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일 기초생활수급자 구 아무개씨가 고독사한 다세대주택 내부. ⓒ시사IN 조남진

서울시의 한 다세대주택 문 앞. 철제 대문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벽돌 외벽은 빛이 바래 있었다. 이 집 앞으로 온 우편 두 통은 모두 채권추심 업체에서 보낸 통지서였다. 지은 지 18년 된 이 다세대주택의 12평(39.6㎡) 남짓한 집 안에서 기초생활자 구 아무개씨가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 일시는 알 수 없었다. 홀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8월3일 오전 10시경, ‘냄새가 난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구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은 7월30일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사인은 병사로 추정됐다. 타살 또는 자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고인의 건강상태가 평소에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신은 수습돼 인근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유일한 연고자인 형이 지방에서 올라와 장례를 치렀다.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구씨는 과거 노숙 생활을 했다. 2010년 7월 서울의 한 무료 급식소에서 노숙인 자활단체 ‘빅이슈’를 알게 된 그는 새 삶을 시작했다. 〈빅이슈〉 판매원으로 활동하며 지하철역에서 잡지를 팔았다. 포기와 재도전을 반복했지만 자활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2018년 1월, 그는 빅이슈의 도움을 받아 집을 빌렸다. 그해 8월 구씨는 〈빅이슈〉 판매원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그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로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해 생활했다. 올해 기준 그가 받던 수급액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합쳐 월 68만6190원이었다.

구씨의 생전 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몇 주민이 그의 남루한 행색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구씨가 종종 들렀던 슈퍼 주인은 그를 ‘절대 고독 상태에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구씨의 평소 행색이 노숙인 같아서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 걸었다. 사교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한테 먼저 말을 걸지도 못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고립된 생활을 하던 구씨는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했다. 그가 주로 시간을 보내던 곳은 지하철역 계단이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접촉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병이 있는 구씨에게 병원에 가라고 설득하고, 쓰레기가 가득한 그의 집을 치우고 소독하기도 했다. 지하철역 인근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도 주민센터 직원이었다. 하지만 주민센터 직원들의 노력도 그의 쓸쓸한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구씨의 죽음이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은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가 사망하기 한 달 전인 7월5일,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일가족 3명이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생활고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집 안에선 불에 탄 숯이 발견됐다. 집주인에게 월세 인하를 요구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일가족이 생을 마감한 곳은 구 아무개씨의 집과 같은 골목에 위치한 다가구주택이다. 골목 초입에서 두 번째 건물이 구씨의 집, 다섯 번째 건물이 일가족의 집이다.

같은 지역에서 ‘불행한 죽음’이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역에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관계가 끊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해당 행정동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는 2020년 기준 1800명에 이른다(지역에 대한 편견을 우려해 기사에서 동명을 특정하지 않았다). 서울 전체 평균인 869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집값이 저렴하고 공공·민간 임대주택이 많기 때문에 빈곤한 사람들은 이 동네에 밀집해 거주한다. 그에 비해 행정력은 부족하다. 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은 15명이다. 한 사람이 120명가량을 맡은 셈이다.

대표적 주거 취약 지역인 서울의 한 동네. 7월5일과 8월3일 ‘불행한 죽음’이 연이어 일어났다. ⓒ시사IN 조남진

주민센터 관계자는, ‘일손 부족’은 고독사 원인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꼽는 또 다른 원인은 ‘1인 가구의 증가’다. 1인 가구 증가가 시대적 흐름이지만 취약계층에서는 더욱 도드라진다. 여러 이유로 가족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행정동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약 80%는 1인 가구다. 전체 주민 평균인 51%를 크게 웃돈다. 노부부 등의 2인 가구를 포함하면 90%에 이른다. 주민센터가 취약계층을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복지의 빈틈은 채워지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면 말이라도 좀 하려고”

지역 커뮤니티가 그 빈틈을 채워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동네 공동체’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전제해야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세입자로 사는 경우가 많은 빈곤층은 자주 이사를 다닌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는 터줏대감이 되어 빈곤층을 지켜보고 주민센터에 소식을 전해줄 만한 사람이 부족하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관에서 모든 사람을 24시간 지켜볼 순 없다. 취약계층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곳엔 오래 정주하는 사람이 적어서 그러한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로부터도 주민센터 관계자와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앞서의 슈퍼 주인은 구씨처럼 고독 상태에 있는 한 사람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인 가구가 된 취약계층 남성이다. “혼자 푹 고개 숙이고 오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와서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가는데, 볼 때마다 걱정된다”라고 슈퍼 주인은 말했다.

구씨와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유 아무개씨(23)는 그 집에서 10년 넘게 거주했지만 딱히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이 없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 중 이 동네에 남은 것은 나뿐이다. 친구들은 전부 이곳을 떠났다. 지금 살고 있는 건물에도 계속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아마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떠나지 않았나 싶다. 이 동네엔 오래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수정 의원(정의당)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공되는 복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이따금 공무원이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는 현재의 복지 형태로는 고독한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방식은 단지 생존하게끔 해주는 게 목표다. 이들이 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8월9일, 구씨가 생전에 자주 앉아 있었다는 지하철역 인근 버스 정류장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아무개씨(70)는 친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따로 약속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인근 지하철역을 배회하는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우두커니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혹시나 친구를 만나면 말이라도 좀 하려고 앉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 시간이 넘도록 버스 정류장을 떠나지 못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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