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노가다’를 택한 중년 기자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돌베개, 2023)는 빈곤가정의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마주한 문제를 밝힌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16년부터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 여섯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스무 살이 넘도록 심층 면담을 거듭했다(2018년에 특성화고 출신 청소년 두 명이 추가되어 총 여덟 명이 되었다). 지은이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빈곤층의 삶을 팔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스스로 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잘살고 싶으면 ‘왜?’를 물어라, 왜? [여여한 독서] 김이경 (작가) 나가이 레이가 쓴 〈물속의 철학자들〉을 읽었다. 문어처럼 인지능력을 가진 수중생물 이야기인가 하고 펼쳤는데 아니었다. 철학 대화 활동가이면서 전문 연구자인 젊은 철학도가 “일상에 흘러넘치는 철학”에 대해 쓴 책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철학책,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읽다가 버스를 놓쳤다. 차를 놓칠 만큼, 놓쳐도 속상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말꼬리를 잡는 소크라테스가 밉살맞으면서도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계속 읽었지. 맞아, 그때는 철학이 재미있었다. 왜 사는지, 왜 살아야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제는 끝내기 위해 [여여한 독서] 김이경 (작가)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올해가 정전 7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한국전쟁 관련 책을 읽기로 했다. 이런 식의 의미 부여가 아니라면 그 무겁고 무서운 역사에서 계속 눈을 돌릴 테니까. 여러 책 중 인류학자 권헌익이 쓴 〈전쟁과 가족〉을 골랐다. 박완서의 소설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보고 쉬 읽겠지 했는데 웬걸, 300쪽을 읽는 데에 일주일이 걸렸다. 문학·역사학·철학·정치학·인류학 등을 넘나드는 저자의 너른 지식이 버겁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설·영화·일기·문집·증언 등 다양한 자료로 전하는 전쟁의 경험을 마주하기 금융은 ‘좋은 삶’과 어떻게 연결될까 [기자의 추천 책] 전혜원 기자 바야흐로 금융의 시대다. ‘금전을 융통하는 것’을 뜻하는 금융은 우리 시대 뉴스의 첫머리를 늘 장식하는 주제다. 그러나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의 단어를 들으면 느낌이 어떤가? 혹시 노력해서 뭔가 가치 있는 걸 만들어내지 않고 이자나 보험료를 뜯어서 돈을 버는 의심스럽고 탐욕적인 존재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금융은 무언가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비정한 월스트리트 혹은 여의도에 고립된 그들만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돈을 빌리거나 보험금을 타는 이들도 썩 도덕적이고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 〈시사IN〉 기자 추천 ‘방콕 정주행’ 콘텐츠 시사IN 편집국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7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가 올해 추석에 귀성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설문에서 57.7%가 귀성을 포기한다고 답했는데, 2년 연속 귀성 포기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집에 머물 시간이 많은 추석이다. 〈시사IN〉 기자들이 ‘방콕 정주행’에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타이완 드라마, 자연 다큐멘터리, 스포츠 소재 다큐·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등 각자의 취향을 담았다. 랜선을 통해 세상과 감동을 만나는 추석 연휴가 되기를 소망 운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을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신년에 한 해 운세를 보는 사람이 많다. 동양에서만 운(運)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스티븐 D. 헤일스의 〈운이란 무엇인가〉(소소의책, 2023)에 따르면 운은 서양에서도 중시되어왔다. 그리스에서는 운을 티케(Tyche)라는 신으로 의인화하여 숭배했고, 그것이 로마로 건너가서 포르투나(Fortuna)가 되었다. 티케도 포르투나도 남신이 아닌 여신이다.고대인의 유비(類比)적 사고방식은 운명의 예측 불가능성을 여성의 변덕스러움과 연결시켰고, 여성처럼 사랑해주면 운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운을 로봇과의 섹스가 ‘뉴 노멀’이 되기 전에 [평범한 이웃, 유럽]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장안의 화제인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에게 물었다. “나는 외로워. 대화하거나 섹스할 누군가가 필요해. AI 섹스 로봇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챗GPT가 답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고 해결책을 찾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AI 섹스 로봇이 어느 정도의 우정이나 육체적 쾌락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인간관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외로움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이슈죠. 그걸 해결하려면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구하거나, 전문가를 찾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AI는 우리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BIS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바젤탑아담 레보어 지음, 임수강 옮김, 더늠 펴냄“BIS는 설립 첫날부터 중앙은행의 이익을 확대하고 초국적 금융구조를 세우는 데 전념해왔다.”‘BIS 비율’은 한국에서도 낯선 용어가 아니다. ‘은행 건전성’을 가르는 기준으로, 주요국의 통화량과 시민들의 경제생활을 좌지우지한다. 여기서 BIS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의 약칭이다. 책의 주인공인 BIS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지만 비밀스러운 조직이기도 하다. 소수의 이사들이 다스리지만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 BIS의 역사를 인물과 ‘오은영 월드’에서 위로받으셨나요? 임지영 기자 #1. 초등학교 2학년 ‘금쪽이’는 행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길 가다 화단의 꽃을 뽑고, 학교 화장실 변기에 비누를 넣어 막히게 만든다. 항의 전화를 받는 게 부모의 일과다. 금쪽이는 ‘복합성 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 충동이 일 때 잠깐 멈춰 3초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생각하는 의자’ 처방을 받기도 했다.#2.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의 고민은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도 마취가 풀리자마자 라이브 방송을 했다. 누가 봐도 무리한 강행군의 이면에는 자살한 어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킨 경험이 있었다. 워 “우리 모두 ‘뉴스 안식일’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미디어 리터러시] 오세욱(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지난 주말, 원고 마감을 해야 한다는 점도 까먹고 미친 듯이 게임을 했다. 한때 나를 지배했던 〈디아블로〉가 모바일 버전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예상대로 주말은 그대로 사라졌다. 체력이 안 되기 때문에 중간중간 게임을 쉬면서 그동안 못 챙긴 드라마들도 몰아서 봤다.정신을 차려보니 월요일 새벽이었다. 그때 문득 지난 주말 내내 뉴스 한 꼭지도 보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났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언론 전공으로 학위까지 받은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한 글자의 뉴스도 보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식물은 홀로 어른이 된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게으른 식물은 없다오병훈 지음, 마음의숲 펴냄“모든 식물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코로나로 격리 생활을 했던 친구에게 지인들이 보내준 위로 선물 중 ‘꽃’이 가장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집 앞에 배송된 화사한 꽃을 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는 거다.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여린 식물이 어엿하게 자라난 모습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낀다.저자는 전국을 누비며 잊혀가는 식물들의 생장과 역사를 기록했다. “금낭화는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해 돌 틈이나 개활지에서 자란다.” “추사는 수선화를 해탈한 신선으로 묘사한 자매애와 연대, 여성 서사의 중심에 서다 임지영 기자 20년 지기 친구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차미조는 ‘친구의 남자’를 찾아가 오열하며 말한다. “죽일 거야. 너 내가 죽일 거야.” “너 때문이고, 나 때문이야.” 친구 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뒤에도 만남을 이어가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계기가 차미조 본인이기 때문이다. 차미조·정찬영·장주희는 열여덟 살 때부터 친구다. 장주희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셋이 돌아가며 밤마다 간병을 했다. 이제 정찬영이 아프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서른아홉 살의 세 친구는 ‘신나는 시한부’를 목표로 [연휴 정주행 추천 콘텐츠] 혹시, 당신도 ‘상친자’ 인가요? 전혜원 기자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7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가 올해 추석에 귀성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설문에서 57.7%가 귀성을 포기한다고 답했는데, 2년 연속 귀성 포기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집에 머물 시간이 많은 추석이다. 〈시사IN〉 기자들이 ‘방콕 정주행’에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타이완 드라마, 자연 다큐멘터리, 스포츠 소재 다큐·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등 각자의 취향을 담았다. 랜선을 통해 세상과 감동을 만나는 추석 연휴가 되기를 소망 [20대 여자 현상] “약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차별받고 있다” 김은지 기자 지난 4·7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과 언론은 ‘20대 남자 현상’에 주목했다. 방송 3사가 참여한 공동예측조사위원회(KEP)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무려 72.5%에 달했다. 60세 이상 유권자(남성 70.2%, 여성 73.3%)와 비슷한 수치다. 패배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20대 남성 유권자를 의식하며 ‘남녀평등 복무’ 같은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숫자가 있다. 15.1%.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투표를 한 20대 여성의 100명 중 15 한달 새 같은 골목에서 ‘불행한 죽음’ 이어진 이유 주하은 기자 서울시의 한 다세대주택 문 앞. 철제 대문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벽돌 외벽은 빛이 바래 있었다. 이 집 앞으로 온 우편 두 통은 모두 채권추심 업체에서 보낸 통지서였다. 지은 지 18년 된 이 다세대주택의 12평(39.6㎡) 남짓한 집 안에서 기초생활자 구 아무개씨가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 일시는 알 수 없었다. 홀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8월3일 오전 10시경, ‘냄새가 난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구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은 7월30일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한 상 [PD의 생존일기]“제가 당한 게 가스라이팅인가요?” 김진주 PD 2021년 6월24일 목요일친구가 연인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가스라이팅이 뭐지? 검색해보니 ‘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정서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행위’란다. 그런데 ‘조작’이나 ‘조종’ 등의 단어를 어떤 무게로 보느냐에 따라 가스라이팅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에 따르면 ‘왠지 몰라도 결국 항상 그 사람 방식대로 일이 진행’되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볼 수 있다.가스라이팅의 판별 기준은 무엇일까. 인터넷에는 자신의 경험이 가스라이팅에 해 저는 이따금씩 뇌가 오작동하는 사람입니다 이오성 기자 치매 환자가 책을 쓴다. 차분히 그리고 꼼꼼하게 자신의 삶과 발병 이후 마음과 몸의 상태를 직시하는 글을 쓴다. 치매를 앓는 사람이 책을 쓸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또한 치매에 대해 가진 무수한 편견 중 하나다. 일본인 히구치 나오미 씨가 쓴 〈오작동하는 뇌〉(다다서재 펴냄)에는 그런 편견에 맞서 살아온 한 사람의 생애가 흐르고 있다.우리는 치매에 대해 ‘대충’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치매(癡呆)라는 말부터 그렇다. ‘어리석고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멸시의 뜻을 담고 있다. ‘문둥병’을 한센병으로 바꾼 것처럼 치 박정희·국방부가 버린 경상도 사나이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자행된 비인도적 국가폭력의 상처는 상상보다 깊었다. 베트남전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이 당한 간첩조작 사건 수난 기사가 나간 뒤 경상북도 경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1971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김인식 대위의 조카 김준표씨였다. 그는 삼촌의 생사만이라도 아는 게 소원이라며 기자에게 김인식의 육사 졸업장과 졸업 앨범, 소위 임관장 등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육사 졸업 앨범에는 김인식을 ‘강인한 체력, 폭넓은 인간관계, 사나이의 배짱을 한 몸에 독차지한 경상도 사나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모범적 신화적 시선으로 세상사 이해하기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정인이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양모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 입양 절차를 보강해야 한다, 입양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해당 입양 기관의 이름이 전철역에 붙어 있어서 늘 의아하기는 했다. 이런 광고 행위는 기업과 상품의 이미지 제고, 이윤 확대가 목표 아닌가. 뭐, 내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겠지. 그보다 마음 쓰이는 것은, 양부모를 포함해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이는 거기에 어떻게 붙잡히는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친부의 성폭력과 친모의 방관, 훈육과 교육을 표방한 엄 ‘비혼 출산’ 열광하는 청년 세대에게 가족이란? 임지영 기자 11월14일 일본 출신의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출산 소식을 알렸다.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는 근황을 전한 그의 SNS 글에 일주일 만에 댓글 3800여 개가 달렸다. 대부분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댓글 속 누군가는 그의 선택을 두고 ‘한국 여성이 속으로만 삼켰던 질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정자를 기증받는 게 불가능해 일본으로 건너가 출산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도 활기를 띠었다. 비혼 출산이라는 유명인의 결정에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의 지지가 이어졌다.결혼을 생략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