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방송작가들은 시간에 맞춰 원고를 쓰느라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도 일을 한다. ⓒ방송작가유니온 제공

방송에는 안 나오는 뉴스가 있다. 방송사가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27일부터 고용노동부가 KBS·MBC·SBS에 대해 근로감독을 시행 중이다.

흔히 프로그램은 PD가, 뉴스는 기자가 만든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템을 발굴하고 사람을 섭외하며 원고를 쓰는 방송작가가 없이는 방송이 나오지 못한다. 방송사들은 이들을 ‘프리랜서’로 간주해왔다. 프리랜서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방송작가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지난 3월19일 MBC 아침 뉴스 프로그램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2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정했다. 이들은 9년 동안 생방송 시간에 맞춰 매일 새벽 MBC 사무실로 출근했으며, 원고 작성 과정에서 MBC 정규직 PD의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도 MBC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작가 2명과의 계약을 구두로 해지했다. 중노위는 해고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 부당해고라고 봤다.

국가기관이 방송작가를 노동자로 판단한 첫 사례다. 노동부 근로감독은 그 직후 시작되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중노위의 판정은 당사자에게만 효력이 있는데, 노동부가 개별 사건을 넘어 아직 다퉈지지 않은 방송작가들의 근로조건까지 들여다보겠다고 결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 감독 결과에 따라 (해고 문제뿐 아니라) 방송작가의 전반적 근로조건을 교정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시작한 지 넉 달이 되어가지만,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KBS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근로감독 한 달이 넘도록 방송작가들의 명단을 노동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MBC는 초기에 연락처를 제외한 명단만 제출하는가 하면, 방송작가와 근로감독관의 면담 일정을 회사 측이 직접 조율해 논란이 되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에 들어가면서 7월12일부터 근로감독이 아예 중단됐다. 한 달 만에 겨우 재개되었다.

시사교양·보도 작가가 대상

현장의 분위기는 ‘근로감독 참여를 독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한 작가는 “팀장이 ‘근로감독으로 시끄러워지면 회사가 앞으로 작가들과 일을 안 한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10년 차 작가 김새봄씨(가명)는 이렇게 전했다. “메인 작가(작가 10여 명을 총괄하는 연차가 높은 작가)님이 ‘이런 조사 한다는데 혹시 개인정보 때문에 하기 싫으면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했다. 다른 팀 팀장은 ‘막내 작가 중에서 근로감독 설문에 답한 사람은 자기한테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들었다. 몇몇 관심 있는 작가 빼고는 대부분 근로감독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불이익이 있을까 봐 참여하지 않는다. 노조에서 근로감독 관련 설명회를 열었는데, 이 많은 작가들 중에 나 포함 4명이 왔다.”

전국의 방송작가는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서 서울시 정책으로 정규직이 된 TBS 방송작가 10명을 제외하면 모두 ‘프리랜서’ 신분이다. 방송 3사의 정확한 방송작가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KBS가 500~600명, MBC가 250명 수준이다(모두 본사). 근로감독 대상은 이 중에서도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이다(KBS의 경우 약 170명). 왜 시사교양·보도 작가인가?

한 방송작가의 책상 모습. ⓒ방송작가유니온 제공

프로그램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MBC 보도국 작가 이정연씨(가명)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다큐나 예능은 밤을 새워도 내가 알아서 스케줄을 정한다. 생방송인 보도는 그럴 수가 없다. 새벽부터 기사를 읽어야 발제와 회의, 원고 작성을 할 수 있다. 질문지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출연자도 당연히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기자의 지시를 받는다.” SBS 보도국 작가 최정은씨(가명)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한다. 대본을 쓰면 정규직 기자들의 데스킹을 받는다. 생방송에 맞춰 원고를 쓰느라 점심을 못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KBS 데일리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 김새봄씨는 “발제를 올려 메인 작가 컨펌을 받으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본사 책임 PD에게 최종 확인을 받는 구조다. 프리랜서인데도 코로나19 이전에는 암묵적으로 상근을 강요했다”라고 말했다. 세 명 모두 “일하면서 프리랜서로서 자유로움은 느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MBC는 이행강제금을 내면서까지 방송작가 2명이 근로자라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MBC 관계자에게 자사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이 프리랜서라고 판단하는지 묻자 “별다른 입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KBS는 “현 시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2017년 출범한 방송작가들의 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의 김한별 지부장은 “1990년대 이후 원고 작성 외에 수많은 업무가 방송작가들에게 떠넘겨졌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프리랜서가 아닌데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연차휴가 등 모든 노동법의 보호에서 배제된다”라고 말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의 정식 명칭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다. 언론노조는 민주노총 산하의 산업별 노동조합이다. 방송 3사 정규직도 언론노조 산하에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방송작가 문제에 적극 나서지는 않는 듯하다. “(작가들이 노동자인지 여부는) 작가들의 업무 현실에 근거해 법과 원칙대로 현장에서 적용돼야 한다(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 “같은 시사교양·보도 작가 안에서도 케이스별로 다르다. 자신을 프리랜서로 인식하는 작가도 많다. 작가들이 (정규직을) 원하는지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처우 개선이 중요하다(유재우 언론노조 KBS본부장).”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번 회사 측의 행정소송 제기를 두고 문제 삼지 않았다. 최성혁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보도국 작가 2명에 한정된 사안이라면 연대 정신만으로도 회사에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방송작가 전체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이 보이고 회사가 그 점을 경계하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일하는 패턴이 달라서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방송작가 처우 개선은 산별교섭으로 풀 문제다”라고 말했다.

2018년 방송 3사와 EBS, 언론노조가 산별교섭을 체결해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지만, 이후 2019년 SBS가 탈퇴했다. 2019년 합의해 2020년 출범한 방송작가 특별협의체도 흐지부지되었다(KBS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회의체 운영이 일시 중단된 상태다”라고 밝혔다). 산업별 교섭은커녕 방송작가유니온과 정규직 노조가 각사와 공동교섭을 하고 있지도 않다. 유재우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임금체계가 달라서 교섭을 같이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근로감독 과정에서 방송작가유니온의 요구를 사측에 최대한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송작가들에게는 아무런 안전망이 없는 상황이다. 도쿄 올림픽이 열린 2주 동안 지상파 3사 방송작가들은 ‘강제 무급휴가’를 갔다. 방송작가들은 일급 또는 주급으로 보수를 받는데, 올림픽 등으로 ‘방송이 죽으면’ 보수가 나오지 않는다. MBC 보도국 작가 이정연씨는 “일부 기자들은 여름휴가처럼 생각하라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2주간 무임금은 우리 같은 일당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심지어 이 가운데 1주 동안은 그다음 주 방송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무조건 방송이 나가야만 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방송사의 갑질이다”라고 말했다.

8월16일 방송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상암동에서 피켓을 든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시사IN 신선영

“저희도 특고인 거 아세요?”

방송작가 대부분은 여성이다. SBS 보도국 작가 최정은씨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건 일절 없다. 오히려 경력 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퇴직금도 전혀 없다. 다 같이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보장된 권리에서 내 자리는 없다. 최소한의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KBS 시사교양 작가 김새봄씨는 “유부남인 정규직 PD가 여성 작가에게 부적절하게 접근해온 일이 있었는데 결국 작가가 퇴사했다. 작가들은 몇 년 넘게 일하다가도 이유도 모른 채 잘린다. 갑자기 임금이 동결된다고 통보받기도 한다. 같은 연차라고 할 때 정규직 임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은 약 330명이고 주로 지역 방송국 중심이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방송작가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세상에 나오고 있다. 지역 MBC 라디오와 JTBC 보도국 등에서 방송작가로 5년간 일하고 최근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책을 펴낸 이은혜씨는 “한국 최초로 진행되는 방송 3사 근로감독인데 참 고요하다. 근로감독 보도 한 줄 나오지 않는 현실 자체가 방송의 현주소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특수고용 노동자 아이템을 논의하다가 ‘저희도 특고인 거 아세요?’라고 되물어 분위기가 조용해진 적이 있다. ‘정의를 말하는 방송사의 부정의’를 밖으로 드러내야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에서 사각지대로 남겨져 있던 영역이 방송사다”라고 말했다. “기간제나 파견은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도 지켜야 하고 2년 넘게 쓰지 못하는 등 까다롭지만, 프리랜서로 쓰면 이 모든 제약이 사라진다. 방송이 플랫폼 노동에 대해 그렇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왜 방송사 프리랜서에는 문제의식이 없는지 의문이다. 이번 근로감독이 단순히 ‘특정 직군이 노동자냐 아니냐’에서 그치지 않고, 방송 전반의 차별 개선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확립까지 이어져야 한다. 언론노조 역할이 중요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국세청의 ‘2014~2018년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내역(인적용역)’을 분석한 결과, 사업소득세를 내는 소위 ‘자영업형 노동자’는 2018년 613만명에 달했다. 300만명으로 추산되는 ‘프리랜서’나 200만명을 넘는다는 ‘플랫폼 노동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중 얼마나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취약노동층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이번 근로감독이 노동법의 보호를 못 받아온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상파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받기까지


2017년 언론노조 소속 ‘방송작가유니온’ 출범
2018년 KBS·MBC·SBS·EBS, 언론노조와 첫 산별협약 체결

2019년 KBS·MBC·EBS, 언론노조와 ‘방송작가 특별협의체’ 구성 합의
2020년 2월 CJB 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된 이재학 PD 숨진 채 발견

2020년 10~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MBC 보도국 작가 2명 부당해고 구제신청 각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아니다”
2021년 3월19일 중앙노동위원회, MBC 보도국 작가 2명 부당해고 인정.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2021년 4월26일 고용노동부, CJB 청주방송 근로감독 결과 방송작가 5명 등 프리랜서 12명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
2021년 4월27일 고용노동부, 지상파 3사 시사교양·보도 작가 근로감독 시작
2021년 5월13일 청주지방법원 2심, 고 이재학 PD 부당해고 인정 판결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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