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초밥집 하나를 찾느라 혼잡한 골목길을 헤맸다.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 55번길 13번지. 용두산공원과 BIFF 거리 사이이고 자갈치시장이 코앞이다. 광복로 뒤쪽 골목길은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다. 지금은 구도심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한때 이곳 반경 2㎞ 안에 시청, 법원, 검찰청, 대학병원이 모여 있었다. 삼송초밥은 그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1968년 개업한 이래 같은 자리, 같은 건물이다.

반세기를 지켜온 노포의 주방장은 뜻밖에도 1981년생 젊은이다. 주강재 요리사는 이곳에서 막내뻘이다. “주방의 조승길 부장님이 79세, 김대수 이사님이 73세예요. 두 분 다 10대에 칼을 잡으셨어요. 어머니 오난숙 사장님이 70세인데 이곳에서 수많은 일식 요리사를 교육하고 배출한 요식업의 대선배시죠.”

식당이 한가하다 싶은 오후 시간이었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오후 4시 반부터 주방은 이미 발동이 걸렸고, 5시가 되니 손님이 하나둘 든다. 주방장 찾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집의 명물 후토마키(김초밥) 주문도 이어진다. 후토마키는 요즘 일본에서도 제대로 하는 데가 드물다는 에도식 굵직한 김초밥이다. 계절에 맞는 푸른색 채소로 청(靑), 달걀말이로 황(黃), 분홍색 물을 들인 광어 보푸라기(오보로, 朧)로 적(赤), 쌀밥으로 백(白), 간장과 설탕에 조린 박고지(간표)로 흑(黑) 이렇게 색을 맞춘다. 눈으로 먼저 먹는 화려한 연회 음식이다. 특히 오보로는 국내에서 제대로 만드는 곳을 찾기 힘든 식재료다.

ⓒ시사IN 조남진굵직한 ‘에도식’ 김초밥인 삼송초밥의 명물 후토마키. 위는 주방장인 주강재 요리사.


“오보로는 원래 대구 살로 했는데….” 주방에서 돌아와 취재진과 다시 마주 앉은 주강재씨가 설명을 잇는다. “실한 대구가 잘 잡히지 않으면서 광어 살로 바뀌었습니다. 간표는 계속 국물을 끼얹으며 조려야 합니다. 주방에서 힘들어하는 일 가운데 하나죠. 오보로도 찌고 체에 내려서 물을 들이기까지 하루가 꼬박 걸립니다. 달걀말이도 100겹에서 120겹을 말아요. 얇은 막 켜켜이 공기가 들어가야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물성이 잡히죠. 대충 크게만 말았다가는 퍽퍽해서 못 씁니다.”

이 기술이 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인터넷과 유튜브 검색으로 못 찾을 기술은 없다. 하지만 현장의 감은 분명히 따로 있다. 마지막으로 접시에 담겨, 손님 앞에 음식이 나가기까지 질감과 풍미의 미세한 변화까지 주의하는 세심함, 사람이 사람한테 전해야 하는 감이 있단다. “가령 요즘 숯불 야키도리(일식 닭꼬치)집이 유행이잖아요.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70대 선배는 과거 숯불 화로로 모든 요리를 만들던 경험이 있어요. 숯불에서 시작해 조개탄, 석유, 가스, 전기 다 경험한 노하우입니다. 이분은 숯불이 요즘 열원과 비교해서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고 계시죠. 이런 분과 함께 일하면 낡아서 더 안 쓸 줄로만 알았던 기술도 쓸 데가 생깁니다.”

한국의 일식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 소수가 즐기던 일식 요릿집 시대를 지나, 이제 초밥과 이자카야 전성시대다. 주강재씨는 시대에 맞춰 요리를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그만큼 예전 방식과 맛을 지키는 것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변화와 지키기 사이에서 그가 떠올리는 말은 ‘정중동(靜中動)’, 곧 고요함을 해치지 않는 차분한 변화다. “10년 전에는 후토마키가 너무 낡은 느낌이라고 해서 뺄까 고민했죠. 그랬다가는 곤란할 뻔했습니다(웃음).” 지금 삼송초밥의 후토마키는 가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해마다 화제를 더하고, 전국의 손님은 물론 일본인 손님까지 불러 모으고 있다. “대표 음식과 전통적인 조리법을 지키자는 생각. 아마도 그것이 우리 가게와 후토마키를 키워온 동력이었을 겁니다.”

 

ⓒ시사IN 조남진삼송초밥의 일식 요리사 조승길 부장(79), 김대수 이사(73·아래)는 10대에 칼을 잡았다.


주강재씨는 자신의 경우를 한마디로 ‘가게가 요리사를 만들었다’고 요약했다. 그는 본래 가업과 다른 길을 걸었다. 한때 영어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2007년 이후 부산의 유명 일식당과 미국의 일식당을 경험했지만, 일손이 부족해 고생하는 부모를 돕기 위해 돌아온 뒤에야 부산 일식의 세계, 요리의 세계에 눈떴다. “2010년 정식으로 입사하고 나서야 알았어요. 음식 또는 접객이 전부가 아니다. 요식업이란 내 수련의 결과로 손님이 구체적으로 만족해야 하는 ‘종합예술’이다.”

‘부산 색’ 입힌 음식을 찾고자

대를 이어 찾아주는 손님께 고마움을 느끼고 나니 가게에 대한 책임감이 따라왔다. 후토마키도 사실 머리가 하얗게 센 손님이 찾고, 그 자녀들이 대를 이어 찾아서 유지된 음식이다. 그러니 더욱 부산의 지리와 문화가 반영된 음식으로 ‘부산 색’을 찾고자 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부산은 앞바다부터 낙동강 하구에서 나는 수산물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지역입니다. 기장의 미역과 다시마, 청게와 갈미조개, 재첩, 보리새우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지역 수산물이 있어요. 명지동 청게와 대파, 짭짤이 토마토는 늘 머릿속에 있습니다.”

부산의 계절감도 음식에 살리고 싶다. “봄날의 멸치와 새조개, 여름 부시리·전갱이·은어, 가을 보리새우, 겨울 복어를 잘 쓰면, 한 계절에는 집중력을, 한 해에는 화려한 변주를 할 수 있죠. 복요리는 일으켜 세우고 싶어요.”

그가 전수받은 복요리도 다양하다. 복회와 복냄비(뎃치리)가 기본이다. 복냄비는 일품요리로서 집중력이 있고,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변주가 가능하다. 맑은 국물에 계절 채소와 복어 살을 데쳐 먹다 마무리로 밥을 푹 끓여 먹거나 찹쌀떡을 넣어 먹는다. 복구이는 갈비 부위에서 정소(이리)까지 알뜰하게 쓴다.

 

ⓒ시사IN 조남진삼송초밥 상차림


정소를 넣은 술은 시라코사케 (白子酒)라 부르는데 지느러미를 태워 향을 입힌 술인 히레자케(鰭酒) 못잖은 명물이다. 간장에 절여서 며칠씩 말린 복어포까지 곁들이면 그 자체로 완벽한 앙상블이다. 그런데 실험과 시도를 가로막는 한 시대의 풍속이 없지 않다. “계절과 기후에 따라 음식과 차림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계절감을 살리고 식재료 수급 변화에 따라 임기응변할 줄 아는 음식점일수록 차림이 늘 바뀌죠. 인터넷 검색 이미지 그대로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손님들 가운데는 ‘왜 인터넷에서 본 대로 안 나와요?’라며 따지는 경우가 있어요.” 인터넷 사진과 다르면 ‘틀렸다’ ‘속인다’고 한다. 흠잡고 평가하느라 즐기지를 못한다. ‘나는 왜 인터넷에 나오는 거 안 줘요?’를 외치는 풍경은 요식업의 기본을 망가뜨린다. SNS에 올리기 좋은 화려하고 비싼 식재료만 높이 쳐주는 세태는 요리사로 하여금 음식 수련보다 ‘마케팅’에 치중하도록 만든다.

이런 세태는 주방에서 견습생과 선배들의 엇갈림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대중매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만날 화려하고 만날 신이 난 요리사의 삶을 상상하며 주방을 넘보는 요리사 지망생들 말이다. “오자마자 초밥을 쥐겠다는 분도 있어요. 몇 달만 배우면 초밥을 쥘 수 있다? 쥐기야 쥐죠. 그런데 자전거 탈 줄 안다고 다 프로페셔널 자전거 선수는 아니잖아요. 요리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한테 배워서 익힐 일입니다. 칼질뿐만 아니라 장보기, 설거지, 청소, 거래처 관리, 손님맞이 등 모든 과정 속에 수련의 급소가 숨어 있어요. 단계마다 제 몫을 하려면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생략은 없어요.”

일식당 특유의 위계와 짜임도 있다. 일식당 주방장은 ‘싱’ 또는 ‘오야붕’이라 불리며 주방에서 엄한 관리자 노릇을 했다. 주방장에게는 부장급의 인력이 붙고, 그 아래 다시 ‘무코이타(생선을 취급하는 파트)’로 불리는 인력이 배치된다. 흔히 ‘무꼬이다’라고 한다. 손님들이 상상하는 일식당 풍경이란 곧 이들이 바(bar) 너머에서 칼질하고 음식의 치레를 하는 모습이다.

 

ⓒ주강재 제공간장에 절여서 며칠씩 말린 복어포, 지느러미를 태워 향을 입힌 술 히레자케(鰭酒).


튀김·구이·국물·찜 등 불을 쓰는 요리는 잘 보이지 않는 뒤쪽 주방에서 이루어진다. 1960년대까지 일식당은 숯불로 요리를 했다. 뒤쪽 주방의 책임자, 또는 주방 시설을 ‘간테키’라고 했는데 이는 ‘풍로’를 뜻한다. 간테키 아래로 보조 인력, 채소 다듬는 인력, 그리고 막내가 배치되었다. “이 세계는 함부로 생활할 수 없습니다. 청소에서 출발해 오야붕이 될 때까지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합니다. 핵심은 ‘절제’ 아닌가 싶어요. 절제가 없으면 끝입니다. 솔직히 저도 제 또래만큼 놀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제 쥔 초밥보다 오늘 쥔 초밥이 나아야 하니 게으름 못 피웁니다.”

지난 50년 동안 삼송초밥은 화려한 시대를 거쳐왔다. 부산은 물론 전국 일식 요리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고, 내로라하는 장안의 유명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다음 반세기를 열어갈 젊은 요리사의 바람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색깔이 부산의 문화 및 지리와 손잡고 한층 깊어지는 꿈을 꾼다. “오보로를 만들면서 생선 보푸라기의 질감과 맛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복어를 만지면서 일본 복냄비와 한국 복국 그리고 복수육 사이의 차이점을 따져봅니다. 저는 이것이 재미있습니다. 자꾸 시도하다 보면 앞서 말씀드린 부산의 여러 식재료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여지도 더 생기겠지요.”

이야기의 막판, 드디어 삼송초밥의 초밥과 후토마키가 상에 오른다. 잘 숙성된 횟감과 밥의 조화가 일품이다. 점·선·면이 딱 맞아떨어지는 후토마키는 마치 디저트처럼 화사하다. 적당한 새콤함과 달콤함, 제대로 만든 오보로의 맛이 어우러진다. 이윽고 맑은 배추생선탕이 나온다. 노란 배춧속과 녹색 이파리가 빛깔을 더한다. 푹 곤 생선뼈 국물의 구수한 향도 은은히 올라온다. 아주 오래 전부터 먹어온 노포의 맛이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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