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하버드 대학 졸업, 스타트업 ‘퍼블리’ 창업, 국내 최초 유료 디지털 콘텐츠 시장 개척, 유료 멤버십 ‘일 매출 1억원’ 달성···. 박소령 전 퍼블리 대표(44)와 ‘실패’라는 단어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런 커리어를 밟아온 그가 첫 책으로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콘텐츠업계에서 퍼블리라는 브랜딩 자체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였다. ‘실패했다면 얼마나 실패했다는 건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설득당해버렸다.
2015년 창업한 퍼블리를, 2024년 7월 콘텐츠 사업은 뉴닉에, 같은 해 8월 소셜미디어 사업은 시소에 팔았다. 곧바로 박 전 대표는 사표를 썼다. 2024년 8월23일 금요일 오후 2시의 일이다. 대표이사라 사인이 아닌 개인 인감을 찍어야 했고 개인 인감증명서까지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10년간의 분투가 끝났다.
퇴사 후 안식년을 보내려 했지만,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결국 글을 썼다. 지난 시간 쌓인 날것의 생각과 감정 등을 담은 원고를 주변 몇몇에게 보여줬다. 이 기록은 원래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글을 본 크래프톤 김강석 전 대표가 출판을 권했다. 사회에서 받은 것을 갚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책은 총 열 개 장면으로 구성됐다. 2023년 퍼블리의 끝을 결심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펀드레이징, 레이오프(권고사직)까지 창업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판단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았다. 펀드레이징은 늘었지만 현금이 없어서 주변에 손을 내밀었다. 개인카드 돌려 막기도 했다. ‘시리즈 B 함정(지출을 늘렸지만 그만큼 성장하지 못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결국 세 차례에 걸쳐 레이오프를 진행했다. 회사를 매각하기로 해놓고서 구두 협상에 휘둘렸다. 분명 실패의 기록인데, 처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절절할 뿐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자기 일을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라서다.

그래서인지 유독 책의 리뷰를 빙자한 각종 ‘사장님’의 사연이 많이 올라온다고. 책을 처음 낼 때만 해도 스타트업이나 콘텐츠업계 사람들이 볼 거라고는 예상했다. 상상 범위에 들어오지 않던 독자가 남긴 후기를 읽느라 박 전 대표는 요즘 바쁘다. 요가원 원장, 체육관 관장, 호스텔 사장, 한의원 원장 등이 ‘내 이야기 같다’며 독후감을 남긴다. 박 전 대표의 얘기에 공감하며, 자신의 실패를 복기했고 다음을 계획하는 내용들이었다.
책이 허브가 되어, 또 다른 실패담이 수집되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이들을 인터뷰하며 뉴스레터를 쓰고 있다.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또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는 그는 현재 ‘실패를 함께 통과하는 일’까지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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