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24일 오전, 타이(태국) 방콕 도심의 병원 앞에서 땅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사고를 접했는데, 도로 위가 조금씩 내려앉다 급기야 폭삭 꺼지는 모습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잘린 하수관에서 물이 쏟아지고, 전깃줄이 끊기며 불길이 치솟았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주변 건물 바로 앞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크기를 키웠다. 결국 길이와 폭 30m, 깊이 50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도시 한가운데 생겼다. 통행량이 많은 이른 아침이었고 추락한 차량도 존재했는데, 인명 사고가 없었다니 그나마 큰 기적이었다.
사고 소식을 접하며 익숙한 몇 가지 조건을 떠올렸다. 한국의 도심에서 싱크홀이 발생할 때 자주 볼 수 있었던 조건이다. 외신을 보니 대충 들어맞았다. 비가 많이 내렸고, 근처에서 지하 터널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수관이 손상됐다.
한국에서 싱크홀 사고가 나면서 많이 언급된 조건들이다. 나 역시 올해 초여름, 여러 뉴스 프로그램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싱크홀 지도를 만들며 알게 된 내용이었다.
싱크홀 지도(sciencesay.shinyapps.io/sinkhole)를 처음 만든 건 2024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갑자기 싱크홀 사고가 났을 때였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 장난감처럼 꺼지는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싱크홀에 새삼 주목했다. 데이터를 수소문해 관련 과거 7년 남짓한 기간 전국에서 발생한 1300여 건의 사고 정보를 포함한 데이터 세트를 구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구한 경로는 한 곳이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동일하거나 서로 연결되는 데이터를 구할 수 있었다. 데이터는 개방돼 있었고, 관련 기관에 요청했을 때에도 친절하게 제공받을 수 있었다.
데이터에는 물리적인 싱크홀 정보와 함께 원인과 지반 특성, 피해 등 다양한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 일부는 구체적인 위치 정보도 포함하고 있었다. 위치 정보가 없는 데이터는 주소를 기반으로 위치 정보를 추가한 뒤 정제, 분류해 지도를 만들었다.

올해 3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다시 싱크홀이 발생했을 때 한 차례 업데이트를 했다(〈그림 1〉 참조). 반년 남짓 추가된 사고를 더하고 전반적인 분석 내용을 재점검했다. 주변 상황이 변했다. 짧은 기간 인명 사고를 포함한 대형 싱크홀이 연거푸 발생하자, 불안심리가 전보다 훨씬 커졌다. 사람들의 불안은 가장 먼저 ‘나와 가족이 사는 곳은 안전한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어떤 지역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지, 앞으로 발생할 위험이 큰지 알고 싶어 한다.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면 불안과 불만이 커진다.
계절성과 규칙성 뚜렷해
더구나 사전에 싱크홀 위험을 조사한 적이 있던 서울시가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시민들로부터 불만과 의혹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특정 지역의 집값에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추측이 나왔고, 시민의 안전보다 돈이 우선이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우연인지, 그동안 싱크홀 데이터를 공개하던 정부 플랫폼에서도 공개 데이터의 특성 수를 줄이고, 원본을 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내가 만든 지도가 입소문을 탔다. 지도엔 데이터의 여러 특성값을 이용해 사고 원인과 규모, 피해, 시계열상의 발생 패턴 등을 분석한 내용도 포함됐는데, 이것도 함께 주목받았다. 숫자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첫째, 시간적으로 계절성과 규칙성이 뚜렷했다. 평균 발생량은 8월, 6월, 7월, 5월 순으로 많았다. 초여름을 포함한 여름이 싱크홀 발생에 가장 취약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땅이 물을 많이 머금어서 약해진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건 뒤에 다시 설명한다.
발생 규모는 다양했다. 수백m 이상의 큰 규모도 일부 있었지만, 드문 예외였다. 대부분(97%)은 폭이 10m 이내였고, 다수(76%)는 2m 이내였다. 2m는 서울시 특별관리대상 기준 크기였다. 깊이 역시 심한 경우는 (이번 방콕 경우처럼) 40m에 이르렀지만,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98%)은 5m보다 얕았고, 역시 다수(81%)는 2m보다 얕았다.
피해는 꼭 깊이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했다. 인명 피해나 차량 피해가 기록된 싱크홀에서도 폭 2m 이상인 큰 싱크홀의 비중이 딱히 더 높진 않았다. 깊이도 그랬다. 부상자가 발생한 싱크홀은 오히려 큰 폭의 싱크홀 비중이 작았다. 작다고 얕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싱크홀의 원인은, 거칠게 분류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건설 활동이다. 굴착이나 매설, 되메움, 상하수관 공사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며 싱크홀이 생긴다. 다른 하나는 지하 시설물이 손상되는 경우다. 주로 상수도와 하수도 등 매설물이 손상될 경우 생긴다.
2018년부터 올봄까지 1400건의 싱크홀을 분석해보면, 이 가운데 지하 시설물 손상이 전체 원인의 58%로 과반을 넘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이 하수관 손상(45%)이었다. 세부 원인 하나가 거의 절반의 싱크홀을 발생시켰다(〈그림 2〉 참조).

하수관 손상은 노후화와 관련이 높다. 하수관의 지역별 노후도 데이터가 있다면 좀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겠지만, 광역자자체별로 집계된 하수관 연령별 비율 또는 연장 데이터를 연결해 분석해봐도, 20년 또는 25년 이상 된 노후 하수관의 지자체 내 총 길이와 그 지자체의 싱크홀 사고 수는 꽤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3〉 참조). 비율보다는 길이 자체가 사고 수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봐서, 노후 관을 제거하거나 교체하면 그 자체로 사고를 줄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는 데이터 없이도 어느 정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고, 일부는 기사로도 나왔다. 하수관 관리를 잘하면 분명 많은 싱크홀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하수관 사고는 강력한 계절성을 지닌다. 앞서 여름에 싱크홀이 많이 발생하고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땅이 물을 머금는 이유 외에 하수관의 부하가 커지면서 손상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이건 기후재난이기도 하다. 이 연재에서 여름철 강수 패턴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시사IN〉 제937호 ‘‘여름 전체가 우기 됐다’는 직감, 틀리지 않았다’ 기사 참조). 여름철 강수 기간이 길어지고, 집중호우도 늘고 있다. 하수관에 가해질 부하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싱크홀 발생 확률 역시 늘 것이다.
하수관은 전체 원인의 절반 이하만 설명한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다른 원인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싱크홀 크기와 사고 원인을 같이 분석해보면, 하수관과 다른 원인을 분리해서 대처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하수관 관련 싱크홀은 의외로 큰 규모가 적다. 폭과 깊이 1m 내외가 대다수다. 상수관 관련은 폭이 좀 더 크다. 상수관은 수압을 가해 물을 수송하는 관이다 보니, 한번 사고가 나면 피해가 좀 더 큰 경향이 있다. 건설 관련은 더 규모가 크다. 특히 굴착공사에 의한 싱크홀은 깊이와 폭이 모두 큰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가장 흔한 하수관 관련 싱크홀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상수도와 건설, 특히 굴착공사 관련 싱크홀은 폭과 깊이가 모두 하수관보다 큰 경우가 많다. 여기에 비까지 더해지면 더 자주,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비, 하수관 파손, 굴착공사는 최근 방콕 싱크홀에서도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땅속 사정에 대한 데이터 공개해야
싱크홀 피해가 꼭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규모가 큰 싱크홀이 도심에서 예고 없이 발생할 경우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수관 손상은 시설물의 자연적 노화에 따른 것이고, 따라서 정기적으로 교체·관리하면 그에 따른 싱크홀도 줄일 수 있다. 어느 정도는 관리가 가능한 영역이다. 물론 기후위기 시대에 피해가 늘겠지만, 이건 모든 인프라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다.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에 의한 싱크홀은 어느 정도는 인재(人災)다. 철저한 관리와 계획을 통해서 줄여야 한다. 하지만 땅속 사정을 모두가 잘 알 수는 없다. 제대로 조사하고 그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건설사는 위험이 예상되는 지역에 걸맞은 건설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시민에겐 위험을 알릴 수 있다. 해법을 모으기에도 유리하다. 데이터는 기술개발을 위한 자료가 될 수도 있고, 창업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런 적응 솔루션 기업이 다양하게, 많이 나와야 한다. 정부가 다 직접 해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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