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차, 이거 무던하다, 이 더운데 설렁탕만 먹는 사람들도 있나.” 설렁탕 잔뜩 올린 목판을 받쳐 든 이가 한 손으로 자전거를 몰고 배달 길에 나섰다. 위태위태하던 배달 자전거는 아니나 다를까, 마침 마주 오던 ‘구루마’와 맞부딪친다. 만화 첫 칸에서 헤아려보니 열 그릇도 넘어 보이는 설렁탕 뚝배기가 그만 “깨박을 치고” 만다. 박살이 났다는 소리다. 배달부는 분풀이로 손수레를 뒤엎는다. 〈조선일보〉 1925년 8월19일자 연재만화 ‘멍텅구리’의 ‘설렁탕 배달’ 편이다.
날 추우면 더 생각나는 설렁탕이지만 그때 식민지 조선의 경성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기어코 설렁탕을 먹었다. 배달도 자주 시켰다. 〈동아일보〉 1926년 8월11일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렁탕’ 하면 서울(京城)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그래서 서울 큰 골목 쳐놓고 설렁탕 팔지 않는 곳이 없다. (···)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렁껄렁한 음식점이다.”
설렁탕에 관한 쓸 만한 사진이나 모식도 한 장 없어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제24호에는 “설렁탕을 일반 하층계급에서 많이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아무리 점잔 빼는 친구라도 조선 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 이상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을 괄시하지 못한다”라는 소리도 나온다. ‘설렁설렁’의 당시 표기는 ‘설녕설녕’이다. 당시에는 설렁탕을 설농탕, 설롱탕, 설넝탕 등으로 썼다.
당시 ‘신가정’에서는 하루에 설렁탕을 두 차례씩 먹기도 했다. “양식집 들락거리다가 돈 떨어지고, 아침에 늦잠을 자고 나니 속은 쓰리지만 찬물에 손 넣기가 싫으니까 손쉽게 설렁탕을 주문”한다. 밥을 지어 먹지 않고 다시 설렁탕을 사다 먹는다. 〈매일신보〉 1935년 5월7일자에는 한 설렁탕 배달부가 “우리 배후에는 300여 명의 싸움패가 있다”라고 호언하는 모습도 나온다. 경성 요식업에서 설렁탕의 비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오늘날까지도 설렁탕은 대도시 요식업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누구나 설렁탕 한 그릇이 간절한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설렁탕과 관련한 최근 100년의 자료 가운데,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은 자료가 너무 드물다. 그 대단하던 경성 설렁탕집 전경은 명확한 그림 또는 사진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앞서 말한 〈별건곤〉의 설렁탕 ‘먹방’은 이런 소리도 했다. “설렁탕은 물론 사시에 다 먹지만 겨울에 밤·자정이 지난 뒤에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웅숭그리고 설렁탕집을 찾아가 (…) 그대로 척 들어서서 ‘밥 한 그릇 주’ 하고는 목로 걸상에 걸터앉으면 1분이 다 못 되어 기름기가 둥둥 뜬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앞에 놓여진다. 파·양념과 고춧가루를 듭신 많이 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무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없다.”
이만한 관능 묘사에 값하는 장면을 오늘날 볼 수 없다니 섭섭하다. 일제강점기 내내 유명했다던 장교정(오늘날 서울 중구 장교동) 설렁탕집 간판이 〈동아일보〉 1924년 7월13일자에 한 장 실려 있긴 하지만 그 세부가 독자 여러분께 내밀 정도가 아니다. 설렁탕 자료를 찾다 못 찾으니 오늘이 달리 보인다. 2018년 현재 한국인은 설렁탕에 관한 쓸 만한 사진이나 모식도를 한 장 가지고 있는지. 구글과 네이버 검색창을 번갈아 드나들지만, 같은 자료로 ‘복붙’한 뻔한 이미지 일색이다. 넘쳐나는 ‘먹방’ 이미지 말고, 조리 기술과 완성도의 실제를 포착한 옛날 사진 한 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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