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 주방장님이라고 하면 되지요?”

“예, 셰프보다 주방장이 편해요.”

유수창 주방장이 손에 물기가 남은 채 식당 밖으로 나섰다. 방금 전까지 메밀 면을 그릇에 곱게 올리던 손이다. 월요일 오후 3시. 보통 식당이라면 한가할 시간이건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요즘 가장 ‘뜨거운’ 막국숫집이다.

고기리장원막국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는 외딴곳에 있다. 대중교통편이라곤 하루 몇 대밖에 없는 마을버스가 전부인데도 온종일 문전성시다. 유수창 주방장이 시간을 내준 때는 월요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다. 면 삶는 물을 갈고, 국숫집의 온 직원이 늦은 점심도 먹는 틈이다.

“노포라면, 이 집이 정말 노포 같아.” ‘몽로’와 ‘광화문국밥’의 박찬일 주방장이 사석에서 이 집에 대해 한 말이다. 그 짜임새와 완성도를 요약한 한마디다. 미식가를 자처하는 이들뿐 아니라 전문 요리사들도 앞다투어 손꼽는 국숫집이다. ‘평양냉면 졸업한 미식가들이 찾는 집’이라는 말도 있다.
 

ⓒ시사IN 조남진유수창 주방장은 막국수를 매일 찬물에 헹궈야 적절한 헹굼의 감각이 몸에 각인된다고 말한다

유수창 주방장과 마주 앉으니 일하는 사람의 손부터 눈에 찬다. 퉁퉁 불었다. 1년에 적어도 300일은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주방장의 손이다.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면을 뽑고, 삶고, 헹구고, 마지막 치레까지 수백 번이다. 통메밀을 빻고 반죽하는 일만 해도 하루에 열 번 이상이다. 이 모든 과정에 손을 대야 막국수 한 그릇이 된다.

손뿐이랴. 유수창 주방장과 그의 아내 김윤정씨(고기리장원막국수 대표)는 해마다 250그릇씩 막국수를 먹는다. 막국숫집 주인이 막국수 많이 먹는 게 뭐 어떻냐고? 끼니로 먹는 게 아니다. 감별과 관리를 위한 ‘노동’이다.

메밀 반죽 한 덩이를 국수틀에 내리면 보통 1인분 300g짜리 7인분이 나온다. 유 주방장은 그 7인분 가운데 첫째부터 넷째, 그리고 다섯째부터 일곱째 그릇의 맛과 질감과 풍미를 구분할 수 있다. 반죽 이후 얼마나 지났는지, 국수 내리는 기계가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 “우리야 날마다 수백 그릇을 만들지만, 어떤 손님에게는 평생의 딱 한 그릇일 수 있잖아요. 누구에게든 최상의 한 그릇이어야 하죠.”
 

ⓒ시사IN 조남진고기리장원막국수의 음식들. 수육과 김치, 비빔막국수, 물막국수, 들기름막국수(가운데부터 시계 방향).

우리가 몰랐던 메밀 향의 진실

말을 하다 말고, 유 주방장이 사발에 연둣빛 감도는 통메밀을 가져왔다. 한 움큼 입에 넣고 심호흡하며 씹어 먹어보란다. 은근한 메밀 향이 퍼진다. 훅 퍼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스며들듯 입안에 향이 번진다. 이 향, 지금껏 우리가 알던 메밀 향과 좀 다르다.

“진짜 메밀 향이란 게 따로 있어요. 구수하다고 해야 할까. 중요한 건 영상 5℃에서 보관한 통메밀을 빻아서 바로 만들지 않으면 향이 담긴 국수를 드시기 어렵다는 거예요. 빻고 나서 하루 이틀만 지나도 아주 달라요. 제분도 한 번에 많이 하면 안 돼요. 제분기가 과열되어도 메밀 향이 날아가거든요. 주방에서 일을 자주, 많이 할수록 맛있는 국수가 나와요.”

이번에는 유 주방장이 이날 직원들 간식으로 준비한 냉면 사리를 가지고 왔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갈색빛 도는 냉면 사리다. “냄새를 맡아보세요.” ‘냉소다’ 즉 면류 개량제 냄새가 확 번진다. 면류 개량제는 사리에 윤기와 탄력을 더하는 첨가물이다. 취재진이 “붕어빵 냄새네요” 하자 유수창씨가 이런 말을 꺼낸다. 전국의 ‘면스플레이너 (냉면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꽤 놀랄 만한 이야기다.

“우리가 보통 메밀 향이라고 여기는 게 이 냉소다 향일 경우가 많아요. 냉면집에서 나오는 면수(면 삶은 물)에도 이 냉소다 향이 배어요. 우리 집 막국수는 메밀 향이 왜 이렇게 흐리냐고 하는 손님도 있는데, 냉소다 향을 메밀 향으로 착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사IN 조남진영상 5℃에서 보관하는 통메밀.
ⓒ시사IN 조남진메밀 반죽 한 덩이로 한 번에 7인분만 뽑는다.

메밀 사리는 거뭇거뭇 거칠어야 하고, 잇몸으로도 끊겨야 한다는 것 역시 ‘편견’이라고 김윤정 대표가 거든다. 메밀껍질을 까고 제분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뭇거뭇한 사리 대신 뽀얗고 말끔한 메밀가루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밀가루 국수에 견주어 힘이 덜하긴 하지만 갓 만든 메밀국수라면 적당한 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집만의 비법 같은 건 없어요. 좋은 재료를 잘 보관해서, 그때그때 만들어내는 것이죠. 전국 막국숫집이 다 아는 방법일 겁니다. 육수요? 마찬가지예요. 소뼈, 다시마, 무, 파, 양파, 마늘, 끝. 적절해야죠. 메밀 사리와 조화를 이루도록 가볍고 개운해야죠.”

이 집의 또 다른 명물인 돼지고기 수육도 비법은 따로 없다. 오전 9시30분부터 삶기 시작해서 개점 직후에 식탁에 올릴 뿐이다. 하루 한 번이 아니다. 수육 또한 네 번에서 여섯 번을 그때그때 삶는다.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30분은 뜸을 들여야 맛있는 수육이 완성된다.

유수창 주방장은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경제학과에 들어갔다가, 다른 나라 돌아가는 게 궁금해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일본 한 대학의 상학연구과에서 공부하면서 요식업 경영 공부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한국은 오래된 음식점 주인들이 자기 자식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들 할 때다.

“일본은 달랐어요. 오래된 집은 그 나름의 품이 있고, 동네 작은 가게에는 활력과 개성이 있고. 음식 제대로 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우받더라고요. 당시 IMF 사태를 전후해서 한국에선 외국 음식을 베끼는 게 유행이었어요. 그런데 기품이나 개성까지 베낄 수 있었겠어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그는 배운 대로, 느낀 대로 요식업에 몸담기로 결심했다. 이후 실습을 거쳐, 2001년 서울 압구정동에 이자카야(일식 주점) ‘니와(庭)’를 열었다. 이태원의 유명한 이자카야보다 앞선 창업이었다.

손님들은 맛있다고 했지만 일의 강도와 취객 상대하기가 만만찮았다. 처음부터 칼을 잡은 것도 아니다. 관리자로 시작했는데, 주방장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서 칼을 잡게 되었다. 그래도 장사는 잘되었다.

하지만 문득 회의가 들었다. 미래가 두려워졌다. 60세가 넘어서도 이 일이 가능한가. 힘든 만큼 휴일은 제대로 쉬고 싶었다. 아내 김윤정씨와 강원도를 자주 다녔다. 강원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부부가 워낙 국수를 좋아하기도 했다. 국숫집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맴돌았다.
 

ⓒ시사IN 조남진고기리장원막국수 유수창 주방장(왼쪽)과 김윤정 대표. 부부는 막국수 연구와 품질 개선을 멈추지 않는다.

“‘올 때마다 맛있다’가 최고의 칭찬”

2011년 때마침 강원도 홍천 장원막국수에서 ‘기술’을 전수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설 기회다 싶었다. 6개월쯤 출퇴근하면서 막국수를 배운 끝에 지금 이 자리에 막국숫집을 열었다. 2012년 5월이었다.

시작부터 장사가 잘되었을 리 없다. 초기에는 몇 그릇 팔지도 못하고 문을 닫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그럴 때도 부부는 막국수 연구와 품질 개선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막국수를 맛보며 평가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들였다. 그 노력이 정점에 달한 어느 순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뿌린 대로 거둔 셈이다.

유 주방장에게 가장 큰 칭찬은 ‘올 때마다 맛있다’라는 말이다. 갈 때마다 품질이 오락가락하면 최악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영혼은 음식업이랑 맞지 않을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음식점 경영’이란 “내가 찾은 적정한 규모에서 한 우물을 파는 것”이다. 업계 최고의 막국숫집이 분점을 열자거나, 홈쇼핑에서 판매해보자는 유혹을 지금껏 뿌리친 이유다.

고기리장원막국수는 올해 안에 다른 곳으로 옮긴다. 전체 공간은 훨씬 넓어지지만, 탁자 수는 열두 개에서 열 네 개로 늘리는 게 고작이다. 유 주방장의 관심은 온통 통메밀, 고기, 채소 전용 창고와 주방 공간을 확충하는 데만 있다.

부부 사이에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다. 얼마 전 아이들이 학교 담임교사에게 장래 희망이 국숫집 주인이라고 말했단다. 뜻밖에 부부도 아이들이 국숫집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아이들이 안 한다면 서운할 것 같아요. 제일 부러운 음식점이 뭐냐면 삼대가 함께 찾는 오래된 음식점이에요. 그렇게 10년, 20년 세월이 흘러 저 스스로 이 가게의 풍경이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막국수를 주문했다. 이 집의 자랑거리인 들기름막국수부터 비빔막국수까지. 그때그때 삶아 내는 돼지고기 수육도 빠질 수 없다. 한 젓가락 입안에 밀어 넣자마자 구수함이 피어오르고, ‘과연 제대로다’ 하는 감탄이 터진다. 사리, 양념, 육수, 고명 모두 빈틈이 없다. 오늘도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빚어낸 막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정리·이오성 기자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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