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 이름 떨칠 딸.’
장연미씨의 휴대전화 속 딸은 이름 대신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장씨는 여전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마지막 나눴던 문자메시지를 보고 또 본다. 딸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아주 많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얼마나 똑부러졌는지, 얼마나 글을 잘 썼는지···. 그렇지만 지난 1년 장씨는 딸에게만은 할 말이 없었다. 네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곡기를 끊었다. 28일 이어진 단식 끝에 ‘90대 할머니’의 몸을 얻었다. “의사가 그러더라고. 몸의 기능이 다 떨어져서 90대 할머니가 됐다고. 그래서 내가 웃었다니까. ‘잘됐네요, 요안나한테 갈 수 있으면 나는 좋아요.’”

10월15일 장씨는 딸 오요안나의 영정 앞에서 MBC 명예 사원증을 품에 안았다. 2021년 5월3일 보도국 과학기상팀 소속 기상캐스터로 입사했지만 프리랜서 신분이던 오씨는 2024년 9월15일 숨졌다. 죽고 나서야 ‘정규직’이 되었다. 오씨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라는 것이 알려지며 방송사 내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한번 쟁점이 됐다. 그러고도 장씨는 단식을 포함해 1년 가까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싸워야 했다.
이날 MBC와 오씨 유가족 측의 합의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라 할 만 하다. 안형준 MBC 사장은 “오늘 합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MBC의 다짐”이라며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또 오요안나씨 2주기 전까지 MBC 본사에 추모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합의는 3항에 담겼다. ‘MBC는 기존의 기상캐스터 직무를 폐지하고 정규직 직무인 기상기후 전문가로 전환한다.’ 상시 정규 업무에 젊은 여성을 프리랜서로 뽑아 ‘쓰고 버렸던’ 고용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기상캐스터에게 새 제도 도입이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부속 합의서에 담았다.
장씨로서는 아주 오랜만에 딸에게 할 말이,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더는 만날 수도 답장을 받을 수도 없어서 울었다. 그리고 꼭 그만큼 함께 싸워준 ‘동지들’ 곁에서 웃었다. “우리 요안나처럼 고통받는,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텨낸 시간이다. 어렵게 거둔 이 작은 승리가 ‘시작’이라는 것을, 장씨와 함께 싸운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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