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학자 박상훈이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은, 제목처럼 ‘한국 사회의 시간 감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독 학자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독일의 한국학 연구소 소속인 그는 동료 독일인 연구자들과 한국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다소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독일인 교수들은 숙소 예약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1년 전에 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재독 한인 학자는 한국에서 1년은 ‘어떤 일이라도 가능한 시간’이기에 확정은 한두 달 전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주로 진취성과 역동성을 표상하는 긍정적인 용어로 쓰인다. 그러나 “외견상 빠르고 잦은 변화”는 내실을 갖추기 어렵기에 하루가 다르게 개혁하고 발전한다는 착시 속에서 실상 “구체제의 구조적 특징이 강하고 완고해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한국 특유의 급속한 변화가 “사회의 무변화 내지 보수성의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장시간 노동 뒤 여유 시간이 부족하다면 정치, 사회,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와는 (물론 이 말 역시 맞지만) 다소 결이 다르다. 한국 시민들은 독재자,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는 수십 년간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형성해왔다. 저자는 불의에 대항하는 투쟁이나 저항의 단계를 넘어 하루하루의 일상을 가꾸고 이어가는 ‘시민의 집’으로서 민주주의를 논한다.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라면 그 체제의 변화는 극복이나 대체가 아니라, 과정이자 이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변화의 비용을 ‘결정 비용’과 ‘집행 비용’으로 나누고 “빠른 결정이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민주적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집행 단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만나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집행 비용을 치르게 된다”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이 책이 2017년에 나왔음에도,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여러 개혁의 말로나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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