식, 다른 여가생활도 가능할 텐데.”

두리반 사장 부부의 뇌리에는 밀가루 20㎏ 한 포대에 1만6000원 하던 때가 남아 있다. 지금은 2만6000원이다. 오른 물가에 맞추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버는 보람이 있으려면, 좀 쉬려면 음식 값이 올라야 한다. 칼국수 한 그릇 이문이 맥주 한 병 파는 것보다 박한 세상이다. “밥집 하는 부부한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잖아요. ‘소비자’의 생각은 어떤지 제값이란 무언지, 우리는 그걸 좀 묻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거꾸로 질문이 돌아왔다. 말문이 막혔다. 주방에서는 오후 5시 이후 밤 10시까지 영업에 대비한 찬모의 칼질이 한창이다. 유 사장과 안 사장 또한 각기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꼬박 14시간 동안의 일이다. ‘밥집’ 두리반은 그렇게 또 한국 사회의 첨예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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