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만드는 일 하는 사람이라서였을까. 대중교통에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다.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 자꾸만 목이 길어졌다. 그런 사람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수년간 온라인으로만 독서 모임을 진행해오던 출판 편집자 김지은씨(32)는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사일런트 북클럽’에서 힌트를 얻었다. 각자 가져온 책을 같은 장소에서 읽는다는 규칙 말고는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았다. 참가비도 없다. 인스타그램 침묵독서클럽(@chimdokle) 계정을 열고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스무 명 정도면 많이 모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100명 훌쩍 넘는 사람이 김씨를 찾아왔다. 침묵독서클럽은 8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 서울 선유도공원에서, 청계천에서, 서울식물원에서 사람들이 책을 펼쳤다. 공공장소에서 마치 플래시몹처럼 책을 펼쳐든 사람들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되게 오랫동안 이런 장면을 보고 싶었구나, 싶더라고요.”

김씨는 참가자들이 들고 온 책이나 수첩에 ‘침묵독서클럽’이라고 새긴 도장을 찍어준다. 도장에는 사심이 담겨 있있다. 익명과 침묵 속에 만나는 사이이지만, 책 읽으러 나온 ‘동지들’과 눈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별다른 규칙 없는 모임에 작은 소속감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참가자는 2030 여성이 다수다. 3회 만에 ‘아저씨’ 참가자가 등장했을 때 적잖이 놀라고 반가웠다. “너무 환영하면 놀라서 다음에 안 오실까 봐 적당히 반가운 척하느라 애먹었어요(웃음).” 함께 온라인 독서 모임을 했던 친구 서너 명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현장 스태프로 김씨를 돕는다. 그중 한 명은 ‘비눗방울 매니저’라는 직함도 얻었다. 책 읽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비눗방울을 불어 낭만을 만드는 역할이다. 주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의 요청으로 평일 번개를 진행하기도 한다. 10월 모임 전에는 사전 신청서에 어떤 책을 가져와서 읽을 예정인지 물었다. 목록으로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공유했다. 웹소설부터 자격증 시험 대비 문제집까지 다양한 책 목록이 만들어졌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장 좋을 때는 절판된 책을 복간할 때다. 애써 복간시킨 책이 1쇄를 겨우 팔고 또 절판 위기에 놓일 때마다 마음이 답답했다. “그런 좋은 책들이 진짜… 많아요. 결국에는 물리적으로 독자 수를 늘리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책을 잘 만드는 동료와 선배는 많으니까, 나는 독자를 모으고 만드는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궁리하다 이런저런 일을 벌이게 돼요.” 오프라인에서와 달리 온라인에서는 매우 시끄럽다. 김씨는 트위터(현 X)에서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editor_walwal)’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140자로는 책을 충분히 소개할 수 없어 “일단 짖고 보자” 한 게 시작이었다. 책 제목과 ‘왈왈월왕뢍왈왈왈왈왕컹엉얼왛어ㅏ왈왘ㅇ왈!’ 같은 문장을 적어 올리는 게 전부다. “‘멍멍’처럼 귀엽게 짖기에는 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절박했어요.”

11월29일 침묵독서클럽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내에 있는 ‘태양의 정원’에서 열린다. 지방으로 갈 기회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참가자들에게 모임 장소 추천을 받기도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제일 받고 싶은 도움이 ‘공간 후원’이에요. 요즘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함께 책을 펼칠 수 있을 만한 공공장소인지 살피게 돼요.” 가성비를 따지는 세상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침묵독서클럽의 시간은 좋은 의미로 사치스럽다. 책 읽은 감상을 이야기할 필요도, 독후감을 쓸 필요도 없다. 잠시나마 멈춰 서는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으로 연결된다. 무용하게 보내는 시간의 중요함을 자연스레 함께 나눠 가지게 된다. “참가자가 아닌 행인들이 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주면 정말 기뻐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싶고, 궁금하게 만들고 싶고, 그렇게 책과 친해지도록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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