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식물은 없다
오병훈 지음, 마음의숲 펴냄

“모든 식물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코로나로 격리 생활을 했던 친구에게 지인들이 보내준 위로 선물 중 ‘꽃’이 가장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집 앞에 배송된 화사한 꽃을 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는 거다.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여린 식물이 어엿하게 자라난 모습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낀다.
저자는 전국을 누비며 잊혀가는 식물들의 생장과 역사를 기록했다. “금낭화는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해 돌 틈이나 개활지에서 자란다.” “추사는 수선화를 해탈한 신선으로 묘사한다.” 누가 씨 뿌리거나 거두지 않아도 홀로 어른이 되는 식물들은 사는 일에 참 부지런하다. 이 당연한 사실이 새삼 힘이 된다.

 

 

 

 

 

한국 팝의 고고학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라는 생각만 든다.”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는 네 권이다. 2005년에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다룬 두 권(신현준·최지선 지음)이 나왔고,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다룬 두 권이 17년 만에 출간되었다. 앞의 두 권은 이번에 개정·증보판으로 나왔고, 1990년대를 다룬 마지막 권에는 대중음악 평론가 김학선씨가 필자로 가세했다.
지은이들은 마치 고고학의 ‘발굴’ 작업처럼 자료를 수집하고, 당대 대중음악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짚어냈다. 이 시리즈는 스타 중심의 서술을 넘어서서, 대중음악계에서 많은 활약을 했지만 조명받지 못했던 창작자, 연주인, 언론인 등 다방면의 사람들을 고르게 조명한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옥혜숙·이상헌 지음, 생각의힘 펴냄

“그 아이는 작은 걸음으로 매일 조금씩 내게 온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다. 아이의 병을 고치러 떠난 외국에서 남편은 노동경제학자로 자리를 잡고 아내는 ‘옥쌤’이라 불리며 한글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다. 어느덧 50대가 된 부부는 여전히 제법 다정하다.
뼈대만 추려낸다면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남자아이’ ‘여학생·남학생’ ‘여자·남자’ ‘신랑·신부’ ‘아내·남편’ ‘엄마·아빠’ 마침내 ‘혜숙·상헌’이라는 타이틀로 써내려간 서로의 시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래가는 사랑에서 따스하고 단단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아주 사적인데 동시에 보편적이다.

 

 

 

 

 

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한 사람’을 위해 시작한 작은 일에는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커다란 가능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멋진 광고를 만들어도 아이가 ‘볼 수 없다’는 걸 안 순간 일의 의미를 잃었다. 장애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그 시간 덕분에 “모든 약점은 사회의 가능성”이라는 ‘사회적(social) 시력’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 이는 ‘작다(small)’라는 단어에서 ‘모두(all)’를 발견하는 일과 같았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폐 끼치기를,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기꺼이 타인에게 기대고 또 돕자고 제안한다. 그것이 바로 ‘일’의 본질이라고도 주장한다. 그가 만든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가까운 사람이 곤란하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약점을 포용하는 것이 아닌, 약점이 지닌 힘을 깨닫는 과정이 담겨 있다.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에드 트로닉·클로디아 M. 골드 지음,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펴냄

“복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불일치가 필요하다.”

왜 어떤 사람은 만족스럽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영위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외로움과 단절감에 시달리는가? 임상심리학자와 소아과 전문의인 저자들이 수십 년 품어온 의문이다. 인간이 맺는 최초의 상호작용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들은 답을 보여준다. 주요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부모와 자녀의 불일치(불화)는 자연스럽다. 사춘기 청소년뿐만 아니라 유아기에도 마찬가지다. 둘째, 불일치 상태가 자연스럽다고 방치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계 복구야말로 핵심이다. 불화와 무관심을 극복해 서로 화해하는 경험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여러 사례를 통해 관계 개선 방법을 제시한다.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흐름출판 펴냄

“함께 사는 사람이 연인이나 가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최애’는 늘어가는데 집세는 비싸고 고독사는 죽기보다 싫다. 외로움과 경제적 불안을 달래기 위해 연애나 결혼을 선택할 수도 없다. 낯선 이와 생활을 공유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덕질이 취미인 일본의 한 프리랜서 작가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자신과 비슷한 덕질 메이트 세 명을 찾아 함께 사는 것이다. 집 구하기부터 입주, 동거 생활의 사계절을 책에 담았다. 네 사람은 코로나19 재택 기간 ‘덕질’ 온라인 상영회를 열고, 대용량 버찌를 나눠 먹으며 슬픔과 즐거움을 나눈다. “우리는 생활은 공유하지만 인생은 공유하지 않아서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지속가능한 동거 생활을 시도 중인 비혼 여성들의 이야기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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